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가방' 깔았던 김정은, 동선 노출에도 4년 만에 방러길?

정영교 2023. 9. 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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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4월에 열린 단독회담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며 웃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 당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러 첩보를 의도적으로 공개, 동선과 일정이 모두 노출된 가운데 김정은이 이를 감수하고 방러를 강행할지 주목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분명히 (러시아에 대한) 무기 제공과 관련한 최종 의사결정권자"라고 지목하면서 "북한을 단념시킬 기회를 (우리는)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북한을 압박했다. 앞서 미 정부는 김정은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 9월 10~13일) 참석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무기거래와 관련한 정상급 논의를 진행할 것이란 뉴욕 타임스(NYT) 보도를 곧바로 확인했다.

관전 포인트는 최고지도자의 신변 안전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이 김정은의 방러 세부사항이 모두 노출된 상황에서도 러시아에 갈지 여부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4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겨냥한 폭발물 투척 사건이 발생하자 '방탄 가방'으로 추정되는 검정색 가방을 든 경호원을 김정은 주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결국 관건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러시아에 가서 푸틴을 만나 직접 담판을 지을 만큼 방러길에 걸린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할지에 달렸다. 무기 거래를 통해 얻는 금전적 이익 외에 러시아와 안보 협력 강화 구도를 만들어 얻을 수 있는 대미 전략적 이익과 그 대가로 가해질 국제적 제재로 인한 고통 등 손익을 저울질해볼 수밖에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24일 오전 북-러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 연해주 하산역에서 마련된 환영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열차에서 내리는 모습. 뉴스1

김정은이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강행한다면 2019년 4월 1차 북·러 정상회담 당시와 같이 '태양호'라고 불리는 1호 전용열차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지난 4월 20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러시아 외무부 대표부는 북한과 접경한 하산 국경 지역에 위치한 조·러 우호의 집(조·러 친선각) 재개장 기념식을 양국 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고 밝혔다.

특히 '김일성의 집'으로도 불리는 조·러 우호의 집은 1986년 김일성 당시 주석의 소련 방문을 앞두고 양국 간의 우호를 기념해 세워졌으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러시아 측의 환영을 받았던 장소다. 김정은도 지난 2019년 방러 당시 방문길과 귀국길에 이 곳을 찾았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김정은의 방러를 염두에 두고 양국이 조·러 우호의 집 재정비에 나섰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직선으로 약 700㎞ 거리다.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열차의 경우에는 1200㎞로 이동 거리가 대폭 늘어난다. '마라토너보다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 열악한 북한 내 철도 인프라와 북·러 양국 간 철도 궤가 달라 대차교환을 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이동에만 20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는 곧 김정은이 열차를 이용한다면 20시간 가까이 미국의 정찰위성을 포함한 각종 전략자산에 그의 동선이 실시간으로 추적·파악할 수 있는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당시 전용열차를 선택한 것은 북·러 국경에 있는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철교 '우호의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연출, 양국이 전통적인 '선린우호' 관계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북중 정상회담을 내용을 영상에서 그의 전용기가 다롄 공항을 이륙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또 김정은의 전용열차는 창문을 포함한 열차 전체를 방탄소재로 제작했으며, 박격포는 물론 위성전화와 같은 첨단장비까지 갖추고 있어 경호에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EEF 개막일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참매-1호'로 불리는 전용기를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2018년 5월 다롄에서 열린 2차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전용기로 이동한 적이 있다. 열차로 이동했던 2019년 북·러 정상회담 당시에도 화물기를 포함한 2대의 고려항공 특별기가 함께 이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만약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을 미룬다면 미국의 인지전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개적으로 "다 들여다보고 있다", "선은 넘지 마라"는 경고를 내놓으며 김정은의 선택을 수정하도록 하는 전략이 통한 게 되기 때문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전 세계에 계속 알릴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인지전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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