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배려는 디테일에 있다… ‘장루 화장실’ 늘리자
장애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장애인이 겪는 불편과 서러움, 사회적 편견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반인이 휠체어를 타고 장애 체험을 하는 일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몸속 장기에 문제가 있거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됐다면 체험조차 하기 어려워 그들이 감내하는 불편과 고통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현 장애인복지법상 이런 ‘내부 장애’는 심장 신장 호흡기 간 장루·요루 뇌전증(간질) 등 6가지가 있다.
얼마 전 이들 가운데 장루 장애인의 신산한 삶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장루는 대장암이나 변실금 등으로 항문 기능이 손상돼 배 밖으로 배변 통로를 만든 일종의 인공 항문이다. 국내 장루·요루 장애인은 지난해 기준 1만6779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264만4700명)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최근 암뿐 아니라 염증성 장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장애로 등록되지 않은 장루 보유자들도 꾸준히 느는 추세다. 암 발생은 나이들수록 증가하고 변실금 유병자의 70% 정도가 65세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장루 장애는 조만간 닥칠 초고령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장루 장애인 혹은 환자로 살아가기는 정말 고되다. 사회적 인식이 낮고 복지 인프라가 거의 안 돼 있다. 무엇보다 외출 시 그들에게 절박한 변을 처리할 화장실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장루는 괄약근이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변과 가스가 배출되므로 배 바깥에 달고 있는 주머니를 수시로 비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반 화장실의 변기 높이가 낮아서 배설물이 튀기도 하고 누출이 있으면 피부 보호판을 바꿔줘야 한다.
대부분의 공공장소 화장실에는 장루 물품을 올려놓을 선반이 없고 세척할 세면대가 멀리 있어 즉각적인 처리에 어려움을 겪기 십상이다. 혹여 밖에서 실수라도 할까봐 대부분의 장루인들은 숨어지낸다고 한다. 요양병원·시설은 냄새난다는 이유로 장루인을 잘 받아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 장루장애인단체장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짐승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해외 국가들은 소외된 장루인이나 변실금 환자들을 배려해서 다중이용시설, 공공장소에 장루 전용 변기나 세척 시설이 갖춰진 다목적 화장실을 설치하는 추세다. 1998년부터 공공 화장실에 장루용 변기를 설치한 일본은 2000년 ‘교통장벽 제거법(Barrier-Free Transportation Law)’을 제정해 2000㎡ 이상 공공건물과 50㎡ 이상 공중 화장실의 신·증축 및 용도 변경 시 장루 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했다. 또 장애·연령·성별·언어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용자가 시설물과 서비스를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설계한다는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2021년 도쿄 패럴림픽을 계기로 리노베이션을 진행 중이다. 주요 공항과 기차역, 공원, 병원 등은 홈페이지에 장루 화장실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 대만도 대부분 대형병원과 타이베이 중앙역, 지역보건센터 등에 장루용 변기가 설치돼 있다.
한국은 2021년 서울대 암병원을 시작으로 몇몇 대학병원이 장루 화장실을 일부 도입했으나 아직 미흡하다. 공공시설의 경우 분당선 수서역과 대구 지하철 청라언덕역에 다목적 화장실이 설치돼 있을 뿐 인천·김포공항, 서울역 등에는 전무하다. 최근 서울시가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사업 1호로 다목적 화장실을 만들어 이용하도록 추진 중이나 장루 화장실이 설치된 곳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누구든지 공공시설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사회적 변화를 꾀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목적 화장실 보급이 확산돼 장루인들이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소수를 위한 배려는 디테일에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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