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 프리즈에 한국 큐레이터 심소미 내세웠다...브레게의 반가운 선택

윤경희 2023. 9. 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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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면을 꽉 채운 검은색 바탕의 패널에 붉은 혜성이 떨어져 내린다. 중앙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작가 안성석의 디지털 아트 작품이 흘러나오며 생동감을 준다, 중앙엔 이와 상반되는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꽃잎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은 작가 정희민의 입체적인 회화 작품 4점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작품 양옆엔 스위스 시계장인이 직접 작고 세밀한 시계 부품을 만들고 조립한다.

지난 9월 6일 시작한 '프리즈 서울 2023'에 마련된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공간. 이번 프리즈 서울을 위해 브레게와 협업 작업을 한 작가 안성석·정희민의 작품과 함께 스위스에서 날라온 시계 작인이 직접 시계 제조 공정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브레게]


글로벌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브레게’가 지난 9월 6일 시작한 ‘프리즈 서울 2023’에 다시 한번 인상적인 프로젝트로 찾아왔다. 브레게는 지난해 열린 첫 프리즈 서울에서 유명 아티스트 파블로 브론스타인(Pablo Bronstein)과 협업해 ‘산업혁명 기간 워치 메이킹 기술에 깃든 인내의 순간’을 설치 작품으로 선보인 바 있다.

올해 브레게의 아트 이벤트는 지난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국인 큐레이터 심소미와 협업해 한국만을 위한 아트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 부스에서 보여줄 작품의 작가 또한 한국 작가가 참가해 우리에겐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됐다. 브레게 역시 이번 프리즈의 아트 이벤트를 통해 예술계와 깊은 유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다. 전시장은 심소미가 큐레이팅한 특별한 작품뿐만 아니라 브레게의 헤리티지 워치와 타입 XX 컬렉션 등 신제품 함께 공개해 관람객들이 눈앞에서 직접 시계를 볼 기회를 마련했다.

심소미 큐레이터는 올해 4번 열리는 아트 페어 '프리즈'에서 브레게의 전체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사진 브레게]


이번 협업의 기획자인 심소미는 서울과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다. 도시 문화와 건축, 디자인, 예술의 접점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21)’, 현대자동차가 수여하는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2021)’, ‘제11회 이동석 전시기획상(2018)’ 등을 수상했다. 지난 8월 24일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심소미와 줌을 통해 이번 브레게와의 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의 시간을 예술로 보여주다


인터뷰에 앞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브레게라는 하이엔드 워치 업계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브랜드가 어떻게 한국인 큐레이터와 협업하게 됐는가였다. 시작은 지난해보다 더 다각적인 시각을 담은 아트 이벤트를 하고 싶다는 브레게의 생각에서부터였다. 지난해 프리즈에서 한 명의 아티스트와 협업했다면, 올해는 기획자를 통해 다양한 방향성과 작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브레게는 프리즈에게 브랜드와 이벤트 취지와 잘 맞는 기획자 섭외를 부탁했고, 프리즈가 추천한 인물이 바로 심소미였다.
“저는 주로 도시, 건축, 아트의 연결에 주목하는데 그 중 시간에 대한 기획도 많았어요. 이점을 브레게가 프리즈와 브레게가 주목해줬다고 생각해요.”
프리즈 서울 일정에 맞춰 심소미 큐레이터도 서울로 돌아왔다. 사진은 브레게 공간에 설치된 작가 정희민의 협업 신작 '부서진 배위의 세이렌 아네모이아'를 보고 있는 심소미 큐레이터의 모습. [사진 브레게]


그가 시간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건축과 예술의 접점에 주목하는 기획자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된 ‘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게 시간의 흔적들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서울 같은 도시는 전쟁 이후 급격히 발전하는 경제적인 시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죠. 브레게만해도 산업혁명 이전에 현대의 시계 구조를 발명해 인류 역사에 이바지했죠. 지금까지 우리는 그 시계를 계속 계승해서 발전시켜오고 있고요.”

브레게와의 협업이 결정되자마자 심소미는 파리 국립 도서관으로 달려가 브레게와 시계에 대한 책을 닥치는 데로 읽었다. 그에게 들어온 브레게라는 두터운 세계를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가가 과제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열람할 수 있는 책과 고문서까지 모두 봤어요. 그런데 그 발명이 끝이 없더라고요. 분야도 천문학부터 시작해 항해, 기계공학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연동돼 있었어요. 그때 ‘이렇게 두터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라면 현재 예술의 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전들을 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브레게에 과감한 기획을 제안했어요.”

심소미는 올해 뉴욕·런던·서울·로스앤젤레스의 4개 도시에서 열리는 프리즈의 브레게 아트 이벤트를 모두 총괄한다. 주목할만한 것은 4개 도시의 이벤트를 모두 각 도시 출신의, 다른 작가들과 협업한다는 점이다. 기획도 도시별로 전부 다르다. 한 가지 프로젝트로 모든 도시를 똑같이 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4개의 도시를 위한 4개의 전시를 기획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비탈 타임(Orbital Time)’을 주제로 했던 프리즈 뉴욕에선 오늘날 사람들이 시간을 지각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시간 너머에 작동하는 순환적이고 다층적인 시간의 궤도를 탐구했다. 작가로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와 회화작가 앤 리슬리가드가 함께 했다.

프리즈 서울 2023에서 공개한 브레게와 심소미 큐레이터의 아트 프로젝트 '스트리밍 타임'. [사진 브레게]

'스트리밍 타임'...흘러간 시간 뒤 남아있는 것을 조명하다


프리즈 서울의 주제는 ‘스트리밍 타임(Streaming Time)’이다. 디지털 미디어 작가 안성석과 회화 작가 정희민이 함께했다.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문제, 즉 모두에게 다르게 느껴지는 주관적 경험이면서 서로 연결된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은 시간에 대해 다룬다. 지금의 디지털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를 전통과 역사, 장인정신을 브랜드 DNA로 가진 브레게에게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두 개, 즉 브레게란 브랜드와 스트리밍이란 컨셉을 만나게 해 스파크를 일으키는 게 목적이었어요. 스트리밍은 디지털 콘텐트를 소비하는 방식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빨리 흘러간다는 특징이 있죠. 뒤로 갈 순 없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뒤로 갈 수 없는 ‘시간’과 같죠.”
작가 안성석이 브레게와 심소미 큐레이터의 아트 프로젝트 '스트리밍 타임'을 알리기 위한 디지털 영상의 한 장면. ″브레게의 정교한 시계 장치를 보고 어떤 울림을 받았다″는 그는 ″이를 투명하게,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넣어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안성석의 디지털 작업은 프리즈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안성석]
브레게 공간에서 만난 심소미 큐레이터(왼쪽)와 작가 안성석. 뒤에 보이는 벽과 옆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작품이 안 작가가 이번 프리즈 서울을 위해 브레게와 협업한 신작이다. [사진 브레게]


프리즈가 열리는 도시별로 컨셉과 협업 아티스트를 다르게 한 것은 브레게에 대해 공부할수록 도시·예술과의 접점이 될만한 요소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만 선택하기엔 아까운 게 많았다”는 그는 아예 4개 도시에서 열리는 1년의 아트 페어 전 여정에 녹여내기로 했다.
“브레게가 가진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중요하고 희소가치가 있어요. 저는 이를 다양한 작가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고, 또 한국 작가를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컸습니다. 예술에는 도시 생활이 인간의 지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가 반영돼 있어요. 또한 예술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거나, 배제되거나, 소실되었을지 모르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번 협업에서는 워치메이킹 분야의 발명과 발전 속 브레게의 중요성을 고려해 이를 예술,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워치메이킹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 간의 대화로 표현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자 했습니다.”

심 큐레이터는 협업 작가들에게 '시간성'과 '시간이 흘러가 버린 뒤 남아 있는 것들'에 관한 작업을 요청했다. 작가 안성석에겐 브레게의 브랜드와 시계에 대해 직접 살펴보고 이를 작품에 녹여줄 것을, 반대로 작가 정희민에겐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업하도록 주제만 던졌다. 시간성이라는 주제 아래 디지털과 아날로그 작업, 협업 브랜드의 DNA를 포함한 작업과 아닌 것을 함께 배치해 스파크를 일으키겠다는 그의 계획이었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프리즈 서울의 브레게 공간은 현대와 과거, 디지털과 아날로그, 브랜드와 예술이 서로를 밀고 끌며 불꽃을 일으킨다.
"프리즈 서울은 일종의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흘러가는 시간에 관한 디지털 작품을 배경으로 중앙엔 시간이 흘러간 뒤를 보여주는 회화 작품이 있고, 양옆엔 오랜 시간의 역사를 가진 브레게의 시계와 시계장인들이 이들을 보호하듯 자리 잡고 있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시간에 대한 하나의 명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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