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오 캡틴! 나의 캡틴!

2023. 9. 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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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개봉했다. 영화는 1959년 미국 동부의 명문 개신교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상류층 출신이 들어갈 수 있고 대다수 학생이 아이비리그 대학교로 진학하다 보니 교실에서는 전통과 규율, 성공이 언제나 강조된다. 그렇게 대단한 학교에 개성적이고 창조성 넘치는 문학 교사 존 키팅이 부임한다. 그는 학생들이 자기 내면의 소리를 발견하도록 독창적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심지어 자신을 선생님이 아니라 선장을 뜻하는 캡틴이라 불러도 좋다며 학생들에게 충격을 안긴다.

얼마 후 키팅과 학교 당국,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 갈등이 터지면서 결국 그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다가온다. 그런데 교실에서 쓸쓸히 퇴장하는 키팅을 보고 한 학생이 책상에 올라가 ‘오 캡틴 나의 캡틴’이라 외친다. 뒤이어 다른 학생들도 한 명씩 책상에 올라가며 영화는 끝난다.

‘오 캡틴 마이 캡틴’은 19세기 미국 시인 월터 휘트먼이 쓴 시의 첫 구절이다. 휘트먼의 시에서 ‘캡틴’ 즉 선장은 남북전쟁 때 북부의 승리를 이끌고 노예를 해방한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가리킨다. 전쟁이 끝나자 암살당한 링컨처럼, 역경 끝에 항구로 들어가는 배 갑판 위 선장은 죽은 채 누워 있다. 시인은 차갑게 식은 선장에게 이렇게 외친다. “오 캡틴! 나의 캡틴! 일어나 종소리를 들으십시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옛 영화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지난 주말 20만명 교사들의 시위를 뉴스로 접했기 때문이다. 근무지에서 목숨을 끊은 서이초등학교의 교사 49재 추모제를 앞두고 전국에서 수많은 교사가 모였다. 지금껏 억눌렸던 교사들의 울분, 이러다 더 많은 교사가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달됐다. 하지만 주말 집회 소식과 함께 또 다른 교사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더해지면서 가슴이 더욱 아팠다.

개인적으로는 몇몇 언론이 교사들의 시위를 보도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수십만이 국회 앞에 모였음에도 시위는 매우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일부 언론은 여의도를 빽빽하게 메운 교사들이 열과 오를 맞춘 모습을 항공 촬영하고는 ‘시위의 교과서’ ‘바둑판 같은 집회’ ‘칼각 집회’ ‘이것이 한국의 선생들이다’ ‘지금껏 이런 시위는 없었다’ 등의 헤드라인을 뽑았다. 교사들이 그곳에 모인 것은 시위를 얼마나 질서 있게 잘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고 교사들이 그런 이유로 모인 것이 다른 나라 시위와 비교하며 뿌듯해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날 여의도 상황이 저 높은 하늘에서 찍히면서 현장의 눈물과 울분도 함께 멀어진 것 같았다.

교사들이 7주 동안 시위를 이어가는 것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동료 교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모두 교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교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 소식을 접하며 종교인들도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고 그들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찌 보면 현대사회에서 ‘권위 상실’이라는 근본적 어려움을 심각하게 겪고 있는 곳이 교육계와 종교계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권위주의는 없애되 권위는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을 필요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말 집회를 뒤로하고 교사들은 오늘도 교육 현장을 지키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다음세대를 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주말이면 더 나은 학교와 사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올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 뜨거운 이슈 속에서도 이들의 시위에 관심과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 누구나 가슴에 품어봤을 법한 “오 캡틴 나의 캡틴”을 어린 학생들이 만나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물론 키팅 같은 선생님은 영화에나 있겠지만 교육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 그리고 그 둘을 좁히려는 부단한 노력 가운데서 이뤄지지 않았던가.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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