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로 못가는 체험학습, 정부 대책 없이 단속 유예만?

윤성효 2023. 9. 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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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해석 따라 일선 학교 혼란 계속... 경찰청 단속 유예에도 교사들은 불안

[윤성효 기자]

 초등학생의 현장체험학습에 이용되는 차량에 어린이 통학버스 기준이 적용된다.
ⓒ 연합뉴스
"요즘 교단은 악성민원 때문에 골치다. 만약 일반 전세버스로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학부모가 민·형사상 책임을 물으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그래서 취소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취소 문의 전화를 여러 건 받는다. 학교에서는 취소해도 되는지를 묻는데, 우리는 당초 계약해 놓은 대로 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그래도 취소가 이어지고 있어 피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와 관광버스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법제처가 비정기적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차량도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대상에 해당한다는 유권 해석을 하면서 교육현장과 전세관광 버스업계가 대혼란에 빠진 것이다.

법제처는 최근 '교육과정 목적으로 진행하는 비상시적인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어린이 이동'에 이용되는 교통수단은 도로교통법(제2조 제23호)에 따른 '어린이 통학 등'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해석했다.

이에 경찰청은 교육부와 교육청에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비정기적인 운행 차량도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해 운영하도록 했다. 법제처 유권해석은 13세 미만 어린이(유치원, 초등학생)가 이용하는 차량만 해당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에 이용되는 차량의 경우 전체를 노란색으로 도색을 하고 '어린이 탑승'이라는 안내표지를 설치해야 한다. 또 어린이 체형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안전띠, 개방 가능한 창문, 정차와 어린이 승하차 여부를 알리는 표시등을 설치해야 한다.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에 13세 미만 어린이를 태우고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불법이다. 현재 경찰은 이같은 법제처 유권해석에 학교와 전세관광버스업계가 혼란에 빠지자 단속 유예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교육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2학기에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계획했던 상당수 학교에서는 관광버스업체에 취소를 통지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속 유예해도 사고가 나면 학부모 문제제기 할 것"

일선 학교에서는 경찰이 단속 유예를 한다고 해도 만약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학부모들이 민·형사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남 양산 소재 한 초등학교는 오는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려고 했다가 취소했다. 소규모 학교의 경우 장거리에서 150km 이내의 단거리로 변경하기도 한다.

최성연 전교조 경남지부 참교육실장은 "학교에서는 법제처가 밝힌 규정대로 된 버스를 현실적으로 구할 수 없다"라며 "교사들은 경찰청이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불법차량이기 때문에 불안감은 여전하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났을 경우 학부모들이 책임을 요구하며 문제제기할 가능성도 있어 강행하기에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최 실장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실시하라는 내용으로 공문을 내려 보내고 있지만, 실시하라는 내용뿐이지 만약 사고가 났을 경우 교육부나 교육청이 책임을 지겠다는 표현이 없다"라고 했다.

그는 "교육부가 전국 모든 학교에 전세관광버스를 이용했을 경우 사고가 나면 교사나 학교가 아니라 교육부에서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하고, 대안이 확실하게 마련될 때까지 연기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더구나 교사들은 악성민원 때문에 예민한 상황이다. 그런데 강제로 하라고만 하면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창원지역의 한 관광버스업체 관계자는 "취소 문의 전화가 많다. 학교에서는 취소해도 되느냐고 문의를 많이 하고 실제 취소를 한 학교도 있다"라며 "우리의 경우 이번 2학기에 계약했던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 6건이 취소됐는데 전체 차량 대수로는 60여대다. 1대당 가까운 거리는 하루 45만~50만원, 먼 거리는 110만원 정도인데 그만큼 손해가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대책이 없다. 단속 유예한다고 해도 교사들이 취소하는 가장 큰 이유 불안하기 때문인데 교육부에서 대책을 놓지 않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차량 도색이나 시설 마련과 관련해 그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바꾸어야 하는데 늦어지고 있다"라며 "내년 1월부터 신규로 등록되는 어린이보호차량은 전기차로 하도록 되어 있고, 관련 법률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업체는 법제처 해석대로 당장에 시설을 바꿀 수 없는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전국 관광버스기사들이 가입해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여러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라며 "교사와 교장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데 정부의 대책이 아직 미흡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교육부는 최근 관련 공문을 통해 "경찰이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단속 대신에 계도·홍보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학교에서는 기존과 동일하게 별도의 신고 없이 운송사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현장체험학습 추진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라 발생한 상황이라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교육부에서 내려온 공문을 일선 학교에 배포를 했다. 고민을 하고 있지만 교육청에서 해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다"라며 "일부 학교에서 취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내일(8일) 관련 회의를 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교육부의 현장체험학습 어린이통학버스 관련 질의응답.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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