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상공 400m서 핵폭발?…김정은 '최대 살상고도' 찾고있다

이근평 2023. 9.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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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북한 매체는 전날(30일) ‘북한판 에이태큼스’ 탄도미사일 KN-24 발사를 보도하며 “(해당 미사일을) 목표 섬 상공의 설정고도 400m에서 공중폭발시켰다”고 밝혔다. 10㏏(TNT 폭약 1000t 위력)의 전술핵탄두가 실린 채 이 미사일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상공 400m에서 폭발했다고 가정하면 사망자 4만6510명, 부상자 16만4850명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53m에는 불구덩이가 생기고, 1.36㎞ 내 주거용 건물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경미한 부상자들까지 포함하면 최종적으로 피해 지역의 넓이는 한강 이남까지 확대돼 동작구 일대 41.7㎢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 스티븐스 공대에서 개발된 핵폭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누크맵(Nukemap)’이 제시한 결과다.

북한은 지난 2일 새벽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목표 섬 상공의 설정 고도 150m 에서 공중폭발시켜 핵 타격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난 2일 새벽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2기를 발사해 전술핵공격 가상발사훈련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전략순항미사일 1기가 약 2시간 7~8분 동안 8자 형태로 1500㎞를 비행한 후 서해 상에 있는 목표 섬 상공 150m에서 공중폭발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2일 ‘화살-1·2형’으로 추정되는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을 서해로 발사했을 때도 “목표 섬 상공의 설정 고도 150m에서 공중폭발시켰다”는 점을 공개 보도로 강조했다. 이 순항미사일은 북한이 개발 중인 ‘화살-1·2형’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도 10㏏ 위력의 전술핵탄두 탑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핵탄두를 단 화살 미사일이 요격을 피해 저고도로 서울에 침투한 뒤 서울시청 상공에서 150m까지 솟구쳐 폭발에 성공한다면 6만910명이 사망하고 11만3870명이 부상을 입는다고 누크맵은 전망했다.

이처럼 최근 미사일 시험발사 후 북한의 공개 보도를 보면 ‘공중폭발’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150m에서 800m에 이르기까지 미사일에 대한 공중폭발 고도를 다양하게 설정해 핵 타격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은 지난 4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전술핵 위력을 실험하는 것으로서, 향후 대남 도발 시 그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남한의 타격 대상과 목적을 따져가며 최적의 핵 살상 효과를 낼 수 있는 공중폭발의 고도를 찾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北, 올해 들어 미사일 공중폭발 고도 공개

실제 북한은 지난해 간헐적으로 실시한 미사일 공중폭발 실험을 올해 더 자주,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전과 달리 공중폭발의 고도를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19일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탄도미사일 도발 당시 북한은 공중폭발 고도로 800m를 설정하고 “핵폭발 조종장치와 기폭장치 작동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달 22일 전략순항미사일에 대해선 600m를, 닷새 후 27일 KN-24에는 500m를 각각 폭발 고도로 삼고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3월 28일 "중부전선의 중요 화력타격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사일 부대에서 3월27일 관하구분대들을 중요 화력타격 임무수행 절차와 공정에 숙련시키기 위한 시범교육사격 훈련을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은 "지상 대 지상 전술탄도미사일 2발로 핵 공중폭발 타격 방식의 교육시범사격을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노동신문


군 당국은 북한의 이 같은 행보가 전술핵탄두를 앞세운 대남 위협 국면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북한은 미사일의 공중폭발 시험발사를 연이어 진행하면서 약 10㏏ 위력으로 추정되는 전술핵 카트리지 ‘화산-31형’도 공개했다. 총알을 총에 장전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화산-31형을 KN-23·24·25, 화살-1·2형 등 8종의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맞춤형’ 타격 위해 공중폭발 최적 고도 찾는 작업

전술핵 공격은 통상 공중폭발을 통해 살상반경을 넓힌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은 현재 관련 실험으로 남한을 노린 핵의 ‘실전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의 위력은 각각 16㏏과 21㏏ 규모로 약 500m 고도에서 폭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중폭발의 고도는 물론 여러 투발수단을 놓고 다양한 한국 시설물과 지역을 타깃으로 설정해 맞춤형 공격 계획을 짜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타격 목적과 대상마다 공중폭발의 최적 고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들에서 기폭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10㏏ 위력의 전술핵탄두가 대통령실 인근 400m 고도에서 폭발했다고 가정할 경우 사망자 4만6510명, 부상자 16만4850명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핵폭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누크맵(Nukemap)’ 캡쳐


구체적으로 살상 반경을 넓히려면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에서 폭발시켜야 효과가 크다. 반면 지하 벙커 등 견고한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선 살상 반경은 줄어들지만 폭발 고도를 낮추는 게 더 효과적이다.

누크맵은 10㏏ 전술핵을 통해 콘크리트 시설물들을 붕괴하려는 목적이라면 102m를, 부상자를 발생시키려는 의도라면 1010m를 각각 최적의 공중폭발 고도로 관측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달 30일 공중폭발 시험발사에서 ‘중요 지휘 거점과 작전비행장 초토화를 가상한 전술핵 타격훈련을 실시했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 종류별 타격 용도를 달리해 시험발사를 진행하고, 이론적 수치를 토대로 공중폭발의 위력을 시뮬레이션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런 우려가 사실이라면 김정은은 현재 남한에 최대의 인적·물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높이’를 찾고 있는 셈이다.


북·중·러 밀착 행보…北, 전술핵 위협 ‘악역’ 맡을 수도

일각에선 핵의 실전성을 급격히 높여가는 북한의 움직임을 북·중·러 군사적 공조 움직임과 연결 짓기도 한다.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북한에 북ㆍ중ㆍ러 해상연합훈련을 공식 제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경우 북한은 중·러를 뒷배로 한반도에 핵 위협의 수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있다. 재래식 전력이 뒤처지는 북한 입장에선 전술핵을 꺼내 놓고3국 공조의 한 축으로서 역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북·중·러 연합훈련 등 3국의 군사적 연대가 본격화할 때 북한이 핵공격 능력을 앞세워 주한·주일미군 기지를 노리는 ‘악역’을 자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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