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통제 서울’에서 ‘열린 서울’로
'노키즈존' '노시니어존'도 등장
'누군가' 불특정 다수를 관리
효과엔 한계, 남는 건 불쾌감뿐
누구나 환영하는 열린 정책 필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어느덧 서울에 세 차례 다녀왔다. 꽤 길게 머물렀는데, 보고 싶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처음에는 그저 반갑기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팬데믹의 영향 때문일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규제가 거의 사라진 올해 봄에는 더 불편했다. 그리고 이유를 찾았다. 어딜 가나 관리를 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대표적 사례인 지하철을 제외하고도 이제는 작은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어투도 거친 편이다. 대학가 식당 화장실에서 변기에 휴지를 넣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는 일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들른 한 식당 화장실에서는 변기에 휴지를 넣지 말라며 만약에 적발되면 법적 처리를 하겠다는 무서운 경고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는 사인에도 예전에는 금연 두 글자만 있었는데, 이제는 공공연하게 CCTV 단속 중이라는 표시가 함께 있다. 안내와 경고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른바 ‘관리형 문장’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인구가 밀집될수록 ‘관리형 문장’은 더 많아지게 되니 서울은 가는 곳마다 이런 관리형 문장이 붙어 있다. 나는 흡연자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흡연자를 관리하는 이런 문장이 나의 행동을 제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도시 공간적 측면에서 보면 다른 문제다. 어딜 가나 이런 관리형 문장을 마주하는 일상은 불편하다. 편하고 자유롭다기보다 어딘가 무섭고 닫힌 느낌을 준다. 행여나 실수라도 하면 당장 경찰서에 끌려갈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니 살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게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 무섭다.
아이의 출입을 금한다는 한국의 노키즈존 안내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서도 다룰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 같다. 그 자체를 반대해야 하는데, 어린이만 출입을 금지하는 건 문제라며 어르신들 출입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리고 정말로 노시니어존 안내가 등장했다. 어린아이들에 이어 일정 나이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관리형 문장이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를 선호하지 않고 나아가 배제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문화라니!
이런 ‘관리형 문장’ ‘노존’ 등은 단순히 누군가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불쾌감을 야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리형 문장의 잦은 노출은 ‘누군가’의 판단이 개입된 결과다. 다시 말해 그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관리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금하려면 금연 표시만 붙여두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강한 경고의 뜻을 담는다. 안내문으로 해결이 안 되면 예전에는 당사자를 향해 직접 경고하거나 무시를 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경고문을 붙인다. 예외를 해결하는 데 들일 정서적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게 아닐까. 그 ‘누군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무섭다.
어조는 갈수록 강해지고 엄격해진다. 예전에는 강력한 경고의 역할을 하던 법적 조치라는 말도 이제는 너무 일상적이라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다. 말이 세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경고문의 세기도 한계가 있고, 법적 조치의 단골 무기인 CCTV로도 모든 순간을 다 잡아낼 수는 없다. 효과는 한계가 있고, 남는 건 불쾌감이다. 불특정 다수를 법적 조치의 대상으로 가정하는 관리형 문장은 손님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다. 이런 불쾌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견딜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관리형 문장도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가는 곳마다 불쾌감이 너무 크다.
노존 안내문은 또 다른 의미로 불편하다.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자와의 동반을 요구하거나 노약자의 사고를 막기 위해 출입과 행위를 제한하는 경우도 많다. 담배나 술처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판매 제한 상품도 있다. 모두 다 안전을 위해서,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조치다.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도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노존은 철저히 차별과 배제의 언어다. 드나드는 사람을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기인한다. 이 목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쉬운 관리의 추구다. 누군가의 출입을 제한하면 공간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이들로 인해 신경 쓸 일이 줄어든다거나 어르신들의 무례를 겪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또 하나는 대상을 선호하지 않음을, 업신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공공장소에서 출입과 이용에 제한을 두는 이유로 작동하는 건 인권 침해이자 반민주주의적 행위다.
잠시 떠올려보자. 무심코 다니던 서울의 거리와 공간마다 이런 강압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나붙어 있다. 서울은 전국적으로 대단히 영향력이 큰 도시다. 서울에서 뭔가를 시작하면 머지않아 지방으로 확산하곤 한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가 확산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도시 전체 이미지에 손해를 끼치는 이런 문제에 시는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경고문을 붙이는 곳마다 ‘엄벌에 처하겠다’는 발상은 곤란하다.
서울시가 운영하거나 관리 책임이 있는 곳에서 모범을 보이고, 민주국가 수도답게 누구나 환영하는 열린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오늘날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국수주의의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열린 방향으로 흘러가는 메가트렌드와 정반대의 양상이 서울에서 감지된다. 열린 서울을 지향하는 쪽으로 그 방향을 다시 돌릴 필요가 있다. 열린 서울이 될수록 가는 곳마다 마주하는 살벌한 관리형 문장, 배제와 차별의 안내문도 점점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100명에 알렸는데 달랑 5명 참석…결혼식하다 인생 되돌아본 부부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황정음처럼 헤어지면 큰일"…이혼전문 변호사 뜯어 말리는 이유 - 아시아경제
- "언니들 이러려고 돈 벌었다"…동덕여대 졸업생들, 트럭 시위 동참 - 아시아경제
- "번호 몰라도 근처에 있으면 단톡방 초대"…카톡 신기능 뭐지? - 아시아경제
- "'김 시장' 불렀다고 욕 하다니"…의왕시장에 뿔난 시의원들 - 아시아경제
- "평일 1000만원 매출에도 나가는 돈에 먹튀도 많아"…정준하 웃픈 사연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