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도서관에서 벌어진 황당 사건, 싹 다 말해드립니다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전윤정 기자]
지난 2년간 도서관 이용자 대표로 마포 구립 서강도서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운영위원 회의를 통해 사서가 얼마나 분주하게 일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책보는 동안 잠깐 봐달라던 부모가 빨리 오지 않아 퇴근 시간을 넘기고, 술에 취해 들어와 잠이 든 사람을 도서관 문을 닫기 위해 깨우는 등 상상하지 못한 일도 많았다.
멀리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앨리 모건의 <사서 일기>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도서관 뒤의 대혼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서의 일상을 실감 나게 전한다.
▲ 사서 일기, 앨리 모건(지은이) |
ⓒ 문학동네 |
작가는 우울증과 PTSD,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중 지역 도서관에서 보조 사서로 일을 시작한다. 학습장애 청소년, 노숙인, 실업자, 영유아, 싱글맘, 노인 등 다양한 이용자에게 도움을 주며 오히려 앨리 자신이 치유 받는다.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하다'라는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침을 뱉는 10대 청소년들과 충돌하고, 인터넷을 모르는 노인을 위해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도서관을 다니는 사람을 위해 다른 이용자들에게 대신 양해를 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문맹자에게 모르는 척 대신 일을 처리해 준다.
반납받은 그림책에 흙이 묻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기의 변이라 냄새와 뒤처리로 한바탕 난리를 겪는 황당한 일도 부지기수다. 그 와중에 도서관 규정만 내미는 엄격한 상사와 예산 권한을 쥐고 있지만 도서관에는 전혀 무관심한 시의원과도 싸워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앨리는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이 책 못지않게 중요한 자원임을 깨닫는다. 도서관에 책만 있다면 공허한 창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는 뜨개질 클럽을 만들어 이용자들이 함께 추억을 나누게 하고, 자선행사를 기획하고, 동네 작가를 초대한다. 도서관이 케이크로 뒤덮이는 제빵대회까지 성황리에 마친다.
도서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든든한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떠난 '빈둥지 증후군(empty syndrom)'으로 외로워하는 50대 중년 제니퍼에게는 동호회 모임 권유하며 앨리는 생각한다.
"도서관에는 생애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익숙함 내지 친근함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의 공공도서관에 생전 처음 가본다고 하더라도, 그곳의 기본적인 사항은 익히 다 예상할 수 있으니까. (중략) 나는 곧 로스크리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주는 위안을 과소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쉽게 당연한 것으로 간과하게 되지만, 클로이나 제니퍼 같은 이들에겐 진정 삶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172~ 173페이지
내가 그랬다. 나이 50을 앞두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포 구립 서강도서관에서 독립출판 강의를 들었다.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났다. 용기를 얻어 출판사에 글을 보내고 첫 책을 냈다.
강의를 함께 들은 사람들과 도서관 동아리를 만들어 책을 같이 읽으며, 책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 <도서관에서 수다 떨기>를 만들었다.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팟빵, 네이버 오디오 등 플랫폼에 업로드하고 있다. 도서관은 나의 생애 전환기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은인이었다.
▲ 80세가 넘은 친정어머니는 집까지 책을 가져다주는 마포 중앙 도서관의 '북실북실' 프로그램 덕분에 어머니는 코로나 시기에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 전윤정 |
계속 위협받는 도서관의 가치
하지만 지식 정보 습득이 개인화· 다변화되면서 도서관의 존폐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수십 년간 긴축재정 속에 전국 곳곳의 도서관이 문을 닫고 있는데, 작가는 은밀히 삭감되는 것도 많다고 지적한다.
직원 수가 줄어들고, 개방 시간이 축소된다. 자격증이 있는 도서관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들로 대체된다. 전문지식 없는 도서관은 서비스가 약해지고 이용률이 떨어지면 다시 예산을 줄어드는 악순환을 만든다. 특히 도서관을 이용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취약계층과 빈곤층, 목소리가 없는 이들이기 때문에 더 문제다.
내가 사는 마포구에서도 작년 12월, 예산 절감을 이유로 관내 구립 '작은 도서관' 9곳을 폐관하겠다고 발표했다. 책 대여뿐 아니라 육아·돌봄·쉼터 등 마을 공동체 거점인 작은 도서관을 지켜내기 위해 주민, 지역 시민단체 등이 한마음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구청장은 발표를 철회했지만 도서관의 공공 가치는 계속 위협받을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이 '생산성'이라는 자본주의 용어로 들여다보면 도서관의 가치는 과소평가 된다. 도서관의 진정한 가치는 현금 수입이나 유동 인구에 있지 않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유대감과 소속감, 안정감을 어떻게 지표화할 수 있을까.
작가 앨리 모건은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서 도서관을 더 많이 이용하자고 말한다. 우리의 돈과 행동과 투표를 통해 수지타산만으로 측정되지 않는 가치가 있음을 정치가와 기업인에게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도서관은 책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다. 책과 사람, 사람과 세상이 연결되는 광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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