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만에 첫 女대통령?…"美보다 낫다" 말 나온 '마초국가'
내년 멕시코 대선의 대진표 윤곽이 드러났다. 야당인 우파 연합은 이미 여성 후보를 추대했고, 좌파 성향의 여당 역시 여성 후보 선출이 유력한 상태다. 이로써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마초 국가’ 멕시코는 차기 대선에서 1824년 연방정부 수립 후 200년 만에 첫 여성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여당 유력 대선후보, 전 멕시코시티 여성 시장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은 이날 발표된 멕시코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여당 국가재건운동의 차기 대선 후보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전 멕시코시티 시장이 지지율 36%로, 경쟁자인 마르셀로 에브라르드(63) 전 외무장관(25%)을 10%포인트 넘게 따돌렸다고 보도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현지 매체인 엘 피난시에로가 실시한 것으로, 국가재건운동의 대선 경선과 동일한 조건 하에 진행됐다.
앞서 여론조사업체 파라메트리아가 실시한 다른 조사에서도 셰인바움 전 시장이 32%의 지지를 얻어 에브라르드(21%) 전 외무장관을 여유있게 앞섰다.
멕시코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소속 정당인 국가재건운동에 대한 높은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하원을 장악하고 있고 멕시코 32개 주 가운데 22개 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NBC 뉴스는 국가재건운동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번 당내 경선이 사실상 대선이라고 설명했다. 멕시코 대통령의 임기는 6년 단임으로, 중임은 불가하다.
야3당 연합, 원주민 출신 여성 통합후보로 선출
앞서 지난달 31일엔 멕시코의 우파 야당 연합체인 광역전선이 대선 통합 후보로 소치틀 갈베스(60·국민행동당 소속) 여성 상원의원을 선출했다. 광역전선은 지난 2000년까지 40여년 간 멕시코 정계를 장악해온 제도혁명당을 포함해 국민행동당과 민주혁명당 등 3당 연합체다.
실제로 여·야 최대 정당이 모두 내년 대선 대진표를 여성 후보로 채우면 이는 ‘마초 문화’(마치스모, El Machismo)의 나라로 불린 멕시코에선 전례없는 일이 된다. 멕시코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유독 남성 우월주의가 강하다. 2019년에서야 개헌을 통해 헌법에 성 평등적 요소를 추가할 만큼 여성의 사회적 권리 보장이 더뎠다.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후 200년간 멕시코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 적은 없었다.
두 후보는 여성이라는 점 외에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 이공계 배경인 것도 공통점이다. 셰인바움 전 시장은 에너지공학의 박사 학위자다. 그간 에너지와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 등을 주제로 2권의 책을 집필하고 100편 이상의 논문을 썼다. 중산층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는 화학공학자, 어머니는 생물학자, 남동생은 물리학자로 집안 전체가 과학자다. 그의 조부모는 불가리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멕시코로 탈출했다.
기후·환경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학자로서, 셰인바움은 “대통령이 되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셰인바움이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후광으로 당선되는 게 목표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견해 차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과 가까운 곳에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기지 이전) 현상을 멕시코의 경제발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셰인바움의 지지자들은 그가 오브라도르 대통령에 비해 데이터를 기준으로 정책을 결정하며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덜 공격적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야당 대표인 갈베스 상원의원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정계 입문 전에 스마트 인프라 시스템과 관련한 기술 회사를 두 곳 설립한 바 있다. 회사 수익으로 아동 영양실조 퇴치와 원주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재단을 만들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가난한 멕시코 원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멕시코 전통 음식인 타말을 만들어 팔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에 따르면 갈베스의 아버지는 원주민 학교의 교사였으며, 가정 폭력을 일삼는 가학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지금도 원주민 언어를 종종 사용하며, 농촌 여성들이 일을 할 때 입는 전통 의상인 우이필을 즐겨 입고 멕시코시티에서 전기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등 털털하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호감도를 높여가고 있다. 유머 감각이 탁월하고 대중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대학의 조이 랭스턴 교수는 “대중들이 갈베스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고 있다”며 “중산층 출신의 셰인바움과 달리 갈베스는 대중이 원하는 헤드라인을 캐치하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 해결’이 대선 주도…현재는 여당이 앞서
외신은 대선 캠페인이 본격화되면 ‘범죄 해결’이 주된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멕시코인의 3분의 2는 ‘치안 불안’이 멕시코의 최대 문제라고 답했다. FT는 “최근 몇 주 동안 서로 다른 갱단이 공무원들을 납치하고, 노동자들이 있는 시장을 불태우고, 지뢰로 경찰차를 폭파했다”고 전했다.
인도 영문매체 더위크는 “멕시코의 두 여성 후보는 모두 성숙하고 유능하며 감각적이고 적절한 판단력과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을 갖췄다”면서 “불쾌한 트럼프, 나이든 조 바이든 사이에서 추악한 선택을 해야 하는 미국과 지금 멕시코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셰인바움과 갈베스의 가상 양자 대결에선 현재 셰인바움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지 여론조사를 인용해, 만약 지금 대선이 치러지면 셰인바움이 갈베스를 44대 27로 이길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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