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종일 건반을 두드리는 이 청년의 삶
[김성호 기자]
▲ 피아노 프리즘 포스터 |
ⓒ 필름다빈 |
이 영화에 대해 무어라 적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그건 이 영화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보통의 영화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라고는 하지만 특정한 주제를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진 않는 듯하고, 서사를 쌓아올려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를 가로지르는 한 인간과 그가 살아가는 삶, 그리고 그의 관심이며 시선을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피아노 프리즘 스틸컷 |
ⓒ 필름다빈 |
종일 건반 두드리는 미술가 출신 다큐인의 삶
한때는 미술가였고, 미술가에게도 은퇴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은퇴한 화가인 오재형의 영화다. 미술가를 그만둔 뒤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모양으로, <피아노 프리즘>은 그가 직접 저의 일상을 담아낸 작품이라 하겠다.
감독이 직접 연주하는 곡이 영화 전반을 장식하며, 피아노 학원을 오가는 시간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것들을 직접 작성한 문장과 함께 영상으로 담아냈다.
▲ 피아노 프리즘 스틸컷 |
ⓒ 필름다빈 |
다름이 일으키는 낯섦의 감상
영화 한 편을 찍어도 소외된 이들의 접근성을 키우기 위하여 배리어프리로 제작하고, 제가 참여한 영화제에도 이를 관철하여 장애인들의 문턱을 낮추기도 했으니 보통의 행동력과 공감력을 가진 이가 아닌 것이다. 영화 속에 보이는 오재형의 일상 또한 그와 같아서 나는 그의 삶 가운데 나와 닮아 있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질 못하였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 다름과, 다름이 일으키는 낯섦의 감상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 피아노 건반을 뚱땅거리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장식들을 만들고, 그걸 집 벽에 얼기설기 붙이고는 그 위에 프로젝터로 온갖 영상을 쏘아비추고, 다시 그 곁에 앉아 남이 작곡한, 때로는 자기가 직접 만든 음악을 연주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영상으로 찍어내니, 이 일련의 행위는 보통의 정성으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정성이란 의미 있는 일에서 일어나게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 확인되는 정성을 보고 있자면 오재형은 제가 하는 행위가 참말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 피아노 프리즘 스틸컷 |
ⓒ 필름다빈 |
스치듯 지나치는 시대의 초상
영화의 중간중간 세월호 침몰참사를 비롯한 온갖 사회적 사건들이 흘러내린다. 감독은 노란 리본을 보이며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때로는 그 상징물에 주목하는 모습으로 화면 위에 등장한다. 그리고 거리에서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하는 이들과 서로의 아픔에 함께 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는 지나치며 보지 않을 풍경을, 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외면할 장면을 그는 하나하나 주머니에 담았다가 제 영화 속에 펼쳐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영화와는 전혀 따로 놀아 특별한 감상을 자아내진 못하지만, 그건 또 그대로 오재형이란 인간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영화를 내게 권한 이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감독인 조이예환이다. 그는 이 영화를 소개하며 "예술에서 경계나 절대적 수준이 없다고 말하는 작품은 많았지만 이 작품만큼 그걸 정면으로 드러내는 작품은 없었다"며 "미술, 음악 같은 걸 따로 떼놓고 보면 전문가 만큼은 아니겠지만 한 데 편집해 모아놓으니 자기만 가능한 어떤 경계를 깬 장르를 보여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로부터 관객이 취향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으나, 세상에 따로 만나기 쉽지 않은 작품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하겠다.
프리즘은 흔히 빛을 굴절시키는 유리와 같은 광학도구를 일컫는다. 빛은 프리즘을 거쳐 전과는 다른 무엇으로 비추어진다. 꺾이고 이지러지고 나눠지는 그 빛들이 전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펼쳐내는 것이다. <피아노 프리즘>이라 이름 붙은 이 영화가 누구의 시선을 전과 다르게 이끌 수 있을까, 감독은 그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솔직하게 영화 끝 무렵에 심어두었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영화를 본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어느 시선 하나 쯤은 꼭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작은 기대를 품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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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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