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율성 논란과 광주의 아픔
광주광역시의 음악가 정율성(鄭律成·1914~1976) 기념사업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정율성은 항일투사와 중국·북한에 충성한 공산주의자라는 상충된 경력을 지녔다. 4·19와 5·18, 보훈 관련 단체들은 “6·25전쟁 때 우리를 침략한 북한군과 중공군의 선동 작곡가인 공산주의자 정율성을 기념하는 사업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강기정 광주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광주의 이미지를 우려하는 광주 시민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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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전남, 기념사업 강행 문제
중국·북한군 활동 경력 무시해
의병·호국 유적에는 풀만 무성
」
사실 지금의 정율성 기념사업 논란은 1992년의 한·중 수교와 그에 따라 갑작스럽게 진행된 한·중 우호 교류 물결의 부산물이다. 한국과 중국은 1950년 6·25 당시 전쟁을 치른 관계다. 한·중 수교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무찌르자 오랑캐’라며 중국을 적대시했다. 그런 중국과 경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구동존이(求同存異)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구동존이란 공통적인 것을 찾아 우호의 폭을 넓히고 정치·안보 등 민감한 문제는 뒤로 미뤄두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산주의자 정율성 띄우기’가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 정율성의 생가가 있는 광주시와 남구, 정율성이 성장한 전남 화순에서는 정율성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정율성이 중국 공산당원이었으며 인민해방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사실은 외면했다. 북한 김일성 정권에 충성한 사실까지도 모른 체했다. 세 행정기관이 지난 2014년부터 10년 동안 모두 116억원(정율성 기념공원 조성사업비 49억7700만원 포함)을 기념사업비로 책정했다.
사드(THAAD) 등 한·중 갈등으로 중앙정부는 친중국적 외교 기조를 중단했지만, 광주시 등은 정율성 기념사업을 더 확대해왔다. 광주시가 주관한 학술대회와 음악제에는 ‘항일애국지사 정율성’과 ‘중국 3대 혁명 음악가와 중국 100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위대한 광주 출신 정율성’만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 정율성’은 없었다. 광주 지역 일부 언론과 인사들이 공산주의자 경력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광주시는 철저히 무시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기념사업은 “그가 우리 국가와 민족에 어떤 이바지를 했느냐” “그의 정신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남기고 있느냐”가 기준이 될 것이다. 정율성은 19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하는 등 항일투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6세가 되던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중국인민해방군으로 6·25전쟁 때는 국군과 맞섰다. 그의 음악은 중국공산당을 위한 것이었고 중국인의 취향에 맞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북한 김일성과 북한 인민군을 위해 헌신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정율성을 기념할 이유가 없다. 어떤 이는 항일 전력이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매국노 이완용도 젊은 시절에는 조선과 우리 민족을 살리려 애쓴 민족주의자였다. 이완용은 제2대 독립협회장을 역임하며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허물고 독립문을 세우자는 뜻을 모으기도 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붙었다가 결국 일본의 주구(走狗)가 돼 나라를 팔아먹었다. 이완용의 젊은 시절 경력만을 평가해 기념사업을 추진하자고 말할 수 없다. 정율성도 마찬가지다.
광주에는 수많은 항일 의병 유적지가 있다. 구한말 의병들이 싸웠던 어등산과 용진산, 의병들이 수감됐던 동명동 광주교도소 부지와 광주공원 심남일 의병장비, 농성공원 김태원 의병장 동상, 매월동 양진여·양상기 부자 의병장 묘소 등이 그곳이다. 호국 장소도 많다. 산동교는 6·25 때 광주 학도병들이 북한군을 육탄으로 저지하다 산화한 곳이다. 문성중 교정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군의 포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의 흉상이 있는 곳이다.
광주시는 정율성을 기리는 집념과 노력 수준으로 항일의병과 호국 관련 유적지와 유족을 가꾸고 대우하고 있을까. 아니다. 의병들의 묘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잡풀만 무성하다. 항일 유적지에 대한 관리나 소개도 형편없다. 고 서정우 하사 흉상 앞에는 국화 한 송이도 놓여 있지 않다. 입만 열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고 외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래저래 광주는 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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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남도역사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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