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방귀 뀌고 아부 듣던 곳, '기념관' 세운다?
기초단체 의원은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지만, 기초지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예산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만큼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서울시 강동구를 중심으로 구의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자치구의 정책들이 중앙정부와 광역시 정책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국정철학과 기조가 어떻게 지역에서 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의원이 어떻게 견제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 알리고자 합니다 <기자말>
[이희동 기자]
분명 2023년인데, 1970년대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공산전체주의 타파' '공산당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철 지난 이념논쟁이 윤석열 대통령 발로 언론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울 강동구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강동구에 이승만 기념관?
강동구에서 뜬금없이 '이승만 기념관'이 거론되는 것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원로배우 신영균씨 때문입니다. 신씨는 지난 6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발족식에 참석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자신의 땅 2만4000평 중 4000평을 기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환영하는 광고. |
ⓒ 강동신문 갈무리 |
서울 강동구에 이승만 기념관이 설립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지역 내 보수 성격의 시민단체도 적극 호응하고 있습니다. '강동시민모임'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지역언론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환영하는 광고를 거듭 올려 '자유애국시민'들에게 성금을 호소하고, 신영균씨의 부지 헌납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념관 설립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운동가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것도 맞지만, 그는 해방 이후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산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청산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제주 4.3항쟁이나 보도연맹 등을 통해 국민을 학살했으며, 종국에는 3.15 부정선거 등을 일으켜 4.19혁명으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8월 29일 강동구의회 심우열 의원(민주당·강동마)은 5분 발언을 통해 이같은 이승만 기념관 설립 추진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5분 발언 중인 강동구의회 심우열 의원 |
ⓒ 강동구의회 |
고덕동 땅이 가지는 의미
역사적 인물로서 이승만 대통령이 지니는 공과 때문에 벌어지는 기념관 논쟁. 그러나 정작 제가 이와 관련해 주목하는 건 기념관 자체가 아니라 고덕동 부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태어난 곳도 아니고, 일을 한 곳도 아니고, 주거한 곳도 아니지만, 낚시를 즐겨 한 곳이니까 기념관을 세워도 된다는 그 논리. 과연 고덕동은 그래도 될만한 땅일까요?
제가 강동에 처음 온 2013년, 동료는 제게 강동구를 전체적으로 소개하면서 한강변 고덕동 땅을 가리켜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즐겨 하던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화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아부의 대명사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가 탄생한 곳이라고.
"제가 '광나루'에 갔더니 이것은 개인의 인신에 관계되는 이야기 같으니깐 안 되겠읍니다마는 대통령 각하께서 선유를 하신다고 그러는데(중략)
부락민들이 내가 가니깐 '대통령이 오셔서 여기에서 선유를 하시니 참 우스운 이야기가 있읍니다' '무슨 이야기요?' 경기도지사로 있을 적에 이(익흥) 내무장관이 거기에 와서 대통령께서 낚시질을 하시는데 (중략)
(이승만) 대통령이 어떻게 속이 불편하셨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아마 좀 '방귀'를 아마 좀 꾸셨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랬더니 옆에 앉어서 이익흥 내무장관이, 그 아부 잘하는 그 내무장관이, 그 기술 좋은 내무장관은 '속이 시원하시겠읍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에요. (중략)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보필을 하고 장관 노릇을 한다고 하면 대한민국의 명의가 스겠느냐(서겠느냐)?"
▲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즐겼다는 고덕동 일대 |
ⓒ 이희동 |
그렇습니다. 고덕동 한강변은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즐겨 한 곳이자, 권력의 정점에 선 그가 독재의 전횡을 누리던 곳입니다. 방귀를 뀌어도 '시원하겠다'는 소리를 듣던 곳. 그런데 그런 곳에 이승만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짓는 게 합당할까요?
게다가 그 땅은 현재 그린벨트로 묶여 있습니다. 8년 전 신영균씨는 그 부근 그린벨트 땅을 기부해 '태권V 박물관'(현재 폐관)을 짓고 자신의 그린벨트 내 토지의 잠재가치도 높였지만, 기념관은 다릅니다. 현재 강동구청은 개발제한구역 내 그 어떤 '기념관'도 허용될 수 없으며, 하천구역, 상수원보호구역, 제한보호구역 등에도 저촉돼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심우열 의원은 이와 관련해 한강변 고덕동 부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습니다.
"해당 지역은 박정희 대통령 정부 시절부터 상수도보호구역으로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그린벨트로 지정돼 있는 지역입니다. 최근에는 인근 강일·고덕지역의 대규모 재건축 아파트, 고덕비즈밸리 등이 들어서면서 강동구의 허파로 그 중요성과 역할이 더욱 부각되는 지역이어서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도 심우열 의원에겐 하루에도 몇 통씩 문자가 오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을 세우자는 시민단체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으니 '종북 주사파 아니냐' '모금에 동참해 종북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임을 증명하라' 등등.
대통령이 시작한 이념전쟁이 지역에까지 확산돼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경제는 무너지고 먹고살기는 더욱 빠듯해지는 이 시기에 정부여당은 구시대적 이념공세를 멈추길 바랍니다. 그리고 심우열 의원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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