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합법" 보수적인 멕시코의 반전 판결…"美는 후퇴" 비판

박형수 2023. 9. 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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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낙태죄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그간 일부 주(州)에서 불법이었던 낙태가 멕시코 전역에서 합법화되는 길이 열렸다. 외신은 가톨릭 신자가 전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보수적인 멕시코가 낙태 합법화라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면서 “최근 미국이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과 상반되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6일(현지시간) AP통신과 악시오스·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날 멕시코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인권을 침해한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멕시코 의회는 연방 헌법에서 낙태죄를 삭제하고, 공중 보건 기관들은 낙태를 요청하는 환자에게 해당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의료인은 낙태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는다. 또 과거 낙태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사면될 수 있다.

한 여성이 "나는 결정하겠습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멕시코 여성의 승리이자 정의의 날"


멕시코의 여성 인권 단체 등은 소셜미디어에는 일제히 ‘녹색 하트’ 표시와 함께 축하 메시지를 게시했다. 녹색 하트는 중남미의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사회 운동인 ‘녹색 물결’을 상징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이미 중남미 국가 중 콜롬비아·쿠바·우루과이·아르헨티나 등이 낙태를 합법화했다.

멕시코 국립여성연구소는 “오늘은 멕시코 여성의 승리의 날이자 정의의 날”이라며 “성 평등을 향한 큰 진전”이라며 반겼다. 패트리샤 메르카도 상원의원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는 좋은 소식”이라며 “상원은 이 판결을 시행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가능한 빨리 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멕시코의 32개 주 가운데 20개 주는 낙태를 불법으로 법률에 명시했다. 공립 주병원이나 진료소에선 태아의 기형이 심하거나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그리고 강간 등의 이유로 임신한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왔다.

멕시코에서 가장 먼저 낙태를 합법화한 주는 수도인 멕시코시티(2007년)다. 중부 도시 아과스칼리엔테스는 지난달 낙태죄를 폐지해 낙태 합법화에 동참한 12번째 주가 됐다. 여성 인권 운동가인 사라 로베라는 “주 정부에서 낙태 합법화 사실을 홍보하지 않아, 많은 여성들이 낙태가 가능하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AFP에 전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낙태권 옹호자들이 '합법적이고 자유로운 낙태'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멕시코는 전진, 미국은 후퇴" 비판도


연방대법원 판결은 즉각적으로 주 의회와 주 법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주에 거주하는 여성이라도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는 합법적으로 낙태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는 멕시코 정부의 의료 서비스 중앙 집중화 추진 움직임과 맞물려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여성단체들은 이미 주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낙태죄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해놓은 상태다. 여성 인권단체인 히레의 이사벨 풀다는 “주 법원에서도 연방대법원과 같은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면서 “계단식 효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6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낙태권 폐지 1주년'을 맞아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악시오스는 멕시코의 이번 결정이 미국 전역에 낙태죄를 부활시킨 미국의 상황과 상반된다고 전했다.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여성의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폐기했다. 현재 15개 주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 특히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텍사스주는 낙태를 가장 엄격하게 금지한 곳이다. FT는 “일부 미국 여성들이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낙태옹호론자인 베로니카 크루즈는 “멕시코가 전진하고 있는데, 미국이 후퇴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CNN에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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