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꼴뚜기 멸치 주꾸미를 위하여

서지영 2023. 9. 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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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금요미식회를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전우용 선생이 문득 제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물전 망신은 왜 꼴뚜기가 시키는지 아세요?”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랬지요. “꼴뚜기가 작아서 망신스러운가요?” 전우용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선전(生鮮廛)은 살아 있는 것(生)과 싱싱한 것(鮮)을 파는 가게이고, 어물전(魚物廛)은 건조한 수산물을 파는 가게이지요. 제사상에 놓는 것은 어물입니다. 제사상에 놓이는 어물이 팔리는 가게에 감히 제사상에도 못 올라가는 꼴뚜기가 놓여 있으니 망신스러운 것이지요.”

고향 어물전에 반건조 풀치 한 묶음을 주문했더니 꼴뚜기 한 봉지를 덤으로 보냈습니다. 짭짤하게 삶아서 건조한 꼴뚜기인데, 멸치 그물에 잡혀서 멸치와 함께 삶겨지고 말려진 것을 일일이 골라낸 것입니다. 꼴뚜기는 멸치에도 끼이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널부러져 고향 어물전에서 보내준 꼴뚜기를 한 마리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 먹으며 궁시렁거렸습니다.

“이 맛있는 꼴뚜기를 망신스럽다는 말까지 하며 제사상에 올리지 못하게 한 것은 어물전 주인이 꼴뚜기를 독식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어. 속으로 이랬겠지. 니들이 꼴뚜기 맛을 알아?”

멸치에서 ‘망신스런 꼴뚜기’가 솎아내어지지만, 멸치라고 해서 품격이 높은 어물로 대접받는 것은 아닙니다. 멸치가 제사상에 오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멸치의 ‘멸’자가 업신여길 멸(蔑)자라는 말도 전해집니다.

멸치는 떼로 몰려다닙니다. 몸집이 작으니 뭉쳐서 한 덩어리로 삶을 꾸려가는 것인데, 삼치나 고등어에 쫓기는 멸치떼를 보면 단독자 멸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큰 물고기에 쫓기다가 갯바위에까지 튕겨져 나와 파르르 떨며 생을 마감하는 멸치도 있습니다.

멸치는 죽어서도 집단으로 조리기구에 투하됩니다. 국물을 낼 때에도, 볶아질 때에도 단독자 멸치는 없습니다.

멸치가 단독자로서의 존재 가치를 드러낼 때가 있기는 합니다. 커다란 멸치로 담근 젓갈을 드셔보신 적이 있는지요. 멸치 젓갈을 접시에 놓고 젓가락으로 살살 바르면 머리와 등살, 뱃살, 내장, 뼈, 심지어 꼬리지느러미까지 그 맛이 제각각임을 알게 됩니다.

남해에 꼴뚜기가 있다면 서해에는 주꾸미가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러니까, 주꾸미가 제사상에 오르는지요? 주꾸미도 어물전 망신시키는 놈은 아닌지 주꾸미 산지에 사시는 분들은 댓글 좀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꾸미는 문어와 낙지 비슷한데, 그것들에 비해 작고 못생겼습니다. 문어와 낙지에 비해 쉽게 잡히는 편입니다. 주꾸미라는 이름에서조차 서자의 설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주꾸미가 어느 순간에는 문어나 낙지보다 맛있습니다. 봄 주꾸미는 몸통에 감칠맛을 품고 있는데, 푹 삶은 몸통을 꾹꾹 눌러 씹으면 먹물의 비릿한 쓴맛 너머로 감칠맛이 스멀스멀 황홀하게 퍼집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한철이 있습니다. 다만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문제입니다.

꼴뚜기, 멸치, 주꾸미 외에 하찮은 바닷것들이 또 뭐가 있을까요. 도루묵도 하찮고요, 양미리도 그렇네요. 망둥이도, 보리멸도, 놀래미도, 물가자미도, 짱뚱어도 하찮아 보일 수 있겠네요.

저는 바닷가 도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8할은 바닷것에서 왔을 것입니다. 바닷것 어느 하나도 하잖은 것은 없습니다. 한국인의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에서 톱이라고 합니다. 바닷것이 없으면 한국인은 못 삽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함께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적으로 안전한 오염수이면 우리 하잖은 것들이 사는 바다에 방류하여 불안을 야기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땅에서 식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귀하게 사용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고향 어물전에서 보내준 꼴뚜기를 거의 다 먹어갑니다. 오염수가 방류되기 전의 꼴뚜기입니다. 하잖은 꼴뚜기를 다음 해에, 또 다음 해에도, 또또 다음 해에도 먹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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