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느는데 실적은 부진…SK·롯데·CJ 재무악화 경고음 커져
주력 사업 실적 부진…단기 차입금 비중 확대
추세 이어지면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 커져
SK·롯데·CJ그룹의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세 그룹은 투자와 운영자금 조달 목적으로 차입금을 계속 늘려온 상황에서 실적 부진으로 전반적인 재무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주요 사업의 실적 정상화와 재무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신용도 악화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6일 대기업 그룹 신용도 관련 온라인 세미나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도 앞서 그룹 분석보고서에서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SK그룹, 이차전지·반도체 투자로 차입금 증가 속도 빨라
SK그룹은 최근 수년간 반도체와 이차전지 투자를 위해 계속 빚을 늘려왔다. 한기평에 따르면 SK㈜, SK하이닉스, SK디스커버리의 연결 재무제표를 합산한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은 올해 3월 말 현재 82조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2021년말 56조원에서 지난해 말 75조원으로 늘었다가 다시 1년 3개월 만에 7조원 추가로 늘어났다. 2년3개월만에 순차입금이 26조원가량 증가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신평은 자체 기준으로 계열사 수치를 합산한 SK그룹의 순차입금 규모가 2017년 말 약 22조원에서 2023년 3월말 약 87조원까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차입금을 늘려 투자를 확대했는데 실적은 되레 악화했다. SK하이닉스의 잇단 대규모 적자와 이차전지 부문의 실적 개선 지연이 맞물렸다. 한기평 보고서 기준 SK그룹의 상각전영업이익(EIBTDA)은 2021년 3조7231억원, 지난해 3조8292억원으로 현금창출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EBITDA는 37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1663억원의 3분의 1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 결과 현금창출력 대비 차입금 부담을 나타내는 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는 지난해 말 연간 1.9배 수준에서 올해 1분기에 5.4배로 증가했다.
차입금 만기 구조가 점차 단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SK그룹 주요 부문 합산 전체 차입금에서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성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6.6%로 2021년말 대비 11.4%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들어 그 비중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올해 1분기 말 전체 차입금 116조원 중 40조~50조원을 1년 이내에 상환하거나 다시 빚을 내 빚을 상환해야 한다.
장수명 한신평 수석애널리스트는 "SK그룹은 반도체,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면서 높은 수준의 재무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주요 사업부의 현금창출력 부진이 이어지면 재무 융통성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수석은 "확장적 투자정책에 대한 재검토 또는 좀 더 적극적인 재무개선 방안 실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롯데그룹, 투자 늘렸는데 캐시카우 ‘화학’ 실적 추락
롯데그룹도 차입금 부담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기평에 따르면 유통·식음료·화학·관광레저 등 롯데그룹 주요 사업 부문의 합산 순차입금은 2020년 26조7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에 34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과거 호텔과 유통 부문 글로벌 투자로 차입금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최근 롯데케미칼도 대규모 투자로 차입을 늘리면서 그룹 전체 차입금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다. 롯데건설에 대한 자금 지원도 재무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통, 호텔 부문의 부진 속에 그룹의 캐시카우인 화학 부문의 영업적자가 이어지면서 올해 1분기 그룹 합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4%, 15% 줄어든 15조5000억원, 3000억원을 기록했다. EBITDA는 2021년 말 6255억원에서 2022년 1622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1분기에도 수익성이 소폭 감소했다.
롯데그룹 캐시카우인 롯데케미칼은 설비 증설, 일진머티리얼즈(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 등에 따른 재무 부담 확대와 실적 악화가 겹치면서 신용등급이 지난 6월 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됐다. 이 과정에서 롯데그룹 통합신용도 역시 하락했다. 다른 계열사 중에서는 롯데하이마트(AA-)와 코라아세븐(A+), 롯데건설(A+)의 신용등급 전망이 현재 ‘부정적’으로 평가돼 있다.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한승 한기평 평가2실장은 "롯데하이마트와 코리아세븐의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적 등 재무상황 추이를 보면서 신용등급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건설 부문도 신규 착공 사업과 분양 성과, 분양대금 회수 성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의 감소 여부 등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장 그룹 통합신용도가 추가로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룹 전반의 투자 부담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재무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CJ그룹, 대규모 M&A 이후 미디어·엔터 실적 악화
한신평에 따르면 CJ그룹의 계열 합산 순차입금은 2015년 말 6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4조9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19년 회계기준 변경으로 리스부채 약 4조7000억원어치가 차입금으로 전환된 것을 제외하면 올해 1분기 말 순차입금은 11조5000억원 규모다. 해외 지분 투자와 물류시설 및 설비투자 등에 따른 자금 소요가 계속 발생하면서 재무부담이 계속 커졌다. 최근에는 미국 피프스시즌 인수,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운영자금 부담이 차입금 확대로 이어졌다.
계열사들이 부채비율 방어를 위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과 상환전환우선주 발행 잔액 2조8360억원어치도 부담이다. 신종자본증권과 우선주는 보통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CJ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증권은 대부분 약정 내용상 상환 의무가 강한 성격을 갖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차입금이나 마찬가지다.
주요 사업부의 수익성 악화가 재무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을 주축으로 한 식품 및 식품푸드서비스 사업 매출은 계속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오히려 줄었다. 5%대 중반 수준이던 영업이익률은 3%대 중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명공학 부문은 중국 경기 부진에 따른 축산 업황 부진, 아미노산 시황 약세, 핵산 수요 부진으로 지난해 4분기부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했다. CJ대한통운을 주축으로 한 물류 및 신유통 사업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물동량 회복 등에 힙입어 양호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CJ ENM 중심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은 피프스시즌과 티빙의 이익 실현 시기가 늦어지면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차입금 증가와 실적 저하로 그룹 지주사인 CJ㈜의 연결 기준 EBITDA 대비 순차입금 배수는 지난해 말 2.8배 수준에서 3.8배로 상승했다. 구정원 한신평 선임애널리스트는 "여러 건의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차입금 규모가 증가한 상황에서 올해도 주요 부문에 대한 투자가 계획돼 있어 투자지출(CAPEX) 규모를 감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자산 매각 등의 재무개선 노력과 이익창출력 확대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훈 한기평 평가2실 연구원은 "식품과 바이오 부문의 판가 인상과 CJ CGV의 회복으로 그룹 매출이 상승 추세를 이어가겠지만,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부문의 실적 회복 지연으로 단기간 내에 그룹 수익성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며 "자산 매각 등을 활용해 재무안정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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