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체인저스](18)주목받는 신인 엔싸인, 그 뒤엔 '17년 SM맨' 있었다
오프라인 마케팅 앞세워 일본에서 큰 인기
'17년 SM맨' 대표가 프로젝트 주도
앨범 발매 후 일주일 판매량을 '초동 판매량'이라고 한다. 대형 엔터사 출신 신인 그룹도 초동 판매량 10만장의 벽을 넘기 어렵다. 초동 10만장 벽을 넘은 팀은 단 12팀뿐이다. 지금은 톱급 아티스트로 성장한 아이돌 대부분도 데뷔 당시 초동 판매량은 수천장~수만장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팬층이 형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데뷔앨범으로 초동 판매량 20만장을 넘긴 중소 엔터사 출신 남자 아이돌 그룹이 있다. n.CH엔터테인먼트 소속 '엔싸인(n.SSign)'이다. 지난달 발매한 앨범 '웜홀'은 초동 판매량 20만7227장을 기록했다. 이들은 특히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차세대 K팝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연말에 '아레나급(1만석 이상)' 일본 투어도 진행할 예정이다.
엔싸인을 주력 IP(지식재산권)로 키우고 있는 n.CH엔터는 지난해 매출 230억원, 영업이익 30억원을 냈다. 규모는 크진 않지만, 영업이익률 13%를 기록한 탄탄한 기업이다. 가수와 배우 매니지먼트와 프로그램, 드라마 제작이 주력 사업 분야다. 업력 7년 차에 접어든 이 회사는 엔싸인을 성공 궤도에 올려놓으며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채비를 마쳤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엔싸인은 지난해 방송한 채널A 오디션 프로 '청춘스타' 우승팀이다. n.CH엔터는 방송사와 협업하며 오디션 당시부터 해외, 특히 일본 팬 확보에 힘을 기울였다. 일본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인 아베마(ABEMA)에 오디션 프로를 올려 얼굴을 알렸다. 아베마는 일본의 K팝 팬들이 즐겨보는 플랫폼이다. 국내에서는 흥행하지 못했던 오디션 프로가 아베마에서는 6주 연속 K팝 부문 시청 1위에 올랐다.
인기의 또 다른 비결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오프라인 마케팅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1년간 한 달에 한 번 이상 일본의 각 도시를 돌며 공연, 팬미팅 등을 했다. 엔싸인의 탄탄한 실력을 눈으로 직접 본 후 '입소문'이 나자 팬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정식 데뷔 전이기 때문에 공연장에서만 판매한 한정판 앨범의 노래들을 기반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정식 유통망에서는 살 수 없는 앨범이었다.
데뷔 전에 SNS 홍보에만 수십억 원을 쓰는 요즘 마케팅 방식과는 달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일본 신인 그룹도 쉽지 않은 '제프 투어'를 성황리에 마친 것이다. 제프 투어는 일본 주요 도시에 있는 제프(ZEPP) 공연장을 차례로 돌며 단독 공연을 진행하는 투어다. 공연장은 약 3000석 규모다. 일본 5개 도시에서 총 12번의 제프 투어로 2만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다. 일본에서는 제프 투어만 가능해도 가수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17년 'SM맨'이 대표엔싸인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정창환 n.CH엔터 대표가 있다. SM엔터에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자회사인 SM C&C 대표까지 지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SM이 곧 K팝이었던 시기를 SM에서 보냈다. 특히 SM 아티스트들의 합동 콘서트인 'SM타운 라이브' 기획을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SM타운은 큰 성공을 거뒀다. 2011년 처음 프랑스 파리에서 SM타운을 개최했을 때 현지 언론이 대서특필한 것이 K팝의 기원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정 대표는 2017년 SM을 나와 n.CH를 차렸다. 이후 CJ ENM의 음악 사업을 총괄하는 음악 사업부문장(2018~2020년)을 겸직하기도 했다.
n.CH는 정 대표가 어려운 현실과 싸워 쟁취한 트로피 같은 존재다. 연세대 심리학과 출신인 그는 한때 가정형편 때문에 음악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밴드 활동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지만, 일반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부모님의 빚을 대신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에서 3년가량 일하며 빚을 모두 갚은 뒤 다시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전진했다. 그것이 바로 SM 입사였다. SM에서 음악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 공연, 뮤지컬, 드라마 기획까지 여러 경험을 거쳐 본인 회사까지 직접 차린 것이다.
엔싸인의 일본 시장 공략은 정 대표가 업계에서 쌓아온 해외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엔싸인은 11월 연말 투어를 하면서 일본어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다. n.CH엔터와 7년짜리 전속계약을 체결하며 더 높이 비상할 준비도 마쳤다. 최근 일본 라쿠텐으로부터 6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글로벌 진출을 위한 '실탄'도 확보했다.
정창환 대표는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 배우 매니지먼트까지 모든 사업 분야를 더욱 발전시키고 성공하겠다"며 "엔터를 기반으로 글로벌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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