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청춘의 운전은 어렵기만 하다
[박희종 기자]
세월은 운전도 어렵게 했다
아내와 살아가는 골짜기는 시내에서 10여 km 정도 떨어져 있다. 근 5년을 넘게 살아가고 있지만, 도심에서 생활한 지 20여 년이 넘었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도심을 오고 간다. 도로는 왕복 4차선인 곳도 있고 이차선인 곳도 있어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산 허리를 관통해 만들어진 길은 두 개의 터널과 긴 언덕으로 항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내리막길은 40km의 속도 제한이 있고, 불과 3~4km의 길에 과속 단속장치도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빗줄기가 험하게 내리던 날, 밤안개도 자욱하다. 시야가 쉽게 확보되지 않는 악천후지만 시내를 가야 했다. 눈이 밝고 운동신경이 살아 있던 젊은 시절엔 언제 운전을 해도 걱정이 없었다.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운전이 흐르는 세월 속에 서서히 걱정된다. '어르신 운전'이 된 것이다. 비가 오는 컴컴한 도로는 미끄럽지만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다. 시력이 좋아 2.0이라던 눈은 어느새 안경 없이는 쓸모가 없어졌다.
▲ 오래전, 부탄에서 만난 원형교차로 부탄의 교통질서는 시설과는 상관이 없었다. 우리 눈엔 허름한 듯한 원형교차로였지만 전혀 문제없는 듯한 차량의 흐름이었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만이 선진 교통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 박희종 |
사람우선 운전문화가 부러웠다
운전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수많은 차량이 오가지만 만만하게 나를 실어 줄 차량은 없다. 할 수 없이 운전을 해야 하는 이유이지만, 냉정한 세월은 변화무쌍한 교통 흐름에 적응을 더디게 했다. 순발력을 내세워 유연하게 운전을 한다지만, 나도 모르게 교통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세월은 모든 것을 어설프게 만들었다.
아직은 먼 거리도 거뜬히 운전하며 살아간다. 부산에 사는 딸네 집, 근 300km이지만 어려움 없이 다녀온다. 동해안을 오가고, 서해안을 다녀오지만 가끔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려온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교통변수, 적응하기가 쉽진 않다. 일차선을 점령하고 있는 저속차량들, 소위 칼치기로 차선을 오가는 차량들이 어지럽다. 불쑥 끼어드는 과속차량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래도 이것도 양보하고, 저것도 배려하고 싶은 생각이다. 세월이 알려준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다.
스웨덴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선 사람은 안전했지만, 내 운전은 불편했다. 횡단보도뿐 아니라 도로에 사람이 보이면 서행이었다. 도저히 '빨리'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고 언제나 안전만이 최우선이었다. 이차선 고속도로인 노르웨이에서의 여행길, 언제나 안전만을 생각해야 하는 '느림'의 운전이었다.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느림 운전이 모두의 일상이었다. 늙어가는 청춘인지라,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느림의 운전이 부러워진다.
세월은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젊었던 시절, 날아다닐 것 같았다. 과속을 일삼았고 절대로 추월을 주지 않으려 했다. 추월한 차는 반드시 따라가 추월해야만 속이 시원했고, 얌체처럼 끼어드는 차량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기어이 차를 들이밀며 막아서야 직성이 풀리곤 했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빨리 간다면 보내주고, 끼어든다면 들어올 여유를 주어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월이 만들어 준 삶의 방식이지만 가끔은 불편한 일도 너무 많다.
편도 2차선 도로 정지선에 차량들이 두 줄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늦게 도착한 차량이 우회전길에 들어서며 잠시 쉼도 없이 슬금슬금 출발선을 넘어선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속도를 높여 2차선으로 끼어든다. 깜짝 놀라기도, 화가 나기도 하지만 못 본 체하는 것이 일상이다. 우회전하는 척하다 쏜살같이 원길로 들어서는 차량은 차라리 눈을 감고 만다.
유럽 여행하면서 일차선은 통행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추월선을 언제나 비워 놓는 것이 낯선 풍경이어서다. 일차선으로 추월하고 이차선으로 들어서고, 다시 일 차선으로 추월하고 이차선으로 주행하는 것은 당연한 듯했다. 질서 정연한 교통질서는 늙음의 운전에도 문제가 없었다. 편도 이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지만 일 차선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일차선을 점령한 운전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추월선임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시내에서 시골로 오는 왕복 이차선 규정속도는 60km로다. 항상 차량이 많아 불편하지만 추월이 불가능하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다. 차량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40km로 가는 차량, 뒤편으로는 십여 대의 차량이 뒤 따르고 있다. 조금은 천천히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따라 가지만, 말같이 쉽지는 않다. 세월은 참고 또 참으라 했지만 앞만 보고 따라가야 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
늙은 청춘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세찬 빗줄기에 안개까지 끼었으니 시야도 넓게 확보할 수 없다. 가능하면 운전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지만 시골에선 쉽지 않다. 야간 운전은 더욱 삼가야 하지만 비까지 내리는 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머뭇거리며 나선 비 오는 밤길 운전은 조심스럽다.
▲ 야간 운전에 만난 신호등 야간에 만나는 신호등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갖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는 교통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의 운전자들은 언제나 방어적인 운전으로 안전을 기해야 한다. |
ⓒ 박희종 |
비가 오는 복잡한 도로에 순식간에 끼어들고 또 나가는 차량, 다시 끼어들려고 기웃거리는 차량들의 행렬이다. 빗속에 보이지 않는 차선과 사람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하루라도 운전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월, 가구마다 여러 대의 차량이 있다.
세월은 운전에도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가능하면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하는 운전이 제일 안전하다는 것을. 나만을 고집하는 운전 습관과 수 초의 기다림을 참지 못해 누르는 클랙슨 소리, 언제쯤이면 편안한 운전이 할 수 있을까?
늙음이 주는 운동신경의 둔화와 신체적 변화에는 방법이 없다. 서로가 양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늘, 조심하고 또 양보하는 것이 최상의 운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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