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 19년 전에 알아봤죠…세계 미술계 ‘큰손’의 혜안
“19년 전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들의 성실함과 열정에 놀랐습니다. ‘여기가 아시아의 독일이구나’ 생각했죠. 그동안 한국 미술과 작가들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때 한국 작가들과 안면을 터놓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로요.”
6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 키아프(KIAF) 서울 참석차 내한한 미술계의 ‘큰 손’ 피터 펨퍼트 독일 프랑크푸르트 디 갤러리(Die Galerie) 회장(78)은 19년 동안 한국 미술 시장을 지켜본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을 “미래의 나라”라고 부르며 “백남준(비디오 아티스트)과 전광영(한지 예술 거장)을 좋아한다”는 그를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났다.
펨퍼트 회장의 키아프 참석은 이번이 19번째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 미술 시장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며 “다른 유럽의 갤러리스트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전 한발 앞선 결정을 했던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 많은 한국 작가들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백남준을 비롯해 추상 화가 김두례, ‘물방울 화백’으로 유명한 김창열의 작품을 소장하거나 판매해왔고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디 갤러리는 이번 키아프에서 입체파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 표현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마르크 샤갈, 독일의 초현실주의 거장 막스 에른스트, 이탈리아 비디오 예술가 파브리지오 플래시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백남준의 ‘TV 플레이’, 김두례의 추상화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에 포함됐다. “클래식에서 모던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는 화려한 전시를 준비했다”고 펨퍼트 회장은 말했다.
펨퍼트 회장의 두 번째 명함은 ‘니타르디 와이너리’ 대표다. 그는 “와인과 예술은 매우 흥미로운 관계”라며 “좋은 와인을 마실 때의 기쁨은 좋은 예술 작품을 볼 때의 기쁨과 비슷하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에도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가 소유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니타르디 와이너리는 와인 라벨과 포장지에 유명 화백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와인 라벨 제작의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현존 작가들의 작품만 담을 것. 둘째, 기존 작품을 가져다 쓰지 않고 오직 니타르디 와인만을 위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것. 셋째, 그 외에는 작가들에게 100%의 자율을 줄 것.”
매년 새로 선정된 작가들은 와이너리에서 2~3주 동안 머물면서 와인을 맛보고 와이너리를 둘러본다. 그리고 와인병 라벨과 포장지에 담을 작품을 그린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부인인 설치미술가 오노 요코(2005년산), 김창열 화백(2011년산),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칼 오토 괴츠(2012년산) 등 1981년부터 현재까지 40명이 넘는 작가들이 작업에 참여해 100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아티스트 라벨’이 붙은 와인은 까사누오바 디 니타르디(Casanuova di Nittardi)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까사누오바는 ‘새 집’이라는 뜻. 르네상스 예술 거장 미켈란젤로가 16세기 와이너리를 인수한 것을 기리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펨퍼트 회장은 설명했다.
니타르디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사들이 만든 와이너리를 미켈란젤로가 1549년 사들였다. 그 후 미켈란젤로 가문은 와이너리를 250년 동안 운영했다. 미켈란젤로 가문 이후 피렌체 출신의 다른 가문이 운영하던 니타르디를 펨퍼트 회장이 인수한 것은 1981년이다. 그는 “토스카나에 살고 싶어했던 이탈리아 출신 아내를 위해 와이너리를 찾던 끝에 미켈란젤로가 소유했던 와이너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소유주를 설득했다”며 “와이너리를 봤을 때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여기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와이너리를 인수한 뒤 오래된 와인 숙성고를 현대식 셀러로 바꾸는 등 생산 시설을 현대화했지만 손으로 포도를 선별하는 등 일부 공정에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까사누오바 디 니타르디에는 최고급 밭인 비냐 도게샤(Vigna Doghessa)에서 자라는 산지오베제 품종을 쓴다.
“언젠가는 전광영 화백에게 와인 라벨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미 계약을 한 작가들이 라벨을 만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만, 그가 제안에 응한다면 앞 자리를 기꺼이 내줄 겁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왜 한국을 중국 일부라 했나…이제야 드러났다, 시진핑 속내 | 중앙일보
- "명품가방 사서"…아내 바다에 빠트리고 돌 던져 살해한 남편 | 중앙일보
- 모르는 여성 목에 전기충격기 공격...40대 남성 황당 범행 동기 | 중앙일보
- 알바 찾다 성폭행 당한 10대..."성병 옮은 것 알고 극단선택했다" | 중앙일보
- 고교생 딸 친구 26번 성폭행…통학차 기사, 2심서도 "난 무죄" | 중앙일보
- "30만원 티켓 도둑 찾아요"...개 산책 나와 남의 우편물 가로챈 여성 | 중앙일보
- 도경수 코에서 연기가…영상 딱걸린 '실내 흡연', 민원처리 결과 | 중앙일보
- 이재명 찾은 태영호, 끌려 나가며 아수라장…"박영순 출당 시켜라" | 중앙일보
- 이근, 뺑소니로 면허취소 됐는데…차 몰고 경찰서 갔다가 또 입건 | 중앙일보
- 한인 모녀 틱톡 1100만뷰 '냉동김밥' 대란…미국 한인마트 돌풍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