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녹색성장? 그린워싱일뿐…탄소중립 220년 걸린다"

강찬수 2023. 9.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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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몬타나주 콜스트립에 있는 석탄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흰 연기가 배출되고 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AP=연합뉴스

기후 위기 속에서 경제 성장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녹색 성장'이 주목 받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성과가 미미한 '그린 워싱'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부 선진국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탈동조화(decoupling)가 일어났지만, 지구 기온 상승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탈동조화 이룬 11개 선진국 분석


영국 등 11개 선진국의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탈동조화 성과(2013~2019년)와 향후 전망. [자료: Lancet Planet Health, 2023]
영국 리즈대학의 제핌 보걸 연구원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유대학의 제이슨 히켈 교수는 선진국을 대상으로 2013~2019년 국내총생산(GDP) 성장과 온실가스 감축 성적을 평가한 논문을 최근 '랜싯 지구 보건(Lancet Planet Helth)'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선진국(기후변화협약 부속서 I 국가 36개국) 중에서 2013~2019년 사이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의 탈동조화를 이룬 11개 국가를 찾아냈다.

이들은 호주·오스트리아·벨기에·캐나다·덴마크·프랑스·독일·룩셈부르크·네덜란드·스웨덴·영국 등이다.

한국은 부속서 I 국가가 아니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녹색성장을 강조해왔음에도 본격적인 탈동조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들 11개 선진국은 경제성장을 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감축 속도다.

11개 국가의 평균적인 배출량 감축 속도는 연 1.6% 수준이다.
이 같은 감축 속도라면 11개국이 2022년의 배출량을 95% 줄이는 데 앞으로 73~369년(평균 223년)이 걸릴 것으로 평가됐다.


까마득한 탄소 중립 달성


독일 그레벤브로이히 근처의 석탄 화력 발전소 노이라트에서 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2% 줄였지만, 여전히 중기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감축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AP=연합뉴스
남은 지구 탄소 예산을 고려한 국가별 바람직한 온실가스 배출 경로. [자료: Lancet Planet Health, 2023]
그리고 이런 속도라면 탄소 중립에 도달할 때까지 '할당된 탄소 예산'의 5~162배(평균 27배)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하게 할당된 탄소 예산이란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달성 확률 50%)한다는 전제 하에서 향후 배출해도 되는 지구 전체 탄소의 양을 산정하고, 이를 인구에 비례해 각국에 배분한 것을 말한다.

역으로, 공정하게 할당된 탄소 예산에 맞추려면 11개 국가는 2025년까지 연 30%, 2030년까지 연 38%의 감축이 필요하다.
그나마 가장 앞서가는 영국의 경우도 2025년까지는 지금 감축 속도의 5배, 2030년까지는 7배로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온 상승 목표를 1.7도로 완화하는 경우에도 11개국은 2025년까지 지금보다 8배 이상, 2030년까지 12배 이상 감축 속도롤 높여야 한다.

연구팀은 "11개 선진국의 대부분은 할당된 탄소 예산을 지키면서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면서 "지금처럼 탈동조화를 해도 지구 기온 상승 1.7도 목표(파리 기후 협정의 하한선 수준)를 달성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성장 사실상 불가능


지난 5일 케냐 나이로비의 케냐타 국제 컨벤션 센터(KICC)에서 열린 제1회 아프리카 기후 정상 회담(ACS23)의 '대통령의 날' 세션에 각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국제사회에서는 기후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먼저 온실가스를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PA=연합뉴스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우선 이것도 가장 잘 한다는 11개 나라 사례다. 나머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선진국들은 더 강력한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

'할당된 탄소 예산' 역시 역사적 책임을 고려하면, 선진국 인구 1명에게 할당되는 탄소 예산은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적어야 한다.
또 2023년 당장 지금부터 본격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들어간다는 가정이지만, 실제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농업·임업·토지이용 부문, 국제 항공·해운에서 배출되는 양까지 고려하면 실제 줄여야 하는 양은 더 많다.

결국 선진국은 앞으로 더 이상 성장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셈이다.

연구팀은 "그동안 정치인과 언론은 고소득 국가의 탈동조화를 '녹색 성장'으로 치켜세웠지만, 이는 기후 붕괴와 기후 불의를 심화시키는 방법일 뿐"이라며 "매우 불충분한 배출 감소를 '녹색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본질적으로 그린 워싱"이라고 꼬집었다.

그린워싱(green washing)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를 가리킨다.


'포스트 성장' 전략이 필요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대중교통 이용 등 포스트 성장 전략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사진은 서울역 버스정류소 모습. 뉴스1
연구팀은 "녹색성장과 그린워싱 논쟁은 고소득 국가의 경우에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저소득 국가는 일반적으로 1인당 배출량이 훨씬 낮기 때문에, 멕시코나 우루과이처럼 공정하게 할당된 탄소 예산 내에서도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선진국은 이제 녹색성장 접근 대신에 포스트 성장(Post-growth, 성장 후) 접근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성장을 핵심 목표로 삼는 대신 형평성과 인간 복지, 생태학적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성장 접근을 위해 ▶에너지 집약적이거나 탄소 집약적이며, 덜 필요한 생산 및 소비 형태(예: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항공 여행, 산업용 육류 및 유제품, 패스트 패션, 무기, 크루즈, 맨션, 개인용 제트기)를 축소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부유층의 구매력과 소비를 줄이고(예: 부유세 및 최대 소득 기준을 통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기존 건물을 단열하고 건물 용도를 변경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생태학적 농업 기술을 도입하고, 식물성 식단으로 전환하며 ▶전자제품의 계획된 노후화를 끝내고, 제품 수명을 연장하며, 수리 권리를 보장하고 ▶자가용에서 벗어나 대중교통, 자전거 시스템, 보행 편의성을 개선하며 ▶상품화된 영리 공급에서 탈상품화되고 사회적, 생태학적으로 유익한 비영리 공급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논문에서 제안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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