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 앨범 내듯 미디어 작품 내고 싶어...작가 김웅현의 대단한 상상

유지연 2023. 9. 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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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⑨
작가 김웅현, 날카로운 허구적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다

1998년 북한으로 간 소 떼는 어떻게 됐을까. 금 모으기 운동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미래에 인간의 신체가 퇴화한다면. 시뮬레이션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에 사람들이 더는 상상하지 않는다면.

작가 김웅현의 작품 주제는 뜬금없고 엉뚱하다. 다만 가만히 살펴보면 옴니버스 영화처럼 작품마다 어떤 부분은 때로는 촘촘하게,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멜로부터 액션·공포·SF까지 장르도 다양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큰 주제’가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작품들 사이 공통분모는 미디어와 게임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 그리고 동시대인들의 ‘보급형 정체성’에 대해 연구한다는 점이다.주로 영상·퍼포먼스·설치 작업을 한는 김 작가를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김웅현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우리 시대의 ‘보편성’은 무엇인가


1984년생인 김 작가는 미술을 시작하면서 나는 누구일까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는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1980년대 생 또래 집단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졌다. 자연스레 한 세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렸다.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이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처럼.

작가는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사회적 이슈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게임이나 온라인 등 가상현실 요소를 조합한 뒤, 허구의 설정을 가미한다. 같은 세대가 공유하는 이미지 정보를 중심으로, 대중매체와 게임·밈·역사·패션 등을 섞는다. 이후 메모 같은 짧은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구체적 이미지로 구현한다.

김웅현, '헬보바인과 포니' 퍼포먼스 중 일부, 2016

예를 들어 대표 작품 ‘헬보바인과 포니(2016)’는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1001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과, 미국 게임제작사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 속 소 캐릭터를 결합한 작품이다. 현실에서 소는 온순하게 남북 평화를 상징하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소는 커다란 창을 들고 주인공을 공격한다. 작가는 북한에 갔던 소 가운데 한 마리가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작가에 의해 도축된다는 상상을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특히 실리콘으로 소 모형을 만들어 실제 도축하는 것처럼 살점을 떼어 내 관객들에게 판매했던 퍼포먼스는 김 작가를 대중에게 알렸던 ‘신박한’ 시도였다. 현장에서 소를 썰어 조각당 1만원에 팔았고, 240점이 완판됐다.

Q : 미디어·게임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많다.
A : 회화를 전공했지만 어떤 작품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들여다 봐야 하는데, 일단 관찰한 게 나의 하루 24시간이었다. 일기보다 더 자세히 적어봤는데, 하루 중 18시간을 인터넷에 접속해 있더라. 놀러 가도 핸드폰 지도를 보고 찾고, 영화 예매도 핸드폰으로 하니까. 결국 내가 활동하는 환경이 ‘웹(web)’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림을 그려도 웹에 그리는 게 맞겠다 싶었다. 이후부터 현실과 웹을 비교해가면서 탐구하는 방법론이 생겼다.

Q : ‘금 모으기’ ‘소떼 방북’ 등 역사적 사실을 끌고 왔는데.
A : 또래 집단의 정체성이 궁금했다. 우리 세대가 윗세대와 단절이 일어난 첫 세대가 아닌가 생각했고, 1990년대 역사적 사실 중 ‘금 모으기 운동’이 이런 단절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이 금 모으기 운동할 때, 우리는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해 있었으니까. (웃음)

김웅현 작가의 '쇼미더머니' 영상 설치 작품, 2016.

Q : 현실과 가상 세계의 단절 같은 건가.
A : 1990년대에 현실과 다른 온라인 세상이 펼쳐지면서, 우리 또래만 아는, 혹은 또래 중에서도 어떤 온라인 문화에 접한 세대만 아는 이야기들과 모두가 아는 이야기들을 병치해두었을 때 단절이 명확히 보였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다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다.


관객은 나의 힘


김 작가의 ‘쇼미더머니(2016)’는 금 모으기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갑자기 2016년 대한민국에 두 번째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기득권층은 모두 해외로 도피했으며, 가난한 청년층만이 남겨졌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스타크래프트 제작사 블리자드가 개입, 나라 빚을 갚아주는 대신 ‘SHOW ME THE MONEY’라는 문구를 치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건다. 관람객들은 게임 부스에서 실제로 게임에 도전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있는 구조 앞에서 탄식한다.
'쇼미더머니(2016)' 퍼포먼스 전경.

Q : 관객 참여형 작업이 많다.
A :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이다. 관객이 없다면 산속에서 혼자 붓글씨 쓰는 것과 뭐가 다를까. (웃음) 회화가 감상의 대상이라면, 미디어 작업은 경험의 대상이다. 관객들이 와서 내 이야기를 즐기고 경험하고, 내가 심어 놓은 각종 덫에 걸렸으면 좋겠다.

Q : 어떤 반응이 가장 기분 좋나.
A : 어떤 반응이든 좋다. 사실 작업하는 게 많이 고통스럽다. (웃음) 그런데도 계속 하는 이유는 작품을 매개로 관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내 생각을 유추하거나 공감하거나 하는 다양한 반응들이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김웅현, Hindenburg lounge, HD video, 3D animation, footage, color, sound, 15min, 2022

‘소유할 수 없는 예술’을 고민하다


김웅현, 밤의 조우 Night Meeting, HD video, sound, color, 30min, 2019
김 작가는 미디어 작가로서 영상이나 설치, 퍼포먼스 같은 형태 없는 예술의 유통에 관심이 많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보다 새롭게 경험하게 할 순 없을지, 혹은 소유하게 만들 수 없을 지를 고민한다. 지난 2016년부터 5년 간 비물질 예술 행사 ‘퍼폼’을 운영하기도 했다. 주로 김 작가와 같은 미디어 작가들이 참여하는 단체 기획전이다. 이번 키아프2023에 출품하는 작품도 ‘영상 작업물의 소유’에 관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Q : 키아프 서울에 출품하는 작품은 ‘정물화’다.
A : 16세기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영감을 받은 움직이는 정물화다. 바니타스는 해골이나 유리잔, 깃털 등 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그림인데, 그 헛헛함이 지금 시대에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온갖 미디어에 둘러싸인 현대의 바니타스를 상상해 신체를 확장하거나 퇴화시키는 기구들을 모아 3D 영상 작업을 했다.

Q : ‘소유’를 염두에 뒀다고.
A : TV 자체를 액자 형태로 만들어서, 이를 판매하는 형태다. 미디어 영상 작품도 듣고 싶을 때 꺼내 듣는 음악 앨범처럼 꺼내 볼 수 있는 형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앞으로 비디오 작가들도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델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수처럼 김웅현 1집, 2집을 내 보면 어떨까.

김웅현 작가가 2023 키아프 하이라이트에 출품하는 작품을 들고 있다. 상암 스튜디오. 김현동 기자

Q : 왜 소장이 중요한가, 감상만으로는 안 되나.
A : 내 작업을 꾸준히 따라오는 관객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이나 돈을 소비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그 작품이나 작가에 깊숙이 몰입하기 어렵지 않나. 설치 작품을 만들 때도 가능하면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드는 이유다. 영상 작업도 회화처럼, 앨범의 형태로 소장 가치가 있게 만들면 ‘덕질’ 하듯이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예전 작품을 찾아보고 하는 적극적 관객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 김웅현 작가는...

「 1984년생.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회화 전공, 동 대학원 졸업. 2011년부터 지난해 갤러리2에서 연 ‘구겨진 인간(Crumpled Man)’까지 다수의 개인전을 열고 기획전에 참여했다. 제2회 일현트래블그랜트(일현미술관·2012)를 수상하고, 중앙미술대전(중앙일보·2012) 작가로 선정됐다.

「 다시 한번 한국이 예술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오는 9월 6~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이라는 걸출한 두 아트페어 덕분입니다. 두 페어의 개최 기간에 맞춰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이벤트도 참 많습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이때, 한국의 작가들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중앙일보가 출품 준비에 한창인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키아프가 올해 처음으로 선정 발표한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 중 시간적·지리적으로 인터뷰가 가능했던 한국 국적의 작가들입니다. 직접 작가들을 만나보니 왜 이들이 스스로를 "노동집약형"이라고 말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창의성을 오랜 시간을 들여 묵묵히 작업해 나가는 작가 10인을 매일 1명씩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인터뷰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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