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미술은 혼자 아닌 함께 만드는 것"…리움 강서경 개인전

김희윤 2023. 9. 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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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버들 북 꾀꼬리' 개인전
정(井)·산 등 초기작부터 신작 130점 전시
개인 간 조화와 연대 강조
"각기 다른 존재들이 더불어 관계 맺는 풍경"

“그림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대의 움직임, 그리고 그 시대의 풍경을 풀어낼 수 있는 어떤 공감각적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어머니께서 (작업에 쓰인) 글씨를 열심히 써주셨는데, 미술은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함께하는 협업자들, 그 모든 분과 함께 만들어 내는 풍경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전시를 준비했다.”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_전시장뷰 사진 홍철기,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2년의 암투병, 지금도 항암 치료 중이라고 근황을 소개한 ‘돗자리 작가’ 강서경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가 방대하고도 무거운 서사를 들고 돌아왔다. 리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풍경은 간명한 시각적 논리로 구현된 조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베니스 비엔날레나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초기 대표작에서 발전된 작업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 신작에 이르기까지 총 130여 점의 작품을 공개한다. 전시 준비를 오랫동안 해왔다는 강 작가는 “이번 ‘버들 북 꾀꼬리’ 작업은 모든 감정과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혼재되는 것을 주제로 했고 전시가 없어도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작품이 너무 많아졌다”며 “2018년 첫 미국 개인전 ‘검은자리 꾀꼬리’가 생명, 개인의 안전한 상태, 자리와 공간과 영역에 대한 명징한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업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 수만 마리 꾀꼬리들이 풀어져 있는 어떤 상태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수만마리의 꾀꼬리들이 함께 모여 서로 다름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 미술이라는 언어 안에서 여러 형식과 재료를 사용하며 고민했던 자신의 여정을 ‘북’이라는 움직임과 신호를 제목 중간에 넣어 전시를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리움미술관 M2 전시장과 로비는 그의 작품을 통해 시간의 흐름 속 변화하는 자연과 그 속에 함께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섬세한 풍경을 펼쳐낸다.

정井 버들 #22-01, 2020-2022, 가변 크기 사진 김상태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조선시대 유량악보(음의 높이와 길이를 나타낼 수 있는 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우물 정(井)'자 모양 사각틀에서 착안한 작가의 초기작 ‘정井’은 음의 길이와 높이를 표기해 넣은 정간을 소리와 움직임, 시간과 서사를 담아내는 개념적 틀로 차용해 재해석한 연작이다. 창틀 형상이나 캔버스 프레임과 유사한 '정井'연작은 회화를 시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조형적 단위체가 되는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격자틀 내외부로 집중시키거나 전시 구획의 보이지 않는 시스템으로도 활용한다.

‘자리’ 연작은 조선시대 1인 궁중무인 '춘앵무(春鶯舞)'에서 춤추는 공간의 경계를 규정하는 화문석에서 출발한다. 한 개인에게 무대가 되기도 하고 경계선이 되기도 하는 화문석을 '자리'라는 공간 개념으로 치환한 작가는 이를 사회 속 개인의 영역을 고찰하고, 회화 매체를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하는 조형적 기제로도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채로운 형식과 크기의 ‘자리 검은 자리’, 자리‘ 등이 관람객과 만난다.

전시 제목이자 신작 영상의 제목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二數大葉)의 ‘버들은’을 참조해 지었다.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의 비유를 가져온 작가는 시각·촉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과 시·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아우르는 자신의 작업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4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프레스 프리뷰에 참석한 강서경 작가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암 투병을 겪으며 작가는 사회 속 개인에게 허락된 자리, 나와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존재, 그들의 움직임이 인지되고 더불어 관계 맺는 ‘진정한 풍경(眞景)’과 작업 여정을 고민해왔다고 말한다. 그 답을 이번 전시를 통해 “나와 함께하는 협업자들, 그 모든 분과 함께 만들어 내는 풍경”이라고 정의하는 작가의 통찰은 각기 다른 작품들이 상호작용하는 연대의 서사를 관객에게 시사한다.

리움미술관은 한국 작가의 활동 지원을 위해 세계 각국의 미술 관계자들이 서울을 찾는 키아프·프리즈 기간에 맞춰 이번 전시를 진행한다. 같은 시기에 김범의 '바위가 되는 법'도 함께 소개한다. 강서경 작가의 전시는 이탈리안 패션브랜드인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가 후원한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관람료 1만2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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