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잠에 빠진 이선균 "연기로 나를 돌아본다"
영화 '잠' 잠들기 두려운 남편 현수役
76회 칸 초청 "좋은 기운 받아 기뻐"
연기 20년차 "갈증 여전…히어로물 하고파"
배우 이선균(48)은 '기생충'(2019)으로 함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오스카상을 휩쓸며 한국영화 위상을 높인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봉 감독은 영화 '옥자'(2017) 연출팀에서 자신을 도운 유재선 감독 입봉작 '잠' 출연을 부탁했다. "굉장히 뛰어난 친구"라는 봉준호의 말에 이선균은 "궁금하고 기대됐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이선균은 '잠'에 빠졌다.
이선균은 6일 개봉한 영화 '잠'에서 극을 단단하게 받치는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 허술해서도 빈약해도 안 되는 역할. 이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영리하게 소화했다. 정석적인 연기로 영화를 완성한 배우의 힘이 빛났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선균을 만났다. 제76회 칸영화제 이후 석 달 만에 다시 마주한 그는 반갑게 인사를 전했다. 그는 "칸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개봉하게 돼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재밌게 보셨더라. 좋은 리뷰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제76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잠'은 지난 5월21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칸 에스파스 미라마 극장에서 상영됐다. 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비평가주간 초청작은 주로 전 세계 기자 등이 주관객이다. 더군다나 오전 상영에서 열띤 반응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지만 '잠'은 달랐다.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과 풍자, 상황적 아이러니가 웃음을 자아냈다. 공포, 스릴러 등 장르적 매력은 유지하면서 위트 넘치는 영화라는 평을 이끌었다.
이선균도 현장 반응에 만족했다. 그는 "오전 11시쯤 일찍 상영했는데, 관객들이 다 기립해주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신인 감독의 등장을 응원해주시는 느낌이었다.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적 요소가 있지만, 부부가 함께 극복해가는 부분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한국의 무속신앙도 색다르게 봐주시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잠'은 오컬트나 미스터리 스릴러 요소를 갖고 있고, 마치 멜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코미디처럼 보이지 않나요. '부부가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 할 일이 없다'는 현판을 붙이고 굳이 저렇게까지 극복을 해야 하나, 웃음이 나더라고요. 일상적 이야기에 장르적 재미를 넣은 군더더기 없는 장르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칸에서 이선균은 두 아들, 아내인 배우 전혜진과 함께했다. 올해 칸에 초청된 '잠',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공식상영에 동행하며 곁에서 박수를 보냈다. 이선균은 "장르를 모르고 '잠'을 본 큰아이가 짜증을 냈다.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울었다"며 웃었다. 그는 "아이들은 칸영화제도 어딘지 잘 몰랐지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칸에 초청되는 건 흔치 않은 기회 아닌가. 다행히 두 작품으로 가게 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을 시작으로 제56회 시체스판타스틱영화제, 제48회 토론토영화제, 제18회 판타스틱 페스트에 초청되며 주목받았다.
이선균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30대 초반의 신혼부부 배역 설정에 주저했다며 웃었다. 그는 "아무래도 40대에 늦게 결혼한 연극배우 설정이 더 맞지 않았나, 그런 마음으로 가야 편할 거 같다고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낮에는 다정했지만 잠들면 낯선 사람이 되어 이상행동을 하는 남편 현수로 분한 이선균은 "예민하게 변하는 감정이 중심이 된다. 촉매제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했다.
극 중 이선균은 정유미와 다정하고 편안한 부부로 분했다. 부부는 매일 밤 찾아드는 공포로 변해가다 극한에 치닫는다. 이선균은 "어떤 배우보다 과감하고 용감한 게 정유미의 힘"이라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어 "정유미가 가진 배우의 얼굴이 좋았다. 깊이 있고 공허한 눈빛도 좋다"고 말을 이었다.
2009년 결혼한 이선균에게 실제 결혼 생활에 관해 묻자 "부부는 임무를 같이 수행하는 군대 동기 사이 같다"며 웃었다. 그는 "결혼 10년 차가 넘었는데, 알콩달콩하지는 않다. 부부가 육아 등 같은 숙제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불편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2001년 뮤지컬 '록키호러쇼', MBC 시트콤 '연인들'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신인 때는 출연한 작품을 모니터하기 겁났다. 지금도 모니터를 잘 못 하는 편이지만, 그땐 유독 나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촬영 끝나고 운전하고 집에 가면서 혼자 대사를 다시 해보고 그랬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배우로서 여전히 갈증도 느껴요.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싶기도 하죠. 고여있으면 안 되는데,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야 하는데. 그게 제일 고민이에요. 내가 하는 연기가 어떤 변화를 줄지 모르지만,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흘러가다 보면 맞아떨어지죠. '이게 맞다'고 단정 짓기 시작하면 고여있고 소홀하게 되니까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하얀거탑'(2007) '나의 아저씨'(2018) 영화 '기생충'(2019) 등 그의 출연작은 많은 대중에게 인생작으로 꼽힌다. 이선균이 꼽는 인생작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답하기 어렵다"며 웃었다.
이선균은 "다 소중한 작품들"이라며 "필모그라피를 잘 쌓아오고 있구나, 유일하게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급하신 작품이 시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모두 소중하다"면서도 "최근에는 '나의 아저씨'다. 나의 40대를 대변하는 작품이라서 특히 고맙다"고 했다.
"연기가 좋아요. 누군가 연기를 왜 하느냐고 물으면 '나를 돌아보게 해줘서'라고 답하겠어요. 간접적인 감정 체험을 지속해서 하잖아요. 어떤 숙제가 주어지면 나를 돌아보고 움직이게 만들어요. 지금처럼 연기하고 싶어요. 하나씩 새로운 숙제를 마주하고 차근차근 잘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히어로물을 한 번도 안 해봤더라고요. 별거 없어 보이는 데 능력이 있는, 그런 초능력자 역할도 재밌을 거 같아요."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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