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선후보 모두 여성 확정…"美보다 먼저 유리천장 깨질수도"(종합)

정현진 2023. 9. 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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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월 대선 전 여야 모두 女후보 확정
1824년 연방 수립 후 첫 여성대통령 기대

내년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멕시코에서 연방정부 수립 후 200년 만에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 중 남성 우월주의가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멕시코에서 여야 모두 여성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멕시코의 야당 대선 후보 소치틀 갈베스 상원의원(사진 왼쪽)과 여당 대선 후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전 멕시코시티 시장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 흔드는 여성 파워…美보다 유리천장 먼저 깨진다

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여당 국가재건운동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개념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전 멕시코시티 시장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셰인바움 전 시장은 '4차 변혁(4T) 위원장'에 오른 뒤 향후 전당대회를 거쳐 후보로 공식 추대된다.

셰인바움 전 시장은 여론조사 발표 이후 보라색 옷을 입고 기자회견을 위해 연단에 서서 "오늘 멕시코 국민들이 결정했다"며 "우리는 2024년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외쳤다. 지지자들은 "대통령"이라며 셰인바움 전 시장을 향해 소리쳤다.

앞서 야당에서는 이미 여성 후보자를 선출, 확정했다. 우파 야당 연합체인 광역전선은 지난달 31일 대선 통합 후보로 소치틀 갈베스(60) 상원의원을 후보로 확정했다. 광역전선은 2000년까지 40여년 간 멕시코 정계를 장악해온 제도혁명당을 포함해 국민행동당과 민주혁명당 등 3당 연합체다.

멕시코 대선이 아직 10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주목받는 건 두 유력 후보가 모두 여성이기 때문이다.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후 200년간 멕시코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 적은 없었다.

여당 대선 후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전 멕시코시티 시장이 6일(현지시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개념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뒤 기자회견에서 자축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무엇보다 멕시코는 '마초 문화(마치스모·El Machismo)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유독 남성 우월주의가 강하다. 뉴질랜드 등에서 1890년대부터 여성 참정권이 인정됐지만 멕시코에서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한 건 1953년이었다. 또 2019년에서야 개헌을 통해 헌법에 성평등적 요소를 추가할 만큼 여성의 사회적 권리 보장이 더뎠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멕시코에서 여성 파워는 강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멕시코의 대법원장은 여성이며, 2021년 이후 멕시코 입법부 절반은 여성으로 채워졌다. WP는 "멕시코의 여성 정치인이 인근 국가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유리천장을 깨고 있다"며 미국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먼저 등장하는 것에 의미를 실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더라도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 자체를 뒤바꾸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바르바라 곤잘레스 멕시코 정치 애널리스트는 "우리에겐 여성 후보자가 있긴 하지만 남성이 주도하는 정당과 자원, 의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단숨에 문화가 바뀌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차차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반박도 제기된다.

이공계 출신 공통점…유대인 vs 원주민 출신 차이

셰인바움 전 시장과 갈베스 상원의원은 여성이라는 점 외에도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 이공계 전공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에너지 공학 박사인 셰인바움 전 시장은 그동안 에너지와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 등을 주제로 책을 쓰고 논문도 내어온 인물이다. 그는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에 참여했고 2018년에는 BBC방송이 꼽은 여성 100인에 들기도 했다.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갈베스 상원의원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정계 입문 전에 스마트 인프라 시스템과 관련한 기술 회사를 두 곳 설립한 바 있다. 회사 수익으로 아동 영양실조 퇴치와 원주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재단을 만들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셰인바움 전 시장과 갈베스 상원의원은 여성과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아 보이지만, 성장 과정이나 정치 경험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셰인바움 전 시장은 불가리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멕시코로 탈출한 조부모가 일군 중산층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다. 화학공학자인 아버지, 생물학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셰인바움 전 시장은 에너지 공학 박사, 남동생은 물리학자가 됐다. 집안 전체가 과학자이다.

가난한 멕시코 원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갈베스 상원의원은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멕시코 전통 음식인 타말을 만들어 팔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는 원주민 학교의 교사였으며, 가정 폭력을 일삼는 가학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AP는 전했다. 그는 지금도 종종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며, 농촌 여성들이 일할 때 입는 전통 의상인 우이필을 즐겨 입는 등 서민적인 모습으로 호감도를 높이고 있다.

정치 경험은 셰인바움 전 시장이 갈베스 상원의원보다 길다. 셰인바움 전 시장은 2000년 현 멕시코 대통령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당시 멕시코시티 시장 내각에 들어가 환경 문제를 담당하면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갈베스 상원의원은 2015년 미구엘 이달고 시장으로 뽑혀 정치 인생이 시작됐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셰인바움 전 시장은 2018년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최초 여성 시장이자 최초의 유대인 시장으로 선출됐으며, 갈베스 상원의원은 2018년 연방 선거에서 멕시코시티 상원의원 경선에 참여했다가 낙선한 뒤 비례대표로 상원의원이 됐다.

외신은 대선 캠페인이 본격화되면 범죄 문제 해결이 주된 이슈가 될 것으로 봤다. 최근 갱단이 공무원을 납치하고 경찰차를 폭파했으며 시장 방화를 저지르는 등 치안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심각하게 느끼는 멕시코인의 비중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셰인바움 전 시장과 갈베스 상원의원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셰인바움 전 시장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현지 여론조사를 인용해, 만약 지금 대선이 치러지면 셰인바움 전 시장이 갈베스 상원의원을 44대 27로 이길 것이라고 전했다. 셰인바움 전 시장에 대한 지지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의 인기가 소속 정당인 국가재건운동으로 이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멕시코 대통령의 임기는 6년 단임으로, 중임은 불가하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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