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만 가능…증조모상은 안돼” 청원휴가 거부한 軍
규정상 불가피 vs 사회 변화 반영 못한 경직적 판단
증조모상을 당한 병사가 조모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원 휴가를 거부당한 사연이 알려지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강원도 전방에서 병사로 복무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지난 4일 SNS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증조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는 자신의 사연을 소개했다.
A씨는 “어릴 때부터 자주 뵙고 인사드렸던 증조할머니께서 지난 주말에 돌아가셨다. 부대에서 청원 휴가 처리를 받고 급하게 부산에 내려가려 했다”면서 “하지만 부대 간부님께 청원 처리가 되는지 여쭈어보니 증조할머니라서 안 된다고, 육군 지침에 나와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제가 휴가 관리를 잘못한 탓에 휴가가 없어서 결국 장례식을 가지 못했다”며 “도대체 누굴 위한 군대인가. 나라 지키러 와서 가족 장례식도 못 가는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증조할머니는 가족도 아닌지 육군참모총장님께 물어보고 싶다. 이러한 규정이 맞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군인복무기본법을 보면 군인의 기본권으로 규정된 휴가는 크게 정기휴가, 특별휴가, 청원휴가, 연가, 공가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청원 휴가는 군인이 특별한 사정이 생겼을 때 부대에 신청하면, 소속 지휘관이 시행령 기준에 따라 친인척 사망·간호·출산 등 요건을 따져 결정하도록 돼 있다.
시행령에서 친인척 사망 관련 규정(시행령 제12조 1항 7호)을 보면 실제 “본인 및 배우자의 조부모나 외조부모가 사망한 때에 3일 이내”로 돼 있다. A씨 소속 부대의 설명대로,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증조모상을 당한 A씨는 청원휴가 대상이 아닌 것이다.
육군 관계자도 6일 국민일보 질의에 “(외)조부모가 사망한 때는 3일 이내로 (청원 휴가가) 가능하지만, 법령상 증조부모가 사망한 때는 청원 휴가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증조부모도 친인척 중에 직계존속 선상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조부모와 다르다고 본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군에서 증조모상을 당할 일이 거의 없었던 것과 달리 평균 수명이 길어진 고령화 시대 사회상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육대전 관계자도 A씨 제보글에 댓글을 달아 “당연히 (조부모상의) 상위 개념인 증조부모상도 (청원휴가 요건에)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이는 제보자의 휴가일수와 상관없이 당연히 보장해줘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도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보통 증조부모가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법령에 다 규정하지 않은 것뿐”이라면서 “증조, 고조, 현조 등을 모두 규정에 적어놓을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회통념에 비추어 보면 법 규정상의 조부모는 증조부모를 비롯한 직계존속상의 분들도 포함되는 쪽으로 해석되는 게 맞다”면서 “(정기 휴가를 다 쓴 탓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청원 휴가는 이번 경우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쓰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속 지휘관 재량으로 부여할 수 있는 특별휴가 등의 제도를 활용해서 장례에 참석하게 해줄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군인복무기본법에는 청원 휴가 외에 위로·포상·보상 성격의 특별휴가가 있다. 소속 지휘관 재량으로 병사에게 휴가를 줄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한 누리꾼은 “대대장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규정 준수가 중요한 군 조직 특성을 고려할 때 재량권을 남발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고 원칙대로 하는 게 맞았다는 반론도 있다. 육대전에 게시된 A씨 글에는 “안타깝지만 규정에 없다면 휴가를 주지 않은 게 잘한 것”, “조직 사회에서 (규정에 어긋난) 선례를 만들면 규정이 필요 없어진다”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한 누리꾼은 댓글에서 “규정이 잘못된 부분도 있어 보여서 억울한 점은 알겠지만, 그래도 규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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