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마음의 병' 내면고백이 치유 시작…명쾌한 정답은 없어
최근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 출간
자신 아는 것 중요하지만 과몰입은 해(害)
최근 번아웃 우울증 많아…칭찬일기 장기적으로 효과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마음 건강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버다. 채널명은 ‘뇌부자들’. 2017년 연세대학교 의대 동기 6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동명의 팟캐스트로 시작해 지금은 유튜브로 외연을 넓혀 대중이 궁금해할 법한 마음 건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기도 하고, 생경한 개념의 이해도를 높이면서 현재 17만명이 구독하고 있다. 그 접점에서 전해지는 독자들의 힐링, 채움, 나아짐의 소식이 의사로 존재하는 기쁨을 선사한다고 그는 고백한다.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에 올해 초 글쓰기 플랫폼으로 접점을 넓혔다. ‘밀리의 서재’에 연재를 시작했고, 주목도는 빠르게 높아졌다. 현재 그의 콘텐츠를 선택한 독자는 5만여명. 짧은 책 리뷰는 수천개에 달한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단행본으로 정식 출간됐다. 그는 "팟캐스트에서 흘러가버린 저의 말들이 누군가에게 더 쉽게 가닿을 수 있도록 글로 정리했다"며 "말로 다 전달되지 않아 아쉬웠던 마음을 글로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타인으로부터, 때로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던진 날 선 비수에 신음하며 ‘내 탓’을 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조언을 담은 책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할까(오리지널스)’의 저자 허규형 전문의에게 마음 건강에 관해 물었다.
-심리적 궁금증과 관련한 이론을 쉽게 풀어내 주목받고 있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심리에 관심이 많았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장남의 부담감 등도 작용했던 것 같다. 의대 가서 의사를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하게 됐다. 반복적인 작업을 좋아하지 않는데, 정신건강의학과는 반복 처방을 내리는 여타의 과와 다를 것 같았다. 실제로 내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편이다.
-정신의학과를 선택하면서 품었던 기대가 현실과 부합했나.
▲본래 카우치(몸을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소파)에 누운 내담자의 정신분석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지금의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상담보다는 뇌과학에 기반한 처방에 좀 더 비중이 쏠린다. 다만 환자의 이야기에도 최대한 집중하려 한다. 같은 우울증이라도 양상이 다양한데,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조언해드리는 것도 제게는 잘 맞는 것 같다. 큰 보람을 느낀다.
-그 어느 시대보다 마음 건강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때인 듯하다.
▲힘든 시기라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비교’ 차원에서 볼 때 마음 건강 지수가 높다고 했던 미얀마나 방글라데시도 행복지수가 많이 떨어졌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차원에서 봐도 생존·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자아실현 욕구로 초점이 옮겨가는데, 여기서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나 싶다. ‘배불러서 그래. 예전이라면 이 정도 누리며 살았겠어?’라는 말이 냉정할 순 있어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사회가 안정되면서 답이 없는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왜 중요한가.
▲몸이 아플 때 이유를 모르면 그 자체가 괴롭다. 경하든, 중하든 내가 이래서 힘들었다는 맥락이 이해되면 답답한 게 줄어드는 것처럼 정신건강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힘든지, 이런 사소한 것으로 힘들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도 있네’라고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도움받을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지는 거다.
-하지만 심리적 인과관계에 너무 몰입하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힘들어질 수도 있나.
▲그렇다. 모든 일을 정신 문제에 연관 짓는다든지, 과거 트라우마와 연결 지으려는 건 좋지 않다. 자신을 아는 건 좋은데 너무 깊이 알려고 하다 보니 그 자체가 또 괴로움이 된다. 이후 태도도 중요하다. 내 상태가 이러니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못 하고 이런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는 건 좋은데, 제대로 알고 다음 액션으로 넘어가야 한다. 밸런스가 중요하다. 사실 제 유튜브 방송을 보고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 중에 명쾌한 정답을 기대하고 오시는 분이 많다. 다만 방송에서는 특정 사안에 모범 해답을 드린 것이라 실제 적용에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본인 이야기를 꺼내놓는 과정에서 치유가 이뤄지는데, 자꾸 제게서 명쾌한 해결책만을 듣기 원하는 경우가 있어 난감할 때가 있다.
-요즘 특히 병원을 많이 찾는 증상이 있는지.
▲번아웃으로 우울증 겪는 분이 많이 오신다. 투입한 노력 대비 보상들이 따라오지 않으면서 지친 경우가 대다수다. 저성장 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나. 본인이 견디고 버티고 노력하고 하다가 크게 지쳐서 오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어떤 치료과정을 거치나.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다.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원인을 찾고, 없어진 에너지를 생기게 하는 거다. 고갈 원인은 다양하다. 완벽주의 성향일 수도 있고, 주변인들 특히 가족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런 경우 독립을 권유하기도 한다.
-마음의 병은 완치가 어렵고 재발 우려가 높은 것으로 안다. 낙심하게 되지는 않는지.
▲환자를 잃었을 때 가장 낙심한다. 죽음을 자주 언급하시는 분들은 정말 오래 붙잡고 얘기를 나눈다. 어떤 분은 1회 진료에 40분 이야기하다 다른 환자 진료 보고 다시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개원 초기에는 매일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을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잘못했구나’ ‘다른 의사분께 가셨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자살 징후가 있다고는 하지만, 웃으며 힘든 내색 안 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목숨을 끊는 일도 적지 않은 듯한데.
▲의외로 우울증이 회복되는 시기에 자살 위험도가 가장 높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생각을 실행에 옮길 힘조차 없다가, 좀 나아졌을 때 죽음을 실행한다. 날을 잡고 실행한다기보다 트리거(촉발계기)가 미치는 영향이 커서 사실 예측하기가 어렵다.
-책에서 칭찬일기의 효과를 강조했는데, 일각에서는 칭찬일기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개인 편차가 크고 ‘나만 안 된다’는 부정적 인식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분명한 효과가 있고, 특히 장기적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필라테스가 단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바른 자세의 습관을 길러주지 않나. 마찬가지로 칭찬일기도 생각의 습관을 바로잡아준다. 단기효과가 없다고 해도 꾸준히 이어갈 때 자신이 잘하고 못하고를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오늘 그래서 그걸 그렇게 했구나’라고 이해가 되는 거다.
-이론을 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일 텐데, 의사들의 정신건강은 어떠한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막상 본인의 일이 됐을 때는 잘 안된다. 심지어 자살률도 높은 편이다.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AI)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AI라면 똑같은 반응을 내놓겠지만 사람은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을 해결하면서 상담의 효과를 높여나간다. 불완전한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밀리의 서재에 기고한 글이 좋은 반응을 얻어 정식 출간됐다. 소감이 어떠한지.
▲너무 감사하다. 2017년부터 대학 동기 6명과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시작하면서 신문 연재를 함께 진행한 적은 있지만, 혼자 글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신질환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자는 마음에서 실제 상담하는 느낌을 살려 쉽게 풀어내려 노력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아는 데 도움이 되셨다는 피드백에 감사한 마음이다. 마음 건강의 이해 폭을 넓히는 데 일조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
허규형 전문의 연세가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시작하여 동일한 이름의 유튜브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 출연과 칼럼 기고, 강연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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