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 잡아야 인류가 살죠”… ‘말벌퇴치 깡통’ 발명가 이야기
사라지는 식물수분 도우미 꿀벌 살리기 앞장서
그가 요즘 빠져있는 일은 말벌을 퇴치하는 비즈니스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退魔)’ 대신 말벌을 격멸하는 ‘퇴마사(退馬師)’를 자처하며 ‘봉사(蜂死)’ 활동가라고 익살을 떨었다.
경남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에서 양봉업을 하는 이신석(60대) 씨의 논리는 또박했다. 그는 “인류의 내일은 벌에게 달려있다”고 했다.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뉴스와 다큐 프로에 흔히 등장하는 ‘벌의 멸종’ 레퍼토리다.
벌이 사라지면 식물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옮겨붙는 수분(受粉)이 이뤄지지 않아 식물로 떠받치는 식량 생태계의 사슬이 끊어져 인류의 종말과 벌의 멸종은 같이한다는 무거운 명제이다.
종자식물의 수분은 곤충과 바람, 새, 사람의 손 등으로 이뤄지는데 이들 중신아비 가운데 벌이 큰 역할을 한다. 평소 느껍게 다가오지 않는 얘기지만 인류에게 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던지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듬직한 벌(꿀벌)을 공격해 사멸시키는 도살자도 벌이다. 꿀벌보다 몸집이 몇 배나 큰 말벌이다.
이신석 씨는 이 말벌들을 잡는 포획 방법에서 특허를 갖고 있다. ‘깡통말벌포획기’라는 이름으로 작년 5월께 특허출원을 했고 올해 5월 정식으로 특허가 등록됐다. 양봉과 관련한 특허만 7개를 갖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 씨의 양봉장과 공장을 찾았을 때 그는 전날 장수말벌에 쏘여 119를 불렀다며 “죽다 살아났다”고 너스레웃음을 지었다. 양봉업을 한 이후 두 번째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말벌 퇴치 기술자가 벌 가운데 최상위 포식자의 습격을 받아 몸이 마비되는 생명의 위기를 겪은 것이다.
그는 소비(꿀판) 위에 말벌 포획 깡통을 올려놓고 벌들을 유인한 뒤 위로 올라가려는 벌의 습성을 이용해 포획해 가둬버리는 ‘꿀병’을 발명했다. 몸집이 작은 꿀벌은 포획 쇠그물망 사이로 도망치지만 말벌은 산 채로 꿀병에 갇혀 담금술의 재료 등으로 활용된다.
기존에는 포획 통에 갇힌 말벌들을 불로 태워버리는 방식이어서 장치가 지저분해지고 내구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벌을 살려 담금주로 만들려고 하면 2차로 일손이 가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생포한 말벌의 뒷다리 등에 수명을 끊게 하는 독 약물을 일일이 묻혀 돌려보내 말벌 군집에 전파하도록 하는 방식도 써오고 있다.
여기에 이 씨의 또 다른 업그레이드 버전 특허가 이어진다. 한 개 더 늘린 꿀통에 약물을 놓아두면 생포된 말벌이 스스로 몸에 독을 묻히게 된다. 이때 포획된 말벌을 태워죽일 필요 없이 뚜껑을 열어주면 집으로 돌아가 이 약물을 벌집에 모여있는 다른 말벌에게 감염시키게 한다.
“같은 벌이라도 말벌은 인류에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말벌 퇴치 연구에 공을 세우고 있는 자신에게 ‘말벌 퇴치상’을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꿀벌은 인류의 내일까지 동행해야 하니 포식자인 말벌을 퇴치하는 발명가가 대우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딸기, 고추, 토마토 등 종자식물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수분 시기에 꿀벌이 없으면 끝장이다.
비닐하우스나 노지에서 수분을 도맡은 벌의 수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셈이다. 말벌 퇴치가 꿀 생산은 물론이고 작물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3개월 전쯤 특허 등록을 마친 이 씨는 요즘 ‘쏠쏠한’ 재미에 빠졌다. 양봉업계에 입소문과 유튜브를 타고 발명품이 회자하면서 그의 깡통말벌포획기를 써보겠다는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주로 중국산인 기존 포획통은 이 씨의 제품보다 훨씬 비싸고 기능도 제한적이어서 제품 경쟁력에서 비교가 안된다고 그는 자랑했다. 지난 봄 하나둘씩 직접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한 제품이 벌써 1000여개에 이르고 9월부터는 자신의 특허를 묶은 특수형 포획기를 출시했다.
이 씨의 유튜브 닉네임은 ‘이공’이다. 깡통말벌포획기 유튜브 영상을 시리즈로 올리고 있고 총 4만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양봉업계에선 ‘핫’한 인물이다. ‘벌나라꿀사랑’ 밴드도 운영 중이고 가끔 양봉 농업 관련 단체나 협회에 강의를 나간다.
전남 장흥과 영암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직업훈련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산이 좋아서 이주한 뒤 줄곧 직장과 사업을 오갔다. 지금은 부산 근교 대동에서 살며 일한다.
2010년 아내와 아들이 장염을 심하게 앓은 것이 지금 발명의 실마리가 됐다. “꿀이 좋다”고 어디서 들은 아내가 무작정 벌통 2개를 사 왔다. 양봉 숙제는 남편의 몫이었다.
소초(꿀벌 집틀)는 뭔지, 소비(꿀벌이 사는 집)가 뭔지도 모르면서 시작했다. 양봉을 배우고 연구하면서 말벌 퇴치라는 양봉계의 과제에 매달리게 됐다.
10여년 전 그렇게 말벌과 맞붙어 싸우다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쓴맛도 봤다. 공격하는 말벌을 피해 도망치다 굴렀지만 이제 말벌들이 그를 피해 다녀야 할 처지가 됐다.
“농사와 꿀이 관련된 일이라 세계 어느 나라도 양봉 사업을 한다”며 “꿀벌과 인류를 지키는 ‘고스트버스터즈’가 돼 말벌을 퇴치하는 발명품을 전 세계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그가 꾸고 있는 달달한(?) 꿈을 말했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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