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기술 대신 세월 충전한 아름다움 있었다…정경화ㆍ명훈 듀오

김호정 2023. 9.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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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트리오 공연
정경화ㆍ명훈 남매 30년만의 정식 2중주
첼리스트 지안왕과 함께 차이콥스키도 연주
5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정명훈 , 첼리스트 지안왕(왼쪽부터). [사진 크레디아]

5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보통의 기준에서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연주가 흘러갔다. 우선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3악장. 피아니스트가 첫 소절을 시작했는데 바이올리니스트가 도입부를 놓쳤다. 피아니스트는 미소를 짓고 연주를 다시 시작해 바이올린을 불러들였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a단조의 2악장 9번째 변주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의 연주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피아니스트에게 다시 시작하자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음악은 그대로 흘러갔다.

무대 위에는 한국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썼던 이들이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5), 그의 동생인 지휘자ㆍ피아니스트 정명훈(70)이었다. 정트리오의 맏이인 첼리스트 정명화(79)는 은퇴해 이번 무대에 서지 않았다. 대신 중국 태생의 첼리스트 지안 왕이 함께 했다.

기술적으로 몇몇 실수가 있었지만 음악적으로 완벽한 공연에 가까웠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편안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 연주자는 빠른 음표, 힘 있는 전개 등에서도 과시하는 대신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끌고 나갔다. 같은 멜로디를 주고 받는 부분에서 자신의 소리를 드러내기보다 서로의 소리를 배려하듯 모방해 연주했다. 선율과 화음에는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정경화와 정명훈 남매의 듀오 연주는 1993년 이후 30년 만이다. 2011년 전석 초대 공연으로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트리오 무대에 정명화까지 함께 섰다. 오랜만의 이중주이지만 호흡을 맞춰온 역사가 길다. 정경화가 19세에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카네기홀 무대에 섰을 때 15세이던 정명훈이 피아노를 맡았다. 56년 전이다. 5일 공연에서 오래된 호흡과 몰입이 보였다.

청중을 즉시 사로잡는 기술과 효과보다는 길고 오래된 서사가 있었던 무대였다. 이지영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젊고 쟁쟁한 연주자들의 음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연륜과 내려놓음이 있어 좋았다”며 “세월이 지나면 그에 맞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무대”라고 평했다.

정 트리오는 최근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한국 클래식 음악인들의 뿌리와도 같다. 세 남매가 미국으로 건너간 때가 1961년. 정경화의 한 회고처럼 대다수가 한국을 전쟁 국가로만 알던 때였다. 이들은 ‘신기한 동양 음악가’로 콩쿠르에 나가 이겼고, 각종 중요한 무대에 섰다. 세 명이 함께 한 정트리오는 1969년 백악관 연주를 기점으로 본다. 최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젊은 연주자 중에도 이들 정도의 국제 경력을 쌓은 이는 드물다. 70세가 넘은 정트리오 남매의 재회는 완벽한 음악에 익숙한 요즘 청중에게 음악의 본질을 보여준 무대였다.

원조 클래식 스타들의 무대 답게 청중의 분위기도 달랐다. “멋져요” “사랑해요”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고 무대 위 연주자들은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이에 화답했다. 앙코르로 멘델스존 3중주 1번 2악장, 하이든 3중주 43번 3악장을 들려줬다. 노장들의 연주는 뒤로 갈수록 무르익어 불안함이 가셨고, 마지막 앙코르 곡에서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인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정확하고 빈틈없는 손놀림이 건재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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