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억 6500만원과 언론 신뢰의 위기

소종섭 2023. 9. 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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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기자 생활하기 힘든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책 3권 값으로 1억 6500만원을 받았다"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해명이 그렇다.

신 전 위원장은 1984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다.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뉴스타파 전문위원 등을 지낸 언론 운동의 대표 주자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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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기자 생활하기 힘든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매체 숫자가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정기간행물로 등록된 인터넷 신문사만 봐도 2005년 286개에서 2023년 3월 기준 1만 1,257개로 크게 늘었다. 또 속보 경쟁이 펼쳐지면서 써야 하는 기사가 많아졌다. 기자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하성 비판도 일상화됐다. 무엇 보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발생하는 언론계의 부끄럽고 참담한 일들은 기자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책 3권 값으로 1억 6500만원을 받았다”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해명이 그렇다. 그의 해명은 상식적이지 않다. 신 전 위원장은 1984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다.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뉴스타파 전문위원 등을 지낸 언론 운동의 대표 주자 중 한명이다. 그런 그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그가 말하는 ‘책’은 2020년에 발간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 지도’이다. 신 전 위원장은 평소 혼맥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기득권층 부패 구조 밑바탕에 언론-재벌-정치권의 혼맥이 있다는 것은 그의 오랜 주장이다. 출소한 김 씨는 "책값으로 준 게 맞다"고 했다. 김 씨가 뭐라고 말했든 간에 1억6500만원이 책값이라는 데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신 전 위원장이 김 씨를 인터뷰한 시점은 2021년 9월 15일. 그런데 공개한 것은 대통령 선거 사흘 전인 2022년 3월 6일이다. 그는 “김만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지만 화천대유, 천화동인 같은 주역(周易) 글귀로 회사 이름을 지을 사람은 김 씨 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를 수소문했다”고 인터뷰 경위를 설명했지만 석연치 않다. 무언가 다른 맥락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왜 인터뷰 파일을 6개월 가까이 갖고 있다가 대선 직전에야 공개했는지도 의문이다. 향후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공정하고 균형 있게 보도하는 기자 본연의 역할보다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 아닌가, 즉 ‘플레이어’로서 직접 뛰어든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번 사건을 두고 여권은 “대선 조작 사건이다”라고 하고 야권은 “방송 길들이기가 시작됐다”고 맞서고 있다. 전형적인 정치 공방이다. 인터뷰 배후에 정치권과 관계가 있었던 것인지, 뉴스타파 보도와 특정 성향 언론들이 사건을 키우려고 밀약했던 것인지, 인터뷰 내용의 진실은 무엇인지 등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추측은 가능하지만, 판단할만한 근거는 부족하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언론인들의 돈거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던 게 얼마 전이다. 김만배 씨로부터 9억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경우가 있었고 8000만원을 빌려주고 9000만원을 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그런데 또 ‘책값 1억 6500만원’이 나왔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권력에 대한 감시다. 기자가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이권을 챙기는 가운데 돈이 오갔다면 언론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이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위기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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