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 "나에게 예술은 욕망의 언어"...쿤 작가의 욕망 예술

윤경희 2023. 9.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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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⑩
쿤 작가, 캐릭터로 투영한 삶과 욕망

“예술은 나에게 욕망의 언어다. 그것을 통해 비로소 내 욕망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 쿤의 말이다. 그는 현대인의 욕망에 대해 그리는, 아니 만들어 내는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그린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잘라서 모으고, 이를 정교하고 놀라운 감각으로 편집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또 다른 회화 작품에선 3차원적 입체감을 주기 위해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고, 또 케이크 성형 도구로 물감을 짜 얹는다. 사용 매체도 대학에서 전공한 디자인 외에도 회화·패션·미디어아트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말 그대로 멀티 아티스트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3개의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는 쿤 작가. 장진영 기자


그의 작품엔 늘 자신만의 페르소나가 등장한다. 2000년 도깨비 소년 ‘사쿤(SAKUN)’, 2013년 치유하는 고양이 ‘쿤캣(KUNCAT)’, 가장 최근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쿠니쿠니(KuniKuni)’다. 이들은 가상현실의 아바타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약 10년 주기로 하나씩 탄생한 세 캐릭터는 모두 그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지만, 실존 인물과 하나씩 연결돼 있다. 사쿤은 쿤 작가 자신, 쿤캣은 어머니, 쿠니쿠니는 아버지다.

지난 8월 20일 쿤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장진영 기자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10년 주기로 탄생한 캐릭터들은 당시 내가 가장 집중했던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대엔 ‘나’와 싸우고 화해하고 대화하곤 했죠. 사쿤은 내 모습의 투영으로 입이 발달하고 눈은 모양만 있죠. 귀는 아예 없고요. 보지 않고 남 얘기도 듣지 않던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여행지에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만든 쿤캣은 큰 귀가 쫑긋 서 있고, 양 눈동자 색이 다른 큰 눈을 가지고 있다. ‘OO의 엄마’라 불리던 한국 여성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대상인 새로운 종(種)으로 그려내고 싶어서였다.

이번 키아프 서울 2023에 출품하는 쿤 작가의 콜렉터 연작 '콜렉터85(Collector 85)'. [사진 쿤 작가]
곰 캐틱터 쿠니쿠니가 중앙에 등장한 신작 '콜렉터 84(Collector 84)'. [사진 쿤 작가]
쿤 작가의 신작 '콜렉터 70(Collector 70)'. 뒤에 쿠니를 태우고 카레이싱 중인 쿤캣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케이크 성형틀까지 동원해 올록볼록한 질감을 줬다. 만져도 되는 작품이라고. [사진 쿤 작가]

Q : 왜 '캐릭터'인가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접해온 환경과 관련있다 생각해요. 저는 서울 여의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를 자연스럽게 접한 세대죠. 힙합에 기반을 둔 미국 뮤지션들의 음악도 그렇고요. 이것들이 자양분이 되서 지금의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지금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 작품에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같을 거라고 봅니다."

Q : 캐릭터를 창조할 땐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제 자신과 가족을 녹여냈어요. 제 분신이었던 사쿤은 한국 도깨비예요. 남말 안 듣고 반항기였던 20대에 만들었더니, 동공과 귀는 없고 입이 가장 발달했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거죠. 10여 년뒤에 탄생한 고양이 쿤캣은 '너, 나, 우리'의 개념이 제게 들어온 시기여서 눈과 귀가 커요. '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사름을 바라보는 시각이 제 안에 생기면서 생긴 변화죠. 그리고 늘 나를 지겨봐준 어머니가 뮤즈여서도 그렇고요."

그의 작업에 자유롭게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던 3개의 캐릭터는 이제 또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콜라주 기법을 통해 하나의 캔버스에 모였다. 캐릭터를 “현대인들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모티콘이자 감정 그림”이라고 설명하는 쿤은 이들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현대인이 모습을 ‘컬렉터’ 시리즈에 담았다. 캐릭터는 손바닥만 한 크기부터 엄지손톱만큼 작은 크기까지 각기 다른 몸집을 가졌고, 다양한 표정과 컬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을 아름다운 균형감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하며 하나씩 붙여나가는 노동집약적인 작업방식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쿤의 시선과도 닮아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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