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출판사, 밤엔 대리운전... 이젠 노조 합니다
20년차 노동자로 여러 일을 경험했습니다. 편집자와 대리운전을 거쳐 현재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결국 노동조합이냐고요? 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하고, 노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기자말>
[김삼권 기자]
▲ 2016년부터는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
ⓒ 픽사베이 |
글쓰기에 소질이 있지 않습니다. 재능이 없는데도 15여 년 글을 쓰거나 편집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재주는 없지만 글로 하는 작업에 흥미가 있었지요. 다만, 행운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먹고살기 빠듯해 늘 다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식당 서빙도 하고, 논술학원에서 강사로도 일했습니다.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가 그러하듯 일자리를 찾아 부유했습니다. 카카오T대리라는 플랫폼 기업이 등장한 지난 2016년부턴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돈은 안 되지만 하고 싶은 작업으로서 글을 다루는 일을 낮에 하고, 야간엔 남의 차를 대신 운전하는 노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2019년 초, 대리운전을 하다 몸을 다쳐 거동을 못 하게 됐습니다. 차량 운행 중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콜을 잡으러 도보로 이동하다 다친지라 보험 등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을 하다 다쳤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직이었기에 산업재해 적용도 받지 못했지요. 특수고용노동자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게 닥치니 많이 황망했습니다. 한동안 몸과 마음 모두 곤경을 겪었습니다.
다친 후 예전처럼 오래 걷거나 뛰기 어려워졌습니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대리운전이 업인 노동자에겐 치명적이었지요. 먹고살 궁리를 하다 그해 중순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한 지자체 산하 민간위탁기관에 입사했습니다. 이때부터 직접 대리운전하는 대신 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 등 플랫폼·이동노동자를 지원하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큰 기대와 큰 실망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이 기관을 수탁 운영하는 곳은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기관명에도 '노동'이 들어가고, 수탁 운영 주체도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노동단체이니 최소한 조직이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리라 기대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요. 이 회사 사용자들은 밖에선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철폐'를 읊조리지만, 본인들이 운영하는 기관에선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직군을 갈라 차별 처우를 하더군요. 또 과거 노동조합 활동을 한 사용자는 현재 회사 내부 노동조합을 향해 '공산당' 운운하며 폄훼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당노동행위인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이나 노사합의 불이행도 무시로 일어났습니다. 안팎에서 일관성도 없고 말과 행동이 다른 행태를 보이는 사용자들에게 당혹감이 들었습니다.
민간위탁기관이더라도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니 고용은 안정적이리라 기대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수탁기관은 지자체와 3년마다 재계약을 했는데 그때마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내부 정규직조차 스스로 '중규직'이라고 자조할 정도였으니까요. 더불어 지자체 집권세력에 따라 고용은 고용대로, 사업은 사업대로 휘청거렸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임금근로조건을 개선하려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그러자 원청(지자체)과 하청(수탁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습니다. 하청은 "권한이 없다" 하고, 원청은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원·하청으로 분단된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 모순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에 관심이 갔습니다. 노동자들의 고용과 권리를 지키고, 내가 속한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길 바라며 현재는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15여 년 글을 쓰거나 편집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
ⓒ 픽사베이 |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한때, 제게 글은 세상을 바꾸는 활동에 기여하는 행위였습니다. 변혁의 무기가 말과 글이라 생각했지요.
전복의 가능성이 닫힌 시대에 언어가 그 문을 여는 길이라는 달달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멕시코 한 반자본주의 아나키스트의 책 제목처럼 '우리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여겼지요. 따라서 글쓰기란 정치적이자 사회적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책(글)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세속적 성공의 가능성이 닫힌 것만큼이나, 이 사회를 변혁하는 길은 더 난망해 보이는 현시대엔 부질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쓰기' 자체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습니다. 다만 여전히 사회적 행위라고 여깁니다. 제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다수 노동자가 함께 공유하는 공통 경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겪는 감정노동,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고충,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원·하청 구조 속 민간위탁기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진보라 칭하는 이들의 '내로남불'은 비단 개인적인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 대다수는 노동력을 팔아 생존하는 노동자입니다. 좋든 싫든 인생의 많은 시간을 노동하며 보내고, 다른 노동자가 만들어 낸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며 삽니다.
노동 혐오가 판치는 세상이긴 하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이 여전히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노동현장에서 대리기사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민간위탁기관 노동자로, 그리고 초보 노조 간부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며 느끼는 노동을 둘러싼 고민을 글로 나누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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