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 아트와 사랑에 빠진 대한민국… 명품도 여기 빠질 수 없다
서울 곳곳에서 예술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5일 한남동을 시작으로 6일 청담동, 7일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갤러리들의 야간 전시와 파티도 서울을 아트의 도시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세계 2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 서울과 국내를 대표하는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오늘(7일) 개막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동시 개최로 그야말로 아트 업계 최대 전쟁이 시작됐다. 참고로 지난해 페어장을 찾은 사람은 무려 7만여명이다(누적 방문 기록 제외). 공식 집계 자료는 없지만 두 페어에서 발생한 총 매출 추정가는 6500억여원에 이른다.
이제 아트 시장은 미국과 영국∙중국 등 아트 시장을 주도하던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프리즈엔 30개국의 120여 갤러리가 참가한다. 키아프엔 국내외 210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작품을 사지 않더라도 양쪽 전시관에 내걸린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공식 개막에 앞서 VIP와 기자들을 위한 선 오픈 날인 6일 오후 페어 현장인 코엑스를 찾았다. 코엑스 주변의 옥외광고판과 건물 내부의 미디어월에선 전 세계 유수 명품 브랜드의 캠페인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명품 브랜드의 VIP 고객 대다수가 아트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미디어월을 차지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키아프는 코엑스 1층에서 프리즈는 3층에서 열린다. 1년 만의 거대 아트 전쟁터에서 ‘명작’을 찾기 위한 ‘큰 손’들의 발걸음과 열띤 취재 경쟁으로 전시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트페어와 손을 맞잡은 다양한 업계 선두주자들
코엑스 3층의 프리즈 서울엔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페이스∙하우저앤워스∙화이트큐브∙가고시안 등이 대표 갤러리다. 국제갤러리∙갤러리 현대∙PKM 갤러리 등 국내의 굵직한 갤러리도 부스를 세웠다. 고대 유물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 전시 섹션인 프리즈 마스터스, 아시아의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포커스 아시아도 놓쳐서는 안 될 전시 공간이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놓쳐서는 볼거리가 또 있다. 바로 세계적인 브랜드의 부스 관람이 그것. 대부분 프리즈의 글로벌 공식 후원사이거나 프리즈 서울의 파트너로, 자신들이 선보이는 제품을 아트와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거나 페어 성격에 맞춰 부스를 갤러리처럼 꾸며 놓았다.
지난해 이어 올해에도 프리즈 서울에 공식 파트너로 참여한 스위스 파인 워치 브랜드 브레게가 대표적이다. 브레게는 큐레이터 심소미와의 협업을 통해 ‘스트리밍 타임’이라는 주제로 부스를 꾸몄다. 브레게가 시계 브랜드인 만큼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스트리밍에 빗대어 표현하려 한 것. 이에 심소미는 스트리밍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한국의 신진 아티스트인 안성석과 정희민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작가 정희민은 스크린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시간과 감각의 불일치를 묘사하는 4점의 회화를 부스에 내걸었다. 꽃이라는 매개를 작가의 시선에 따라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부스 벽면에는 감각적인 디지털 영상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작가인 안성석의 작품이다. 디지털 작품 속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이 마치 모래시계 같다. 그는 작품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세상과 흐르는 시간의 불확실성을 탐구했다. 2인의 작품 이외에도 브레게는 최근 공개한 파일럿 워치 타입 XX를 비롯해 트래디션, 클래식 등 대표 컬렉션을 진열해 작은 아트 피스로서 시계의 매력을 함께 보여주었다.
브레게 부스 옆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샴페인 하우스인 루이나의 부스가 있다. 샴페인 한 잔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전시관을 오가는 사람의 만남의 장으로 제격이다(단 샴페인은 사서 마셔야 한다). 루이나는 프리즈 참가를 기념해 에바 조스팽(Eva Jospin)이 작업한 설치 작품을 부스에 설치했다. 조스팽은 판지를 활용해 루이나 하우스가 위치한 프랑스 렝스 지역의 숲을 표현했다. 종이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참고로 루이나는 프리즈와 아트 바젤를 포함해 전 세계 30개 이상의 국제 미술 박람회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공개하는 카르트블랑슈(Carte Blanche) 프로젝트를 2008년부터 진행 중이다. 단어를 해석하면 백지 위임장, 즉 루이나는 이런 활동을 통해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재량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준다.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가하는 LG전자는 거장 김환기의 작품을 디지털로 변환한 영상을 올레드 TV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했다. 명암과 검은색 표현이 탁월한 데다 시야각이 좋은 화면 덕에 작가가 표현한 우주 공간 속 별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반짝이는 듯했다. 부스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을 만했다.
재단법인 환기재단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만큼 김환기 작가의 여러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부스 입구에 건 작품은 무려 40년 만에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앤디 워홀∙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차량에 래핑하는 아트 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에도 큰 관심을 내비치는 BMW. 이들이 프리즈 서울에 꾸린 부스도 쉽사리 지나치기 힘들었다. 이들은 일렉트릭 AI 캔버스라는 작품을 공개했다. 순수 전기로 구동되는 BMW i5 차량을 캔버스로 활용, 현대 예술가인 정수정∙에스더 말랑구∙코헤이 나와∙에릭 N.맥∙구지윤∙빈우혁 등의 디지털 영상 작품을 쏘아 올렸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만든 이미지를 i5 차량에 투사하는 데다 거울을 사용해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도구로서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계 유수의 작품을 경험하는 동시에 브랜드가 아트를 대하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프리즈 서울은 9일, 키아프 서울은 10일 폐막한다.
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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