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이승만이 갔던 그 길을 따라가려 하는가
하루가 다르게 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최근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한미일 3각동맹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땐 학술논문으로 정리하고 싶었으나 써 가는 과정에서 마음을 바꿨다. 학문적 정합성보다 훨씬 분노로 터질 것 같은 생생한 감정을 담을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분들이 보다 더 정밀한 분석과 실천적 과제를 담아 릴레이로 써주기를 바란다. <기자말>
[김창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3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 EPA=연합뉴스 |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의 특징
1. 맹목성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전 정권,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구분되는 몇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무척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갖는 맹목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과 다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식은 자기최면을 낳고 이는 더 그런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필자는 취임 후 윤석열 정부가 적대와 대결을 고취하며 강도를 높여온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맹목성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사리를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주견이나 원칙이 없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철학과 전략의 부재 속에서 오로지 적대의식으로 가득 찬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틈나는대로 선제타격, 킬체인 등을 내세우며 북에 대한 적대적 태도 또한 숨기지 않는다. 독자적인 대북 제재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명박 박근혜보다 훨씬 맹목적 반북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윤 대통령은 "통일부가 그동안 대북지원부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하며 향후 자유민주의 가치 아래 통일부를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안보용 통일, 흡수통일, 체제붕괴용 통일부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 거의 막 나가는 수준의 이 발언은 한국자유총연맹 제 69주년 창립행사에서 나왔다. 한국자유총연맹은 행정안전부 산하 안보운동단체로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반공연맹을 모태로 한다.
이날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한 뒤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윤석열 정부의 맹목성은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는데서 잘 나타난다. 통일부를 없애려 했던 이명박 정부도 임기 내내 북과의 대화를 추진했다. "통일대박"을 부르짖으며 북한 붕괴론을 신봉했던 박근혜 정부도 북과 대화를 외면하지 않았고 실제로 고위급 회담도 했다. 대북 적대 정책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도 비록 말의 성찬에 불과하지만 어떤 입장을 밝힐 때마다 북과의 대화 추진 의사를 끼워 넣고 있다.
물론 북이 윤석열에 대해 "인간 자체가 싫다"며 매몰차게 접촉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북정책, 남북관계는 원래 그런 벽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 벽을 넘을 생각 자체가 없다. 도리어 그 벽을 더 높이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약간 야단치면 더 빗나가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 같다. 그래서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2. 극단성
다음으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극단적이라는 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반도는 전쟁 전야의 위기 상황이다. 북미 군사 대결은 날로 첨예화되어 언제 전쟁이 터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상태로 되고 있다. 북 외무성 미국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조선반도(한반도)와 주변지역의 군사정치 정세는 ... 1950년대의 조선전쟁 전야를 방불케 하고 있다"라고 하며 심지어 "엄중성과 위험성은 더이상 용납할수 없는 폭발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반도는 며칠 안에 전쟁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향후 전쟁이 벌어지면 무조건 핵전쟁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확장억제란 무엇인가? 직접 억제가 미 본토에 대한 핵 방어 능력이라면 확장억제는 동맹국에 대한 핵 공격 방어 능력을 말한다. 2022년 11월 4일 펜타곤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 (SCM)에서 결정된 '상시 배치 수준의 전략 자산 전개'는 곧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 배치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미국은 대북 적대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한미일 동맹을 추구하며 인도 태평양 전략의 구축을 실제 진행하고 있다. 한반도의 핵전쟁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북은 한미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응하여 대남 전술핵 공격 가능성을 피력하고 모의 핵 타격 군사훈련을 단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계 제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고 위기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끔찍한 핵 참화를 불러오는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아니 우리 민족전체가 볼 이득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론,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한반도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며, 남북 관계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의 용어로 시작된 것이다)은 북미 간 벌어지는 오랜 적대와 대결종식 및 평화체제구축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다가서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야말로 남북관계개선 및 통일문제는 한미동맹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했다.
특히 균형자론과 운전자론은 시대적 현실성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완화하고 위기를 해소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처지에 그나마 최선을 다한 정책이었음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도 멸공통일을 외쳤지만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는 것은 피하려고 무던 노력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정세관과 이념의 극단성은 올해 8.15광복절 경축사에 잘 드러난다. 그는 대한민국 내 민주주의와 인권, 진보를 가장한 수많은 북한 추종자들, 반국가세력이 허위선동과 조작을 통해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연설을 하였다. 북과 무한 대결을 추구하며 평화와 통일을 주장하는 모든 세력에게 반국가세력의 딱지를 붙인 것이다.
8월 25일 국민통합위원회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진보는 우리의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다"라고 하며 대한민국의 비약을 위해 이들과 타협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공언한 것이다. 북미 간 한 치의 양보 없는 대결이 펼쳐지는 현 정세를 어떻게든 완화시켜 보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전쟁을 부추기는 언행을 계속하는 것은 정말 상식 밖의 일이다. 북과 미국의 군사적 대결 격화야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거기에 끼어들어 대결을 선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남쪽이 훨씬 잘산다. 따라서 남쪽 체제 중심의 통일이 상식이다"라는 발언을 하며 흡수통일을 분명히 하기에 이르렀다. 남북 간 상호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서로의 체제를 강요하는 방식만 남는데 이 또한 전쟁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어떤 경우도 전쟁의 분위기를 억제하고 평화를 얻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이 땅 위정자의 역할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갈 길을 잃고 또 많이 이탈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출발점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판문점 선언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추구해 온 상호 체제와 이념 존중 및 교류를 통한 화해 협력 실현의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대결론으로 가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승만 대통령만이 극단적인 대결을 추구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였다. 윤석열이 가고 있는 길은 이승만이 갔던 그 길이다. 최근 입만 열면 이승만의 공적을 다시 추켜세우는 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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