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엄포가 무슨 소용... '참지 않는' 교사의 등장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팩트를 전하는 뉴스는 많아도 행간을 읽는 칼럼은 드뭅니다. '좌우'라는 정형화된 정치 지형을 넘어, 여러 가지 이슈의 비틀어보기를 시전하겠습니다. <기자말>
[이슬기 기자]
▲ 구호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사망 49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이슬기 |
"저희는 그저 잘 참는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희는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꾸기 위해 진취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사람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평일이었던 지난 4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사망 49재 추모 집회에 4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몰렸다.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 검은 모자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인파들이 국화 대신 카네이션을 동료 교사의 제단에 올렸다. 엄마 따라온 고사리손들도 얼굴 모를, 그러나 모두의 선생님이었을지도 모를 이를 추모하며 카네이션을 바쳤다.
49재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공교육 멈춤의 날'을 앞두고, 집단행동을 목적으로 한 연가·병가·재량휴업은 모두 위법이며 최대 파면·해임까지의 징계도 가능하다는 교육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들이 병가·연가·조퇴를 내고 이 자리에 모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교사도 다수였다.
19년 차 중학교 교사인 김아무개(41)씨는 "남 일 같지 않아서 동료 교사와 함께 왔다"고 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소식을 듣고) 예전에 제가 겪었던 부당한 일들이 떠올랐어요. 제가 하고 있는 교육활동에 대해서, 학부모가 교육 방향이 다르다며 학교에 민원을 넣었고요. 관리자가 '아동학대 조심하라'며 자초지종도 안 묻고 사과하라는데… 전 그때 '아동학대'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었어요."
'아동학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김씨는 두 번 정도 멈칫했다.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 카네이션 헌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사망 49재 추모 집회'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카네이션을 헌화하고 있다. |
ⓒ 이슬기 |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악' 소리를 내보기도 했지만, 동료들은 그저 공감이 최선일 정도로 무기력했고, 관리자는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쉬쉬하며 전전긍긍했습니다. 심지어 사법기관의 판결문 앞에서도 교육청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언론에서는 학교 현실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듯이 앞다퉈 취재합니다. 학교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이렇게 병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날 집회에서 연단에 오른 20년 차 초등학교 교사의 발언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저는 이 현실이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집단 중 하나인 교사들을 강요된 무능으로 내몰아 가장 수동적인 직장인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를 '가장 수동적인 직장인'으로 내모는 환경 가운데는 '신성한 교육자'라는 프레임이 한몫한다. 집회 하루 전날인 3일,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육자는 성직자만큼 신성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선생들이 노동자임을 자처하는 단체 때문에 교육 현장이 망가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겨냥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노동자임을 자처하기에 앞서 '신성한 교육자'여야 한다는 소명의식, 사명감을 강조한 말이었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이 가장 거부하는 프레임이 바로 '신성한 교육자'다. '신성한'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여놓고, 어떤 억압이나 부조리에도 참는 것이 당연하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사회가 주지시킨다는 것이다. 애초에 뜻이 모호한 '교권'이라는 말 대신 '교사의 노동권'을 정확히 적시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세종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의 피해 교사인 가넷(활동명·30)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학부모들의 민원 전화를 '24시간 대기조'로 받는 교사들의 현실을 언급하며, 어느 직종이 그렇게까지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느냐며 항변했다. 그는 "죽기를 택하는 것 보다 교직을 떠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라며 지난 7월, 7년 여에 걸쳐 몸 담았던 교직을 떠났다.
교사가 노동자라는 데는, 학부모도 공감한다. 집회에 참여한 두 아이의 학부모이자 교사 남편을 둔 직장인 김아무개(47)씨는 "선생님들이 겪는 이 모든 상황이 교육 노동자들이 겪는 산재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교사들을 지켜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고요. 개인 책임으로 혼자 감내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미래의 노동자인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자란다는 얘기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커다란 '중대재해'라고 김씨는 진단했다.
▲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래서 재량휴업을 하자고 했던 건데, 재량휴업해봐야 방학이 하루 늦춰지는 것일 뿐 수업은 똑같이 하는 거거든요. 그거 마저도 하면 교장에게 징계를 하겠다고 너무 압박을 하니까… 교육부가 형사고발까지 운운하는데 소속 공무원을 언론을 이용해서 협박하는 행위로밖에 안 보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교육부는 정작 교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느냐는 것이 김씨의 의문이다.
"교육부 장관님은 저희가 집회를 7번 할 동안 단 한 번도 오지 않으셨는데요. 교육부와 교육청도 저희와 비슷한 마음인 건 알겠으나, 대책들에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이 됐으면 좋겠어요."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49일 동안 교육부에서 내놓은 대책들에 교사들은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특히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지 행위로 지정한 아동복지법 제16조 5호의 개정이 선행되지 않는 한 지난 1일부터 시행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 상황에서는 고시에 따라 교사가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 대해 퇴실 조치를 해도,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고 여기면 언제든지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정된 고시만 믿고 그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교사들은 현장 교사들이 작성한 300쪽 분량의 연구 보고서를 대안으로 언급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후 초등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서는 80여명의 교사들이 모여 '현장교사들이 생각하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현 정책에 대한 해결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는 선제적으로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서울시교육청의 민원인 대응 매뉴얼을 비판한다. 영문도 모른 채 교육자라는 이유로 움츠려야 했던 과거를 더 이상은 답습하지 않겠다는 지적이다.
8년 차 초등 교사로 재직 중인 이아무개(30)씨의 학교에서는 무려 교원의 70%가 병가·연가를 써서 '공교육 멈춤'에 동참했다. 지난해 이씨는 사망한 서이초 교사와 같은 나이스(NEIS·교육정보시스템) 업무를 담당했고, 그 여파로 그 해 7월 병가를 낸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도 고인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했다.
이씨는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고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기존의 관료주의적인 보여주기식 대책을 내놓은 교육부에 실망이 커요. 교사들 목소리를 확실하게 반영하겠다는 의지만이라도 표명해 줬다면, 오늘날 교사들이 이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매주 교사들과 만나겠다는 교육부 장관, 그래서?
49재 다음날인 5일에서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사들의 집단 연가·병가에 대해 징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매주 1회 장관이 직접 현장 선생님들과 정례적으로 소통하겠다고도 했다.
'보여주기식' 소통을 넘는 방법은 앞서 교사들이 다 언급했다. 교사들의 학습된 무기력, 오래된 불신은 긴 세월 참을 것을 강요했던 교육 당국과 시스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더 이상 참지 않는 교사 앞에 선 교육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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