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싶지 않았는데... 주택 청약을 앞두고 생겨버렸다

조영준 2023. 9. 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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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97]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5 <딩크족>

[조영준 기자]

 
 영화 <딩크족>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그래도 할 만하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하나만 생각하면 되니까. 이 문제가 두 개 이상이 되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문제 하나에 또 다른 문제 하나가 더해지는 것 이상의 어려움이 생긴다. 특히 두 가지 문제가 서로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경우에는 양쪽 모두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조금은 난감한 순간에 놓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맞벌이 무자녀 가정을 의미하는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가정은 단어 그 자체부터 양쪽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일을 하는 이유는 대개 그 가정의 경제적 상황 때문일 것이고, 아이는 계획과 무관하게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니까. 경제적 발돋움을 위한 여러 시도와 계속해서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양쪽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화 속 부부, 남편(곽민규 분)과 아내(하정민 분)도 그런 딩크족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세를 전전하는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아파트 청약을 통해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 서울 도심에 청약을 받아 오른 집값으로만 수 억씩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목적이 더욱 또렷하고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청약 당첨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청약 브로커 현숙(오민애 분)을 만나기로 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20년째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그녀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인상은 조금 별로지만 적어도 실력만큼은 있어 보인단다. 순조롭게 잘 풀리는 듯하던 두 사람의 계획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새 생명에 의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현실적으로는 아이가 있으면 현재의 청약 제도 안에서 가점을 부여받아 더 유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부부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하는 딩크족이라는 것. 다시 한번 겹쳐지지 않는 이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김승민 감독의 영화 <딩크족>은 젊은 세대의 고민과 어려운 현실을 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주택 청약과 출산의 문제를 일종의 주택사기라는 하나의 문제적 행위로 묶어 윤리적 딜레마의 자리에까지 올려놓는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신혼부부에게 현실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더 달콤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켜보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영화의 눈매는 꽤 날카롭다. 법과 제도의 맹점 위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의 도움을 받아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두 사람이 러닝타임의 끝자락에 이르러 흔들리게 되는 까닭이다.
 
 영화 <딩크족>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2.
"좋은 케이스 하나 만들어 봅시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딩크족이 가지는 두 가지 숙명 가운데 하나를 저버리게 된 부부는 자연스럽게 나머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부터 합의를 했듯이 아이를 최대한 빨리 지우고자 마음 먹지만, 이 상황을 잘 이용해서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자는 현숙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두 사람이다. 그녀의 제안은 어차피 아이를 지우기로 결심했으니 쌍둥이를 임신한 것으로 청약 신청을 넣는 방법이다. 더 높은 확률이 보장되는 다자녀 청약 케이스를 노리는 것이 목표. 아이를 지우는 일은 결과를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숙은 아내가 다자녀를 임신 중이라는 서류도 만들어 온다.

결과는 성공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했지만 현숙은 두 사람에게 아파트 청약을 안겼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부부의 딜레마를 제시하는 것은 이 장면부터다. 기쁨도 잠시, 엄격해진 국가 규제로 인해 국토부 직원들이 청약 당첨 가정에 직접 인터뷰를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의 계획은 수정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제출한 서류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직원의 방문이 있기 전까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여야 한다(아이를 낳기 전에 인터뷰가 이루어질 테니 쌍둥이 문제는 임신한 모습만 보여주면 해결된다). 진짜 문제는 이제 9주 차에 접어들고 있는 아이 때문인데, 3개월이 지나면 낙태도 쉽지 않고 산모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속에 두 사람은 놓이게 된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신의 강력한 주장으로 발생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진행했던 브로커 현숙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당장 인터뷰 문제만 잘 해결되면, 5개월이 조금 지나도 아이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두 사람이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지 못하고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에 흠집이 생길까 하는 것이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이 앞서는 부부에게 인터뷰에 앞서 딱히 시작하지도 않은 입덧을 하라고 가르치고, 나오지 않은 배도 나와 보이도록 옷만 껴입게 만든다.

03.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이 브레이크도 없이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동안 처음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두 사람을 만나러 온 국토부 직원이 내년부터 기준이 더 까다로워져서 두 사람의 경우에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집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아이가 태어나면 한 번 더 직접 만나러 오겠다고 선언하는 장면부터가 시작이다. 두 사람의 뜻이 어떤지 잘 알면서도 아이를 포기하는 일은 죄라며 옥죄어 오는 엄마의 잔소리와 산부인과에서 직접 듣고 보게 된 뱃속의 아이가 전해오는 심장 박동 소리도 부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두 사람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상황이 아니다. 부부는 아이를 포기하든지 아파트를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심지어 처음의 선택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문제는 또 생긴다. 청약을 신청할 당시 브로커 현숙의 허위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파트는 고사하고 감옥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파트를 포기하는 경우에도 한 번 당첨된 이력으로 인해 후순위가 되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일은 평생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세 차익만 최소 3억, 지역 시세를 볼 때는 7~8억은 거뜬한 천금 같은 기회를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영화 <딩크족>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4.
"저희도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하나가 더 있다. 어떻게든 아파트를 마련하고자 하는 남편에 비해 아내가 훨씬 더 아이를 지우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리적 딜레마에 더 가까운 아내와 물질적인 선택에 대해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의 태도 차이다.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지우겠다던 처음 아내의 태도를 생각하면 조금 당혹스럽지만, 이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낙태를 하고 나면 자신의 몸이 아이의 무덤이 된다던 그녀의 말처럼 아이의 생사와 관련한 문제는 그를 품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문제를 대하는 여성과 남성, 극 중 아내와 남편의 시각과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저 막연히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낙태를 하겠다고 생각할 때와 실제로 아이를 지워야 하는 순간이 눈앞에 찾아왔을 때 경험하는 감정의 파고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를 직접 경험하는 여성과 그것을 곁에서 지켜만 보는 남성의 감정적 깊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가장 기저에 놓여 있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감각을 이해는 하되 직접 공유할 수는 없는 것. 아이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아파트는 한 번 기회가 넘어가면 언제 또 그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던 현숙과 아이의 생사 여부를 직접 손에 쥐고 있는 부부의 사이에도 거리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두 사람이 아파트 청약과 아이를 저울질하는 동안 영화는 두 어린아이의 모습을 특정 장면마다 등장시킨다. 창백한 표정으로 때때로 피눈물을 흘리는 다소 기괴한 모습의 존재다. 부부가 포기하려고 했던 뱃속 아이의 재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존재들은 사실 극 중 초반에서 아무런 대가나 비교 없이 딩크족의 의미로만 유산이 고려될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작품이 극 중 두 인물에게 부여하는 최소한의 죄의식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아이를 갖지 않는 것과 물질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것에 결과는 같을지언정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들 존재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영혼을 발아래로 밀어 넣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 <딩크족>이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현실의 문제를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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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다섯 번째 큐레이션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때’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9월 15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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