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38만명 채용 약속했는데…취업문, 1년 뒤 더 좁아졌다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시즌이 막을 열었지만 배터리·인공지능(AI)·조선해양 등 특정 전공 분야를 제외하고는 주요 기업의 사원증을 목에 걸기가 ‘갈수록 좁은 문’이 돼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5월 재계 10대 그룹은 향후 5년간(2022~2027년) 38만 명의 신규 채용을 약속했지만 글로벌 복합 위기, 실적 악화, 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채용 규모를 되레 줄이는 형국이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고용 시장 얼어붙어”
6일 SK이노베이션은 SK에너지·SK지오센트릭·SK엔무브·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아이이테크놀로지·SK어스온 등 자회사와 함께 하반기 신입 공채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달 24일까지 지원서를 받는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달 중으로 채용 계획을 공고할 예정이다. 삼성·현대차·LG·포스코·롯데 등도 속속 채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일부 업종을 빼고는 기업 전반적으로 고용 여력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10곳 중 8곳가량(78.8%)이 하반기 채용 계획을 확정 지었다.〈그래픽 참조〉 이 비율은 2020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다가 올해 1.6%포인트 하락했다. 경기 예측이 갈수록 안갯속이다 보니 채용을 결정하기가 망설여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채용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힌 대기업은 9.6%였다.
무엇보다 채용 규모가 ‘노란불’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향후 5년간 8만 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연평균 1만6000명 수준이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상반기 기준 직원 수가 12만4070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11만7904명에서 6166명 늘었다(순증). 하지만 퇴직자 등을 제외하더라도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가 가장 고용 여력이 탄탄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순증 폭이 낮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SK그룹 역시 지난해 2027년까지 5만 명, 연평균 1만 명을 신규 채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채용 규모는 자릿수에 그칠 전망이다. 한해 평균 1만 명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상반기 직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847명(7만673→7만1520명), 64명(3만5374→3만5438명)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재계 10대 그룹 중 최근 1년간 신규 채용 규모를 공개한 곳은 HD현대그룹(1000명)이 유일하다. HD현대그룹은 지난해 향후 5년간 1만 명 채용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수십만 채용 약속했지만 공개한 곳 거의 없어
인턴사원 채용 시장도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하반기 인턴 채용 계획이 있는 대기업은 4.9%에 그쳤다. 지난해 15.3%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는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든 셈이다.
서미영 인크루트 대표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심각한 경영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입 채용을 축소한 기업이 예년보다 늘었다”고 말했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팀장도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중국 경제가 기대만큼 회복하지 않아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적 악화로 고용 여력이 줄어든 오프라인 유통 업계가 대표적이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일자리 쏠림 현상’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대기업이나 수도권 기업, 조선·반도체처럼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한 업종은 그나마 낫지만, 중견·중소기업이나 비수도권 기업의 고용 여력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AI나 배터리 분야는 ‘고급 두뇌’가 부족한 인력 미스매치를 겪고 있다.
채용 규모 줄자 공채 부활하는 아이러니도
최근 3~4년 새 사라지다시피 했던 정기 공채의 ‘부활’도 눈에 띈다. 그동안 주요 대기업 가운데 삼성·포스코·신세계 정도만 공채를 유지해왔다. 대신 계열사별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였다. 이번에는 정기 공채 비율이 24%로 지난해 12.1%에서 두 배로 뛰었다. 서미영 대표는 “채용 규모 자체가 줄면서 번거롭게 여러 번 공고를 하기보다는 한 번으로 통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채용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나타난 씁쓸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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