오염수 방류, 일본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일
[오하라 츠나키]
▲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기 시작하는 8월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약 5km 떨어진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에서 바라본 해안선의 모습.. |
ⓒ AFP=연합뉴스 |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가 시작됐다. 전 세계 시민들의 거센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해양 투기를 강행했다. 일본 언론은 8월 18일 미국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의 뒤 일본 정부가 최종 방류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후쿠시마 현지에서도 해수욕 개장 시기가 끝나는 8월 15일부터 저인망 조업을 시작하는 9월 1일 사이에 해양 투기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8월 24일부터 해양 투기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상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은 뭇 생명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극히 마땅한 주장이다. 정말 안전하다면 여태까지 탱크에 저장해 놓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농업용수든 수영장을 채울 물이든 일본 국내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면 되었을 것이다.
정말 안전하다면 여태까지 왜 탱크에 저장했나
사고가 발생한 후 지금까지 탱크에 저장된 오염수의 양은 약 134만 톤에 이른다. 이것을 바닷물로 희석해 바다에 버리겠다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실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어떤 방사선 핵종이 얼마나 포함되었는지, 그 총량이 얼마나 되는지, 최종적으로 방류가 끝나는 시점은 언제가 될 것인지,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여전히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과정을 보도하는 NHK방송 |
ⓒ NHK |
하지만 오염수 해양투기가 장기간에 걸쳐 전 지구적 규모로 바다 생태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핵사고로 발생한 오염수의 해양투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해양 투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면 이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 이번 투기 이전에도 후쿠시마 사고 발생 이후 수없이 오염수가 바다로 흘렀다. 그 누적적 영향에 관한 평가도 없는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오염수를 바다로 버린다면 더욱더 심각한 방사능 해양 오염이 발생할 것이다.
지난 7월 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성에 관한 최종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오염수의 해양 방출 방법과 도쿄전력 및 일본 정부의 관련 활동은 국제적 안전기준에 부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IAEA는 이 최종보고서에서 '오염수 해양 방출이 사람 및 환경에 미치는 방사선 영향은 무시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일본 정부는 보고서를 환영하면서 이를 근거로 오염수 해양 방출에 국제적 인증을 받은 것처럼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IAEA가 이런 내용으로 보고서를 최종 마무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 예측되었던 일이었다. IAEA는 '원자력 이용'을 추진하기 위한 기관이다. 핵 이용 확대에 방해가 되는 보고서를 발표할 리가 없고 환경 보호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에 따른 위험성을 언급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명 아래 핵발전을 사용하게 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다. 핵발전을 하는 국가는 현재 33개국이며 전 세계에 400기가 넘는 핵발전소가 존재한다. 일본은 1965년 상업용 발전소로 도카이 핵발전소를 처음으로 가동한 이후 70~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본은 총 54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겪었던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이렇게나 많이 건설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에서 사상 최대 핵발전소 사고가 난 것은 더더욱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은 피폭 피해에 대해 꾸준히 호소했지만 그 목소리는 일본 정부와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등 방사능 피해를 왜곡·축소하는 기관 및 세력으로 인해 외면되어 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묵살된 것처럼 이번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가 왜곡되고 과소 평가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문제가 된 것은 방사능 오염수만이 아니다. 사고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방사선량이 꽤 높은 지역에 주민들을 귀환시키거나 방사능 오염토를 공공시설에 재이용하는 실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 2세들의 건강 피해가 인정되지 않은 것처럼 향후 일본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피해로 긴 시간에 걸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큰 각종 건강 피해에 대해 진지하게 조사하고 인과관계를 밝혀 국가가 나서서 치료를 해줄 리 만무하다.
한일 모두 핵발전 확대로
염려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후 일본에서는 핵발전 확대 정책에 일정 정도 제동이 걸린 것처럼 보였다. 핵발전소 반대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한때 모든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췄고 핵발전소 재가동을 일정 정도 규제하는 기준을 만들기도 했다. 핵발전소의 수명을 원칙적으로 40년으로 제한하는 법적 제도가 도입되어 노후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핵발전소를 위주로 총 15기의 폐로가 결정되기도 했다.
▲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24일 오후 1시부터 시작하기로 예고한 가운데,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앞에서 해양투기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 권우성 |
이런 일본의 상황을 보고 한국의 핵발전 추진 상황에도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문재인 정권 당시 '탈핵'을 선언했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결정했고 결국 탈핵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윤석열 정권으로 교체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당시부터 '반탈핵'을 내세우며 핵발전 재추진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윤석열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2030년 전력믹스에서 핵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고, 본인 임기 내에 노후 핵발전소 총 18기의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이 계획은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노후핵발전소 수명 연장 절차는 고리 2·3·4호기에 이어 전남 영광 한빛1·2호기까지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게다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앞당겨서 수립하고 그 안에는 추가적인 신규 핵발전소 건설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에 한국 시민들의 높은 관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이 흐름이 여기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오염수 발생의 근본 원인인 핵발전소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시민적 관심이 더 높아졌으면 한다.
12년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핵발전소 사고가 우리에게 주었던 충격을 되새기고 같은 비극이 한국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탈핵'밖에 없다. 윤석열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핵발전 확대 정책에 당장 제동을 걸어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를 한국 탈핵운동 확대의 계기로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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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오하라 츠나키는 <탈핵신문> 편집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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