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원에서 본 이것, 그 역사가 600년 [일본정원사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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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준 기자]
다시 6시 출근. 오늘은 옆동네 기타노(北野)다. 편도 30분 정도. 기타큐슈에 비한다면 엎어져서 코닿을 거리다. 거리만 가까운 게 아니라 정원도 친근하다. 집 앞면을 길이로 폭이 3미터쯤 될까? 작고 아담한 정원이다. 어느 집이든 형편만한 넓이에 형편만큼 나무를 심는다.
중요한 건 정원의 풍격이 반드시 넓이에 비례하진 않는다는 거다. 넓은 정원이 더 근사해 보이는 건 아니다. 취향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작은 정원에 마음이 끌린다. 규모가 작으면 관리가 편하다.
▲ 넓은 정원이 더 근사해 보이는 건 아니다 |
ⓒ 유신준 |
길을 걷다가도 정원을 눈여겨 보게 된다. 눈에 띄는 정원들은 대개 손질이 잘 된 정원들이다. 정원을 보면 주인의 성품이 느껴지는 것이다. 정원 손질을 안 해서 나무가 웃자라거나 방치된 경우에는 저 집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하게 될 정도다. 주인이 아파서 몸져 누웠다든지.
일하러 다니다보면 한 집도 같은 정원은 없다. 정원들은 사람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공통점도 눈에 띄었는데 츠쿠바이(足+尊)가 있는 것이다. 츠쿠바이는 다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물그릇이다. 돌로 만든 물그릇이 정원마다 하나씩 놓여 있었다. 왜 돌 물그릇이 일본정원에 있을까?
일본정원의 3종 세트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무려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4세기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유행했던 양식이라니까. 내전이 유난히도 많았던(말기에는 온 세상이 쑥대밭됐던 오닌의 난도 있었다) 그 시대의 문화인들에게 다실(茶室)이 유행했었다. 지친 삶을 위로해 줄 공간이 필요했던 거다. 잠시라도 이 지겨운 세상을 잊고 싶다. 삶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된 별천지를 꿈꿨다.
그들이 별천지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 울타리를 치고 별도의 문을 만들었다. 울타리와 문은 세상과 단절을 의미한다. 별천지 안에 들어오면 더 이상 흙도 밟지 않아야 한다. 길에 징검돌을 놓았다. 징검돌을 건너오면서 세상의 것들을 씻어내기 위해 츠쿠바이를 만들었다.
▲ 삶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된 별천지를 꿈꿨다 |
ⓒ 유신준 |
다실에 들어가려면 아직 절차가 더 남아있다. 다실 출입문을 니지리구치라 부르는데 높이 66센티에 폭 63센티로 아주 좁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좁은 문을 통해 머리를 깊게 숙이고 다실로 들어와야 한다. 지위고하 막론. 한번 더 세상을 벗어버릴 기회를 주는 곳이다. 다실을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일본판 야자타임이랄까.
▲ 요즘 정원의 현대적인 츠쿠바이들 |
ⓒ 유신준 |
▲ 요즘 정원의 현대적인 츠쿠바이 |
ⓒ 유신준 |
작은 정원에는 츠쿠바이만 남아 있는 곳이 많다. 그 시절 느낌을 만들어내기에 가장 간단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석등은 비싸기도 해서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데다 크기도 커서 작은 정원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징검돌도 안정적으로 발을 디뎌야 하는 크기다보니 공사비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살아남은 것이 츠쿠바이였을 것이다.
▲ 정원양식은 하나의 시대에 대응하는 하나의 명확한 양식이란건 없다 |
ⓒ 유신준 |
생각해보면 600년 전이나 요즘이나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은 여전히 요지경이고 오리무중이고 갈수록 태산이다. 지금도 숲 속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앉아 있노라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
일본 정원양식의 3대 조류는 연못정원(池庭)과 가레산스이(枯山水), 로지(露地)다. 사실 정원양식은 하나의 시대에 대응하는 하나의 명확한 양식이란 건 없다. 후세 사람들이 알기 쉽게 어느 시대 정원양식이라고 구분하는 것일 뿐.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덧붙여지고 혹은 조금씩 없어지면서 변화를 거듭해 지금의 일본정원에 이르게 된 거다. 츠쿠바이 이야기는 세 번째 로지의 정원양식이다. 나머지 둘만 알면 일본정원 역사 천년을 대충 섭렵하시게 되는 거다.
물 하나 갈아줬을 뿐인데
▲ 가지런히 부드럽게. 털면서 아래로 내려온다. 기준은 늘 하던 것처럼 |
ⓒ 유신준 |
정원 입구 왼쪽에는 흑송이 서 있고 반대편에 묵은 단풍나무가 늠름하다. 그 발 아래 철쭉과 동백 종류가 배열되어 그림을 만들고 있다. 후원에는 키 큰 마키나무가 중심이다. 왼쪽에는 덩치 큰 2단 철쭉이 창문을 가려주고 있고 오른쪽에는 개나리가 무성하게 늘어져 있다.
오늘도 여전히 사부는 키큰 흑송 손질을 맡고 내가 발 아래 가리코미 철쭉 종류들을 맡았다. 후원부터 시작했다. 2단 철쭉이 첫 상대다. 짧은 사다리를 세우고 위부터 올라간다. 가지런히 부드럽게. 털면서 아래로 내려온다.
기준은 늘 하던 것처럼 지난해 흔적을 참고하면 된다. 사부가 돌아보며 한 마디 하실 법 한데 요즘은 그냥 맡겨둔다. 실수로 바리캉 자리가 조금 깊이 패인다 해도 새순이 금방 감춰줄 것이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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