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우의 미래의학] 격해지는 의료계 감정노동
최근 학부모의 갑질에 생을 마감한 학교 선생님들의 사연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교권이 추락을 거듭한 끝에 젊은 교사들의 인명까지 앗아갔다는 현실 앞에서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갑질 문화는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의 권리가 강화되면서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의료 분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진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어려움이 아니라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받는 과중한 감정적 스트레스로 인해 좌절하고 의료 현장을 떠나거나 떠나려 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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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권 못지 않게 의료계도 위기
환자 폭행에 적절히 대응 못해
대면 의료만이 최상의 서비스
AI가 응대하는 미래 병원 우려
」
내가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던 30여 년 전에는 의료 정보는 의료인이 독점하고 있어서, 하찮은 감기조차 의과대학 도서관에 가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의료진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았고, 그 앞에서 환자와 보호자는 질문조차 망설이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해외 최신 정보까지 온라인으로 확인하고 온 환자로부터 과연 이게 최선의 치료인지 추궁을 받는 것은 물론, 인터넷 카페에서 각 병원의 의료수준이나 시설, 친절도까지 비교 받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의사만이 아니라 수많은 병원 직원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의 요구를 충족해 주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욕설부터 폭행, 살해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병원 근무자들은 억지 주장에도 참고 응대하려 하자니, 스트레스가 극심해지고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경험 많은 의료진조차 휴직하거나 사직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병원 인트라넷에는 누구든지 소속과 이름을 숨긴 채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다른 이들 역시 익명으로 토론하는 익명 게시판이 있다. 6년 전 처음 게시판을 만들 당시엔 많은 이들이 우려하였고, 실제로 초기에는 병원에 대한 불만이 분출되었다. 그런데 경영진이 매일 의견을 청취하며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대응 조치를 공개하면서 이제는 병원의 건강한 조직문화를 이끌고 있다. 실제로 타 병원에서 옮겨온 사람 중에는 모든 직원이 솔직한 의견을 내놓고, 또 조직을 개선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에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굳이 이 익명게시판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 여러 직원이 악성 민원인에 대해 하소연을 하거나, 직접 위해를 가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는지 경영진이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진료를 막는 것은 현행법상 진료거부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누구라도 붙잡고 해결책을 알려달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경영학에선 병원을 서비스 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테마파크, 항공사와 유사하게 소비자가 원하는 목적에 이를 때까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다양한 직종의 직원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차이도 분명하다. 소비자가 테마파크에 원하는 것은 하루의 즐거움이며, 항공사에 바라는 점 역시 목적지까지 원하는 시각에 편안하게 도착하는 것에 국한되지만, 병원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건강에 문제가 있다. 본인이 병에 걸렸는지, 걸렸다면 병의 증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치료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시원한 대답을 듣고자 하는 불안함과 기대 등 복잡한 생각이 뒤섞여 있기에 감정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의학 수준이 모든 질병을 완벽히 진단하거나 완치할 수도 없고, 오히려 치료를 위해 일시적으로는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타 서비스 업종과 동일한 잣대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대중교통 운전사에 대한 폭행은 테러와도 같다’는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이 문구에 대부분 공감하듯, 환자의 인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 종사자들도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모든 인간이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받아야 하듯이 모든 병원 직원도 인격체로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병원은 강자이고 환자는 약자라는 정서가 여전히 강하다.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직접 대면이다. 그런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지금부터라도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병원 근무자의 감정 노동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조금 과장한다면, 미래에는 환자 응대용 인공지능 로봇과만 얘기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과연 미래 첨단의학의 발전이 비인격화된 차가운 현장이길 바라는가. 인간적인 의료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려면 상호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서 ‘직원이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다’는 것이 우리 병원의 원칙이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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