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담]"갤러리~화랑협회 자주 걸어…키아프 산파 역할 힘 됐죠"
"젊은 작가들에 기회 줘야…한국화 살리는 것이 목표"
많은 사람이 2002년을 한국 축구가 ‘세계 4강’ 신화를 쓴 월드컵의 해로 기억한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에게 2002년은 월드컵이 아닌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의 해다. 2002년 황 회장의 제안으로 제1회 키아프가 열렸다. 키아프 산파 역할을 했기에 키아프에 대한 황 회장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키아프는 현재 국내 최대 아트페어로 성장했다. 어느덧 22회째를 맞아 6일 코엑스에서 개막한다. 황 회장으로부터 키아프에 대한 소회를 듣기 위해 지난달 24일, 그가 운영하는 금산갤러리를 찾았다.
금산갤러리는 남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중구 소공로에 있다. 황 회장은 국내 1세대 화상으로 1992년 서울 서초구에서 처음 금산갤러리를 열었다. 이후 종로구 소격동, 경기 파주 헤이리 등을 거쳐 12년 전 지금의 소공로에 터를 잡았다. 황 회장은 "화랑은 한데 모여 있어야 한다"며 입지를 따졌을 때 12년 전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화랑이 밀집된 종로구 소격동과 인사동, 강남 신사동 등과 외따로 떨어져 있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걷기에는 좋다고 했다. "남산도 종종 오르고 가까운 서울로7017이나 인사동 등을 많이 걷는다." 황 회장은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30여분 거리의 화랑협회까지 걸어갈 때도 많다고 했다. 애초 황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산을 완상하려던 계획은 궂은 날씨 탓에 틀어졌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속에서 인터뷰는 황 회장의 금산갤러리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키아프 탄생 주역 "亞 주도권 되찾을 것"
키아프를 제안할 당시 황 회장의 직책은 화랑협회 국제이사였다. 40대 후반이었지만 화랑협회 내에서는 가장 젊은 편이었다. 일본 아트페어 관람이 키아프를 제안한 계기가 됐다.
"일본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별로 팔지도 못했는데 부스비가 너무 비쌌다. 우리는 좋은 전시 공간인 코엑스도 있으니까 아트페어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협회에서) 안 된다고 했다. 계속 우겼다. 그랬더니 ‘네가 (주도적으로) 해봐라. 아트페어 비용도 마련하고 장소도 구해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코엑스 사장을 만나서 설득했다."
2002년에는 유독 대형 스포츠 행사가 많았다. 월드컵에 이어 부산 아시안게임(9월29일~10월14일)도 열렸다. 키아프가 관심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황 회장은 과감하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 20여일을 앞둔 2002년 9월3일 제1회 키아프를 부산전시컨벤션(벡스코)에서 개막했다. 나흘간 전시에 국내화랑 80개, 외국 화랑 20개 등 100개 화랑이 참여했다.
"부산에서 적자를 냈지만 가능성을 봤다. 빚을 한 7000만원 정도 졌는데 표갤러리의 표미선 회장이 돈을 꿔줘서 빚을 갚고 2회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 키아프를 할 수 있었다."
황 회장은 2021년 화랑협회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추대됐고 올해 초 경선에서 연임이 결정됐다. 그는 회장 출마를 결심한 이유가 아시아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키아프가 출범하고) 한동안 우리가 아시아 미술 시장을 주도했다. 그런데 중국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 홍콩, 대만에도 밀리면서 키아프 순위가 아시아에서 6~7위까지 내려갔다.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지난해 키아프는 영국 프리즈와 공동 개최로 화제를 모았다. 프리즈는 스위스의 아트바젤과 함께 세계 2대 아트페어로 평가받는다. 프리즈가 아시아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한 것은 지난해 서울이 처음이었다. 인파가 몰리면서 키아프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언론에 보도된 매출 규모는 700억원. 프리즈도 10배인 70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황 회장은 올해 키아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외국 컬렉터들이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 경기가 불황이긴 하지만 올해 키아프 매출은 1000억원을 넘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리즈는 1조원 가까이 판매할 것으로 예상한다."
황 회장은 미국 뉴욕의 온라인 미술품 중개업체 아트시(Artsy)를 통한 매출도 기대했다. 그는 취임 후 협회 회원사 모두를 아트시에 단체 가입시켰다고 했다. "이번에 아트시에서 키아프 특집이 나온다. 아트시 방문자들이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홍콩보다 韓… 키아프·프리즈는 亞 최대"
프리즈를 유치하면서 한국에 대한 세계 미술시장의 관심은 커졌다. 반면 현재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평가받는 아트바젤 홍콩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나온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탄압이 날로 거세지면서 인권 침해 논란이 커지고 이에 미술계에서 아트바젤 홍콩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아트바젤 홍콩이 개막했을 때 미국 CNN은 홍콩을 대신해 한국과 싱가포르 등이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을 ‘잠자는 거인(Sleeping Giant)’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황 회장은 "현재 여러 세계 언론이 홍콩과 서울의 경쟁을 주목하고 있다"며 "지금은 홍콩보다 서울이 우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이 주춤하는 사이 아시아 미술 시장 패권을 장악하려는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1월 싱가포르에서 ‘아트 SG’, 7월 일본에서 ‘도쿄 겐다이’라는 새 아트페어가 잇따라 출범했다. 황 회장은 싱가포르 아트 SG에 대해 "좋은 화랑들이 대단히 많이 나왔지만 판매가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도쿄 겐다이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일본은 비싼 전시장 설치 비용이 걸림돌이다. 황 회장은 "내진 설계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4배 더 비싸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전시에는 프리즈에 130개, 키아프에 210개 화랑이 참여한다"며 "전 세계 상위 100개 화랑 중 80개 이상 나온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프리즈가 아시아 첫 아트페어 장소로 서울을 택했다는 자체가 그만큼 한국 미술 시장의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황 회장은 "프리즈가 지난해 아트페어를 해 보고는 한국 문화예술의 깊이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은 아트바젤이 한국과 같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황 회장은 또 "약 5년 전 쯤부터 세계 주요 화랑들이 한국 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며 "지금은 상위 50개 화랑 중 20곳 정도가 한국에 지점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주요 화랑의 주목을 받는 시장이 되면서 향후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맞춰 화랑협회도 세계 시장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다. 프리즈는 2026년까지 키아프와 공동 개최될 예정이다. 황 회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키아프가 프리즈와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프리즈와 공동 전시를 약속한 5년 기간이 끝나면 각자 개최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공동 개최 2년 차인 올해 키아프는 확실히 브랜드화가 될 것"이라며 "키아프와 프리즈의 힘으로 미술을 대중화시키고자 한다"고 했다.
"다양한 위성 페어 함께해야"
대중화는 곧 미술시장의 성장과 확대를 뜻한다. 황 회장은 미술시장 성장을 위해 키아프를 중심으로 여러 아트페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위성 페어다. 황 회장은 "스위스 바젤은 조그마한 도시인데 아트바젤 기간에 16~17개의 정체성이 다른 수많은 아트페어가 함께 열린다"고 설명했다. 아트바젤 기간에 아트바젤뿐 아니라 다른 성격의 다른 아트페어가 함께 열리면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장터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이번 키아프·프리즈 서울과 겹치는 시기에 인사동에서 전통 차와 공예, 도자, 고미술 등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인사동 엔틱&아트페어(8월31일~9월18일)가 열리는 등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일부터 오는 10일까지를 ‘서울아트위크’로 정해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특별전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황 회장은 성격이 다른 여러 아트페어가 생기면 미술 애호가들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해줌으로써 미술시장을 더욱 대중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위성 페어가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젊은 작가들은 키아프에 잘 못 나온다"며 "부스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랑 입장에서는 키아프의 비싼 비용을 감안해 팔릴 가능성이 높은 인지도 있는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황 회장은 갤러리를 운영하던 초기부터 늘 새로운 작가의 발굴을 강조했다. 이번 키아프에서도 키아프 플러스 섹션을 통해 젊은 작가를 소개한다.
황 회장은 아트페어의 본질은 견본 시장이며 젊은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파리나 뉴욕 등 중요 패션쇼에서는 그해에 어떤 신인 패션 디자이너가 나오느냐, 이런 걸 중요하게 본다. 아트페어도 똑같다. 올해 어떤 신인 작가가 나왔는지 주목해야 한다. 키아프가 프리즈와 무엇으로 경쟁할 것인가. 프리즈는 꽤 상업적이기 때문에 키아프는 젊음과 역동성으로 경쟁해야 한다. 젊은 작가의 작품을 보려면 키아프로 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황 회장은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한국화를 살리는 것도 목표라고 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번 키아프에는 한국화의 대가인 박생광과 박래현을 조명하는 특별전 ‘그대로의 색깔 고향’이 마련된다. 황 회장은 "한국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를 보여줄 때 박래현과 박생광을 넘어가는 작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것이 좋은 작품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답했다. "지금 우리 사회나 정치가 너무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울할 때나 기쁠 때 음악을 듣거나 미술 작품을 보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니까 많은 국민들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예술을 사랑했으면 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100명에 알렸는데 달랑 5명 참석…결혼식하다 인생 되돌아본 부부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황정음처럼 헤어지면 큰일"…이혼전문 변호사 뜯어 말리는 이유 - 아시아경제
- "언니들 이러려고 돈 벌었다"…동덕여대 졸업생들, 트럭 시위 동참 - 아시아경제
- "번호 몰라도 근처에 있으면 단톡방 초대"…카톡 신기능 뭐지? - 아시아경제
- "'김 시장' 불렀다고 욕 하다니"…의왕시장에 뿔난 시의원들 - 아시아경제
- "평일 1000만원 매출에도 나가는 돈에 먹튀도 많아"…정준하 웃픈 사연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