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알아서 '전우조' 찾으라는 나라가 치안강국인가

이관주 2023. 9. 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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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이라는 조직은 일반 사회와 확연히 구분되는 제도와 규정을 갖고 있다.

15년 전 군 생활 당시 피부에 와닿은 차이 중 하나는 혼자서는 부대 내 어디도 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외교부의 해외안전여행 공지를 보면 상당수가 야간 통행 자제, 다중이용시설 이용 유의 등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건건이 설익은 개별 대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이제라도 경찰과 정부가 분명한 치안정책 방향을 정해 '마스터 플랜'을 구축하고, 국민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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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범죄 불안에 떠는 국민
곳곳에 '하나보다 둘' 문구 등
치안정책 마스터플랜 필요한때

군(軍)이라는 조직은 일반 사회와 확연히 구분되는 제도와 규정을 갖고 있다. 15년 전 군 생활 당시 피부에 와닿은 차이 중 하나는 혼자서는 부대 내 어디도 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과가 끝난 뒤 PX(군대 내 매점)를 갈 때조차 당직사관에게 신고하고 최소 2명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군에서는 이를 ‘전우조’라고 불렀다. 다 큰 성인들의 행동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인권침해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자유가 제한된 수많은 청년이 모인 군대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건사고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부대 내에서만 존재하던 ‘전우조’의 개념이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는 모습을 목도한다. 주말마다 올림픽공원에 운동을 나가는 지인은 친구 5명과 메신저 단체방을 개설했다. 시간이 되는 2~3명이라도 함께 나가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혼자보다는 두셋이 같이 다니면 안심이 될 거 같다"는 말도 곁들였다. 집 앞 공원에는 못 보던 현수막이 붙었다. 관할 구청에서 붙인 이 현수막에는 ‘하나보단 둘’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지난달 강간살인이 발생한 관악산은 물론 경기 용인시, 경남 창원시 등 전국 등산로 곳곳에도 ‘안전을 위해 2인 이상 동반 산행 바랍니다’라는 현수막이 설치됐다. 물론 군대의 전우조는 연대책임을 묻고 강제성을 띠기에 다소 차이는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둘 이상 함께 움직인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공원 입구에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고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치안이 좋지 않은 몇몇 외국에서야 이처럼 여럿이 움직이는 게 생활화돼 있다. 한 유튜버는 안전 문제 때문에 멕시코에서 이동할 때 같은 일정의 동료들과 특정 장소에서 만나 함께 움직였다. 외교부의 해외안전여행 공지를 보면 상당수가 야간 통행 자제, 다중이용시설 이용 유의 등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계적 ‘치안강국’을 자임하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런 와중에 정작 치안을 책임져야 할 경찰과 정부는 ‘헛발질’만 하고 있다. 경찰은 장갑차와 경찰특공대까지 동원하며 특별치안활동에 나섰지만 이를 비웃듯 흉기난동·위협, 온라인 살인예고글은 끊이지 않았다. 신림동·분당 흉기난동 이후 경찰은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순찰하다가 관악산 강간살인이 벌어지자 둘레길 산악순찰대를 급조하기도 했다.

의무경찰 재도입 철회는 화룡점정이었다. 국무총리가 발표하고 그 옆에 선 경찰청장이 구체적 선발 계획까지 밝혔는데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치안 컨트롤타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국민들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게 됐다. 6일 출근길 지하철 2호선 열차 내에서 한 승객이 소리를 지르자 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오인한 다른 승객들이 급히 대피하다가 4명이 다쳤다. 여전히 많은 국민이 범죄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신림동 흉기난동이 발생한 지 벌써 50일 가까이 지났다. 건건이 설익은 개별 대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이제라도 경찰과 정부가 분명한 치안정책 방향을 정해 ‘마스터 플랜’을 구축하고, 국민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 이 순간에도 치안 여건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범죄에 취약한 1인가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19 유행 시기 줄었던 강력범죄는 올해 다시 반등했다. 이대로 국민들을 ‘각자도생’의 길에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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