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문자' 발송 큰손, 알고보니 KT·LG유플러스였다 [팩플]

김경미 2023. 9.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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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용카드 결제 승인, 택배 배송 등을 안내하는 문자 메시지(기업 메시징) 10개 중 9개(89%)는 도박, 금융, 불법 대출 등의 스팸 문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메시징 시장이 올 들어 1조 2000억원 규모로 커지면서 스팸 문자 발송 규모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가 수차례 ‘스팸과의 전쟁’을 선포해도 효과가 없는 셈. 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KT와 LG유플러스가 자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슨 일이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운영하는 불법스팸 신고 애플리케이션 화면. 사진 KISA 홈페이지 캡처
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통신 3사, 방송통신이용자보호협회, 기업메시징부가통신사업자협회(기업메시징협회) 등으로 구성된 ‘불법 스팸 대응 제도개선 연구반’ 활동을 종료하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난 6월 시작한 스팸 대응 연구반 활동이 지난 달로 종료됐다”며 “방통위가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 전송 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연내에 개정안 발의가 목표지만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며 “사업자 의견을 취합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결과를 내겠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늘어나는 불법 스팸을 막기 위해 주무부처인 방통위가 제도 정비에 나선 것. 방통위와 별개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의 민생사기근절 특별위원회도 스팸·스미싱 문자 근절 대책을 준비 중이다. 통신사가 스팸·스미싱 문자 차단에 적극 나서야 서민들의 사기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스팸 문자·메신저를 통한 스미싱 피해 규모는 2019년 200억원, 2020년 587억원, 2021년 1265억원으로 매년 2배 이상 늘고 있다.


스팸으로 배불리는 통신사


박경민 기자
방통위·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스팸 문자 적발 건수는 2021년 1083만 건에서 지난해 1399만 건으로 약 29% 늘었다. 업체별로는 KT가 매년 400만건 이상, 5년 연속 가장 많은 스팸 문자를 발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유플러스도 발송 건수 5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SK텔레콤은 기업 메시징 사업을 하지 않으며 이 사업을 하는 계열사들(SK텔링크와 SK브로드밴드)의 스팸 발송 건수는 최근 2년간 크게 줄어, 정부 통계에서 빠졌다.

일각에서는 대형 통신사가 연간 수천억 규모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스팸 문자 차단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류연호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간사는 “방통위가 불법 스팸 발송 현황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소비자가 받는 스팸 문자는 줄지 않고 있다”며 “통신사들이 메시징 수익을 위해 사실상 스팸 발송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팸 문자 근절에 소극적인 통신사들의 태도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각사의 경영 기조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신사가 스팸·스미싱 문자 피해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관련 부서의 매출과 조직 운영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공짜망’ 앞세워 시장 교란?


박경민 기자
대형 통신사들이 ‘스팸 공장’ 노릇을 하는 한편, 중소기업들이 개척한 기업 메시징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997년 인포뱅크가 시작한 기업 메시징 서비스는 초기엔 중소 부가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하지만 KT와 LG유플러스는 자사 통신망으로 메시징 사업을 하면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점을 활용해 단가를 크게 떨어뜨려 세를 확장했다. 반면, SK텔레콤 계열사들은 SK텔레콤에 별도 망 사용료를 내고 있어, 저가로 사업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런 식의 사업 확장이 불공정하다는 법원 판결에도 통신 대기업들은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중소업체들은 망을 보유한 통신사들의 저가 판매가 불공정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고했고, 공정위는 LG유플러스에 44억9400만원, KT에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통사의 망 이용료보다 낮게 기업 메시징 비용을 책정하는 것은 ‘이윤 압착’ 행위를 통한 저가 영업으로 경쟁사를 배제하는 불공정 행위”라는 결론에서다. 두 통신사는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0년이 지난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러나 KT와 LG유플러스 측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라 향후 5년간 기업 메시징 관련 회계를 분리해 보고할 예정”이라며 “기존 사업부 운영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업메시징협회 관계자는 “불공정 경쟁이라는 판결이 나왔어도 통신사가 이윤 압착 방식으로 시장을 독과점하는 상황엔 변함이 없다”며 “이 시장에 대한 통신 당국의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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