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성폭력 첫 인정... 일본 연예기획사 사장 '사임'
[윤현 기자]
▲ 일본 연예기획사 창업자 고(故) 자니 기타가와의 성폭력 문제에 대한 자니즈 사무소 경영진의 기자회견을 중계하는 NHK방송 |
ⓒ NHK |
일본의 유명 연예기획사 '자니즈 사무소'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 사장이 과거 창업자의 남성 연습생 성폭력 문제를 인정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창업자 고(故) 자니 기타가와의 조카이기도 한 후지시마 사장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창업자의 성폭력 문제를 조사한 '재발 방지 특별팀'의 제언을 받아들여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라며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회사 측이 보상을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후임 사장은 과거 자니즈 소속 아이돌 그룹 '소년대' 멤버로 활동했던 연예인 히가시야마 노리유키가 맡기로 했다.
▲ 자니 기타가와의 미성년자 남성 연습생 성폭력 의혹을 보도하는 영국 BBC방송 |
ⓒ BBC |
이날 자니즈 사무소의 기자회견은 일본 주요 방송사들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생중계할 정도로 일본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2019년 사망한 기타가와는 생전에 자니즈 사무소를 설립해 '스마프'와 '아라시'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을 키워내며 일본 연예계의 '제왕'으로 군림했으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미성년자인 남성 연습생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 같은 의혹은 일본 주류 언론이 보도를 꺼리면서 가라앉는 듯했으나, 지난 3월 영국 공영 BBC방송이 '일본 J팝의 포식자'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폭로하면서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논란으로 떠올랐다.
당시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자 유엔 인권이사회의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전문가들은 지난달 "자니즈 소속 연예인 및 연습생 수백 명이 성적 착취와 학대를 당했다고 우려할 의혹이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자니즈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조사단은 지난달 30일 "기타가와가 1970년대 전반부터 사망하기 직전인 2010년대 중반까지 10대 남성 연습생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했고, 피해자가 적어도 수백 명에 달한다는 증언을 여러 명에게서 들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관련 기사 : 일 연예계 '자니즈' 조사단 "장기간 광범위하게 성 착취").
그러면서 후지시마 사장에 대해서도 "취임할 때부터 의혹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조사에 나서지 않는 등 경영자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라며 "사장을 교체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 자니즈 사무소의 신임 사장을 맡은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
ⓒ NHK |
충격적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후지시마 사장은 끝내 물러나게 됐다. 일본 공영 NHK방송은 이날 "자니즈 사무소가 기타가와의 성폭력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히가시야마 신임 사장도 "조사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라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성폭력 문제를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직접 피해를 들은 적은 없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런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 "우리(연습생)는 기타가와가 절대적인 존재이며, 항상 옳다고 생각했다"라며 "이제 와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며 기타가와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올해 안에 연예계에서 은퇴하겠다"라며 "인생을 걸고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가시야마 신임 사장은 팬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며 "우선은 모두 힘을 합쳐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는 길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 자니즈 사무소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 |
ⓒ NHK |
다만 후지시마 사장은 "피해 보상과 관련한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리려면 대표 이사직은 당분간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라며 "보상 절차가 진행되면 신속하게 대표 이사직에서도 물러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식 처분 문제와 관련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한편, 과거에 기타가와의 성폭력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던 논란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고, 이를 대단히 죄송하게 여기고 있다"라며 "삼촌이 일으킨 문제이므로 내가 책임을 지고 싶다"라고 말했다.
NHK방송에 따르면 기타가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만든 모임은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회사 측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꿈만 같다"라고 밝혔다. 다만 히가시야마 신임 사장이 성폭력 문제를 "소문으로만 들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럽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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