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정신성 약물도 위험… 오남용땐 ‘마약’

김남중 2023. 9. 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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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양성관 지음, 히포크라테스, 368쪽, 1만8000원
한국에서도 마약이 크게 늘고 있다. 마약 거래로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아래 사진은 서울시내에서 한낮에 마약을 거래하는 장면이다. 국민일보DB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는 마약 종합 설명서다. 마약 약물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중독의 실상과 이유, 마약의 역사와 국제 시스템, 한국의 마약 상황까지 아우른다. 저자 양성관은 15년 경력의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7권의 책을 낸 작가다. 생생한 환자 사례, 꼼꼼한 정보, 역사적 사실들을 능숙하게 조합하면서 마약이 한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게 해준다.

책은 먼저 향정신성 약물도 마약이며 중독된다는 걸 알려준다. 마약 문제는 대마초(마리화나)나 코카인, 헤로인, LSD, 엑스터시 같은 불법 약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용으로 개발된 향정신성 약물이 오늘날 마약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우유 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이 대표적이다. 원래 목적인 내시경 검사나 시술에 사용하면 약이지만, 잠을 잘 목적으로 자주 사용하면 마약이 된다. 졸피뎀 같은 수면제, 다이어트 약인 펜터민도 마찬가지다. 특히 마취제와 진통제로 개발된 펜타닐은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마약으로 불린다.

저자는 “처음부터 마약인 것도 있지만 오남용으로 인해 의존성과 내성, 그리고 금단 증상이 생겨 치료약이 마약으로 변하기도 한다”면서 “약과 마약의 경계는 애매모호하며 결과가 나쁘면, 즉 중독되면 마약이 된다”고 말한다.

2022년 우리나라 마약 사범 수는 1만8359명인데,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8489명이 투약 사범이다. 투약 사범 중에는 향정신성 약물 투약 사범이 6082명으로 73.1%를 차지한다.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 마약 투약 사범은 적다.

마리화나 합법화 논란에 대해서도 저자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중독성과 의존성이 가볍다고 하지만 마리화나가 마약의 관문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그것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비교적 가벼운 약인 마리화나나 프로포폴 같은 향정신성 약물이 위험한 이유는 더 강하고 위험한 약으로 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마리화나에서 시작해 LSD, 엑스터시, 코카인을 거쳐 헤로인, 펜타닐까지 가는 게 일반적 코스다.

마약의 피해는 개인적 중독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마약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도나 매춘 같은 범죄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는 사람의 4분의 1은 마약 때문이다. 또 마약 살 돈을 벌기 위해 마약 알선과 판매로 나아가게 된다.

가난하고, 몸이 아프고, 인간관계마저 단절된 마약 중독자의 상당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약 과다 투여로 인한 사망 중 상당수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과량을 투여해 자살한 것이라고 한다.

마약의 중독성은 강력하다. “적게는 한 번에서 많아도 세 번만 하면 모두 마약에 빠져든다.” 하지만 마치 담배나 술을 하듯 가볍게 마약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마약을 하게 된 원인을 조사한 국내 자료에 따르면, ‘호기심’이 66.7%, ‘다른 사람의 권유’가 60.6%(복수 응답 포함)에 달했다. 처음 마약을 구하게 된 경로도 ‘친구나 지인’이 76.7%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저자는 “단 한 번도 안 된다”면서 “(마약은) 당신에게 잠시 천국을 보여준 뒤 끝없는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니 절대 속으면 안 된다”고 당부한다.


책은 1부에서 마약을 의학적 개인적 심리적 차원에서 분석한다면, 2부에서는 세계적 역사적 맥락에서 마약 시스템을 해부한다. 코카인 최대 생산지인 콜롬비아, 마약왕으로 유명한 에스코바르와 쿤사, 미국의 마약 역사 등을 통해 마약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생산, 유통, 소비되는지 그려낸다. 마약 생산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지구상 최고의 고부가가치 상품이기 때문이다. 코카인 1g은 미국에서 15만원으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비싸다.

저자는 마약 주요 생산국 중 하나로 북한을 꼽는다. 북한은 ‘백도라지(아편) 사업’이라는 이름하에 군과 외교관까지 동원해 마약류를 생산하고 밀매하며 이를 통해 연간 1∼2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북한산 필로폰은 흥남제약공장 지하에서 박사급 인력들이 생산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순도가 가장 높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의 마약사와 실태를 정리했다. 1970년대 가난한 한국은 부유한 일본에 필로폰을 만들어 공급하는 생산지였다. 1982년 일본 필로폰 시장의 88.3%가 한국산 필로폰이었다. 이제 부유해진 한국은 히로뽕 소비시장으로 변모했다. 한국에서 히로뽕은 미국에서보다 8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마약상 입장에서는 마약 밀수에 성공만 한다면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저자의 조언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미국이 1970년대 이후 50년 넘게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마약 범죄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공급을 줄이는 강력한 단속·처벌과 함께 수요를 줄이는 적극적인 치료가 병행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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