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방통위의 개혁과 기회비용

임철영 2023. 9. 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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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같은 값의 물건이지만 얻었을 때 기쁨보다 잃었을 때 충격을 더 크게 받는다.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거나 의도한 바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매몰 비용'이 아까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무리수를 둔다.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 국회 입법 기능을 통해 '가짜뉴스 규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이른바 '언론개혁 6법'을 추진했다면, 이번 정부는 방통위가 행정력을 활용해 같은 역할을 맡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것처럼 논의는 고사하고 대화조차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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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이 이끄는 새 방통위
공영방송 개혁부터 한다지만…
갈등 부추기고 사회적 비용 야기

사람은 같은 값의 물건이지만 얻었을 때 기쁨보다 잃었을 때 충격을 더 크게 받는다.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거나 의도한 바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매몰 비용’이 아까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무리수를 둔다.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이다. 여기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가 더해지면 편향(bias)이 나타난다.

행동경제학은 이 같은 경향 탓에 사람은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과거의 생각과 느낌에 천착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만을 좇고, 더욱 강한 확신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결국 아전인수식 근거에 천착해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논리의 악순환에 빠져 시야가 좁아지고 비합리적 선택을 한다. 그 결과는 ‘손실’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로 출범했다. 15년 전 MB(이명박)식 언론개혁을 추진했던 이동관 위원장이 여러 의혹과 반발을 뚫고 대통령의 재가받아 지휘를 시작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경세유표’ 서문을 인용해 ‘망국론’을 피력한 취임사에서 ‘공영방송’을 8번이나 언급했을 만큼 시급하고 절실했던 것일까. 그는 취임 첫날 해묵은 과제를 처리하듯 속전속결로 공영방송 이사진을 교체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위원장은 당분간 공영방송 인사 개혁을 위한 명분을 쌓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공영방송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선도하겠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공영방송이 국민의 선택과 심판이라는 견제 속에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는 맥락에서 편향적 보도와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도 강도 높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쌓아 올린 명분은 궁극적으로 강력한 제재의 기틀을 마련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 방통위는 ‘무책임’을 골자로 네이버와 카카오 등 거대 포털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미디어와 공론의 장을 겨냥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 국회 입법 기능을 통해 ‘가짜뉴스 규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이른바 ‘언론개혁 6법’을 추진했다면, 이번 정부는 방통위가 행정력을 활용해 같은 역할을 맡는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2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을 작성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새 방통위 출범 열흘. 초기 행보부터 이해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과 진영 간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것처럼 논의는 고사하고 대화조차 어려울 수 있다.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경우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이 위원장 출근 첫날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 등 14개 언론·시민단체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낡은 양당 정치에 의해 수명을 다한 방송장악기구를 해체하는 투쟁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식의 오류와 비합리적 결정으로 인한 무리수는 손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아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극한의 갈등은 적지 않은 사회경제적 기회비용을 야기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할 장기 과제에 천착해 서두르다 시급을 다투는 또 다른 과제를 소홀히 다룰 경우 손실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이 위원장이 여러 차례 공언했던 대형 포털사이트의 플랫폼 독과점 횡포로 황폐해진 저널리즘 생태계 복원과 미디어·콘텐츠 산업 성장 환경 조성이라는 중대한 미래 과제에 쏟아부을 기회도 놓칠 수 있다.

다산이 쓴 ‘경세유표’는 세상을 다스리는 법과 관련해 유언으로 임금에게 올리는 건의서라는 의미다. 오래되고 어수선한 ‘경전 제도’와 ‘세금 제도’ 등 각종 제도의 폐단을 지적하고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기 위한 개혁 방향을 담은 책이다. 새 방통위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임철영 전략기획팀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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