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치자 '영끌족' 돌아왔다…주말마다 임장 다니는 20·30, 왜

정진호 2023. 9. 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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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최모(35)씨는 지난달 경기도 안양시 소재 아파트를 5억5000만원에 샀다. 3억원은 대출을 받았다. 올해 말 결혼과 함께 입주할 신혼집으로 인해 매달 200만원을 원리금 상환과 이자로 지출해야 한다. 최씨는 “앞으로 금리가 어떻게 될지, 집값이 오를지 이런 건 알 수 없지만 한 번 상승장을 경험해보니 전‧월세로 계속 살기가 두려웠다”며 “문제는 이자인데 나와 여자친구 둘 중 하나라도 소득이 끊어지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5일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뉴스1

최씨와 같은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한 사람)’이 부동산 시장에 돌아오고 있다. 빚을진 20·30대의 주택 거래량이 늘어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청춘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영옥 기자

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월 1161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 6월엔 4136건으로 올랐다. 7월 들어서는 3804건으로 줄긴 했지만, 장기간 이어진 폭우와 폭염 등 계절적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0대 이하 매매 비중 3분의1 넘어


아파트 거래량 증가 흐름은 20·30대 젊은 세대가 주도했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20만3437건) 중 31.3%(6만3683건)를 30대 이하가 사들였다. 201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다. 지난해 하반기는 27.9%로 역대 최저였는데 반기 만에 비중이 확 늘었다. 올해 1~7월 전체 서울 아파트 매매 중 30대 이하가 차지한 비중은 36.3%에 이른다.
김영옥 기자
주택 가격이 다시 꿈틀대면서 집값이 오를 때 집을 사지 못하고 때를 놓치면 본인만 소외될 수 있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결혼을 앞둔 장모(31)씨는 전세나 월세 대신 매매로 신혼집을 구할 계획이다. 장씨는 “사회초년생 시절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걸 바라만 보면서 ‘나는 평생 집을 못 살 수도 있겠다’는 무력감을 느꼈다”며 “특례보금자리 대출이 없어지기 전에 서울 외곽에 조그마한 집이라도 사기 위해 주말마다 임장을 다니고 있다. 극도로 절약하면 이자는 어떻게든 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영끌’에 1000조원 넘은 주담대


주택 공급이 줄어든 것도 영끌족의 귀환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급 부족이 집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집값이 오르기 전에 주택을 매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입주물량은 7488가구로, 올해(3만3038가구)보다 77.3% 줄어든다. 상반기 전국 주택 착공은 9만249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50.9%)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추석 전에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무리한 대출이 향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소득이 비교적 적은 젊은 세대의 경우 집값의 상당 부분을 빚으로 충당하고, 20~30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상환하다 보니 노년까지 빚에 짓눌릴 수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최근 부동산 거래가 늘며 전체 가계 대출은 증가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748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0조1000억원 늘어 4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김영옥 기자

특히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 분기보다 14조1000억원 늘어난 1031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젊은 세대가 다시 낮은 금리로 갈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샀다면 조심해야 한다”고 젊은 영끌족에 대해 경고장을 날렸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정부 때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걸 지켜본 경험과 공포가 최근 젊은 세대 ‘부동산 러시’의 원인”이라며 “젊은 세대는 모은 돈이 많지 않아 대출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집값은 과거 대비 비싼 수준이고 시장 금리도 높아진 만큼 영끌에 나선 2030 세대가 져야 할 빚 부담이 과거 세대보다 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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