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ETF 나올까… 가상화폐 시장 모처럼 훈풍

이광수 2023. 9. 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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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승인 늦추며 시간끌기 전략
자산운용사 소송서 패소 난처 상황
상장땐 기관투자 등 40조 유입 예상
제도권 편입 상징적 의미도 생겨
국민일보DB

가상화폐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에서 상장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선물 ETF는 승인하면서도 현물 ETF는 허용하지 않았다. 투자자 보호에 취약하고 자금 세탁 등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한 자산운용사가 SEC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승소하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면 제도권 편입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막대한 규모의 기관 자금이 비트코인을 사들이게 돼 시세를 끌어 올릴 가능성도 크다. 다만 SEC가 이달 초 예정됐던 현물 ETF 승인 결정을 다음 달 중순으로 일괄 연기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주춤한 흐름이다. SEC가 시간을 끌며 또 다른 ‘불허 이유’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법원, 운용사 손 들어줬다

6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가 SEC에 신청한 비트코인 ETF 상장 여부를 재심사하라고 판결했다. 네오미 라오 판사는 판결문에서 “SEC가 유사 상품과는 다른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며 “그레이스케일의 신청을 반려한 것은 자의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선물 ETF는 승인했으니 현물 ETF도 승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운용사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SEC는 현물과 선물은 서로 다르다는 견해를 고수해왔다.

그레이스케일은 자신들이 운용해온 비트코인 펀드인 ‘GBTC’를 ETF로 전환하겠다며 2021년 SEC에 상장 신청서를 냈다. SEC는 지난해 6월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반려했는데, 이번 법원 판단으로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비트코인 투자 심리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5일 오후 4시 20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1.16% 하락한 3419만5419원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9.73%나 하락했다. 항소법원의 판결 이후 상승했지만, 곧장 상승분을 반납해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오는 19~20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데다 SEC가 여전히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SEC는 지난 1일 이달 초로 예정됐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결정을 10월 중순으로 일괄 연기했다. 이는 SEC가 새로운 거절 근거를 내세우기 위한 시간 벌기로 해석된다. SEC는 최대 240일까지 심사 기간을 늘릴 수 있다. SEC는 앞서 진행된 리플(XRP)의 증권성 소송에서도 패소했지만, 곧바로 항소를 결정한 바 있다.

다만 대다수 시장 전문가들은 현물 ETF 상장은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블룸버그 ETF 연구원 제임스 세이파트는 연내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을 65%로 상향 조정했다. JP모건은 “SEC가 그레이스케일의 현물 ETF를 거부하려면 기존에 상장된 선물 ETF도 소급해 철회해야 함을 의미한다”며 “소급 적용할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미국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정치적 영향력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블랙록은 지난 6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서류를 보완해 재신청한 상태다. 최윤영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미국 정부 요직에 포진된 블랙록 출신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현 집권당인 민주당 내 래리핑크 블랙록 CEO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정치적 역학 관계는 승인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장되면… “40조원 자금 유입 기대”

SEC의 거절에도 운용사들이 현물 ETF를 출시하려는 이유는 막대한 기관 자금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세이파트 연구원은 현물 ETF 상장으로 인한 자금 유입 효과를 300억 달러(약 40조원)로 예상했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리서치센터는 현물 ETF 상장 후 1년 내 200억 달러(약 26조6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봤다.

높은 수익성도 기대감을 높인다. 운용 자산이 커지면 수익률과 무관하게 운용사 실적은 늘어나게 된다. 그레이스케일이 현물 ETF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비트코인 펀드 GBTC는 수시 환매가 안 되고 운용 보수도 2.00%로 낮지 않지만, 운용자산은 190억 달러(약 25조3000억원)에 달한다. ETF는 초기에 상품을 출시해 선점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소송까지 불사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가상화폐가 제도권으로 인정받게 되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제도권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 투자가는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물 ETF 상장으로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면 기관 투자가도 이를 포트폴리오에 담을 수 있다. 또 ETF 외에도 다양한 금융상품이 나올 수 있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1990년대 ETF 대중화로 제도권의 투자 대상이 확대되면서 금이나 원유와 같은 비금융권 자산이 대체 투자자산으로 부각됐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다면 가상화폐 업계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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