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빠진 G20…15년 역사상 최초로 공동성명 못내나

이승호 2023. 9. 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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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인도 뉴델리에서 현지 미대생들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정상들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는 9~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 없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회원국 간 의견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의에 불참하는 등 어느 때보다 불협화음이 크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번 인도 회의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G20 정상회의가 출범한 지 15년 만에 공동성명을 내지 못하는 첫 회의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약 20번의 장관급 회의에서 단 한 건도 만장일치로 합의된 공동성명을 내놓지 못했다. G20 정상회의는 보통 각국의 재무장관을 비롯한 여러 장관급 회의를 먼저 개최해 주요 이슈에 대한 회원국 간 견해차를 좁힌 뒤, 정상회의에서 최종 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내왔다.

오는 9~1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인도 뉴델리의 한 거리에서 지난 6일 G20 홍보 포스터 앞을 무장한 경찰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회원국들이 가장 크게 대립한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 상황과 관련한 각국의 책임, 식량·에너지·금융 분야 의견을 공동성명에 담으려 할 때 러시아가 매번 반대 입장을 내놔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중국도 사안에 따라 러시아를 거들었다.

특히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것도 공동성명이 나올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선 진통 끝에 전쟁을 규탄하는 내용의 ‘발리 선언’이란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이는 회의에 참석한 시 주석의 의중에 따라 중국이 공동성명 채택에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엔 시 주석 대신 리창(李强) 총리가 회의에 참석한다. 마이클 쿠겔만 윌슨센터 남아시아연구소장은 “시 주석의 대리인은 (회의 과정에서) 타협이나 양보를 할 권한이 부족하다”며 “시 주석의 부재로 합의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고 짚었다.

주요 7개국(G7)을 주축으로 한 서방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이다. 프랑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으면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캐나다도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는 내용이 성명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위기에 처한 '다자 협력의 상징'


이 같은 갈등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참여하는 ‘다자 협력의 상징’인 G20의 위상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G20은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성장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은 G20을 통해 G7을 넘어 신흥 경제 강국들과 협력함으로써 어려움을 벗어나려 했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세계 경제 회복을 이끈 중국도 높아진 자국 위상을 확인하고, 서방의 G7에 대항하는 협의체로서 G20을 선호했다.

하지만 미·중 관계 악화로 이 구도가 깨지고 있다. 한국·일본·독일 등 G20 내 미국의 동맹·협력국들이 중국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G20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 중국 외교 전문 싱크탱크 카네기차이나의 폴 해넬 디렉터는 "지난 10년간 G20 회원국 다수가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며 "이는 (시 주석에겐) 냉정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이 러시아를 옹호하면서 더 강해졌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G20 불참이 G20보다 중국이 지배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브릭스(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 등을 시 주석이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고 전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불참으로 이번 인도 회의가 G7 국가의 발언력이 높아지는 회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를 상대로 가치 외교에 나설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발 고금리와 강달러로 인해 자본 이탈과 수출 감소의 고통을 겪어 온 신흥국으로선 미국 주도의 G20 체제에 무조건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서방과 중·러 진영 간 파워게임 양상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쿠겔만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이 공동성명 없이 끝나면 이는 서방과 비서방 간 협력의 한계와 진영 간 대립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인도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의장국인 인도의 입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G20에서 글로벌 사우스와 선진국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려왔다. 이를 위해 신흥국 부채 탕감 문제 등을 주요 의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대일로 등을 통해 신흥국들에 천문학적인 융자를 제공한 중국과 협의가 불가피한 사안이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쉬 립스키 수석 디렉터는 “중국의 동의 없이 (개도국) 채무 재조정 협상 등의 문제를 G20에서 논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CFR)의 만자리채터지 밀러 선임연구원은 “공동성명 채택이 불발은 인도에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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