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아파도… LG 소방수는 고우석

김효경 2023. 9. 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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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수원 KT전에서 황재균을 삼진으로 잡고 기뻐하는 LG 마무리 고우석. 연합뉴스

흔들려도, 아파도 잠시다. LG 트윈스 마무리 고우석(25)은 오늘도 뒷문을 지킨다.

프로야구 1위 LG와 2위 KT 위즈는 7일까지 3연전을 치른다. 이번 3연전을 제외한 맞대결은 3경기 뿐이다. LG로선 선두를 굳힐 수 있고, KT로선 마지막으로 추격할 수 있는 기회다.

그 중요한 3연전 첫 경기에서 LG가 웃었다. 수훈갑은 클로저 고우석이었다. 이날 경기는 4회 초 비가 내려 1시간 44분이나 중단됐다. 어쩔 수 없이 선발투수들이 3회만에 교체됐다. 구원투수들의 어깨가 무거워졌고, LG는 5-4로 앞선 8회 1사 1루에서 고우석을 올려 승리를 지켰다. 올시즌 고우석이 '5아웃 세이브'를 한 건 처음이었다.

고우석은 "비로 오래 중단됐는데 관계자들이 고생하셨다. 생각보다 마운드 상태가 괜찮았다. 오늘 수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려운 경기였지만 쉽게 풀 수 있었다. 오늘 경기 전부터 상당히 각오를 하고 나섰다"고 했다.

LG는 한동안 '노송' 김용수(227세이브)-'삼손' 이상훈(98세이브)-'봉의사' 봉중근(109세이브)로 이어지는 마무리 계보를 잇지 못했다. 그러나 2019년 고우석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시속 150㎞를 가볍게 넘기는 빠른 공으로 타자들을 압도했다.

투구하는 LG 고우석. 연합뉴스

첫해 35세이브를 올린 고우석은 지난해엔 데뷔 최다인 42세이브를 올리며 구원왕까지 차지했다. 통산 세이브 숫자는 어느새 13위(137개)다. 이 추세라면 5명만 해낸 200세이브 고지도 무난히 밟을 수 있다.

승승장구하던 고우석이 시련을 맞았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어깨 통증을 느꼈다. 결국 정규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왔지만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라 한 달 이상 자리를 비웠다. 복귀 이후에도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5일 기준 세이브는 13개 뿐인데 패전을 6개나 기록했다. 마무리가 된 이래 가장 안 좋은 성적이다.

지난 3일 한화 이글스전에선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는데도, 제구가 흔들리고, 슬라이더도 회전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고생했다. 고우석은 "스스로 투구 밸런스가 깨졌다는 걸 느낄 정도였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있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고우석도 이제는 그걸 깨달았다. 고우석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으로)돌아온 뒤, 그리고 지난해 막바지 흔들릴 때는 지쳐버렸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젠 그 경험들 덕분인지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흔들려도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해결책은 노력이었다. 고우석은 잠실과 2군이 있는 이천을 오가며 구슬땀을 흘렸다. 길어진 머리칼도 그 흔적이다. 고우석은 "이천에 있다 보니 미용실 갈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자르는 게 아깝더라. 아내가 (자르라고)말하긴 했는데, 이제는 포기했다"고 웃었다. 이어 "이제는 단기전이라 생각하고 나선다. 몸 상태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했다.

5일 경기 승리를 지킨 뒤 환호하는 고우석. 연합뉴스


5일 경기 백미는 빠른 공을 연이어 커트하던 황재균에게 커브를 던져 반응하지 않자, 곧바로 직구로 승부를 걸어 삼진을 잡아낸 장면이었다. 사실 염경엽 LG 감독은 고우석과 포수들을 불러 면담을 했다. 볼 배합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우석에게 자신의 주무기인 직구를 좀 더 쓰고, 카운트에 맞게 변화구를 써 달라는 주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감독의 제안과 다른 방향이었지만, 결과는 좋았다. 경기 뒤 고우석의 설명을 듣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헛스윙을 이끌어내려기보다는 상대가 변화구를 노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던졌다. 그리고 빠른 공으로 승부했다"고 말했다. 야구를 보는 눈, 상황에 맞는 판단력까지 성장한 고우석이 느껴졌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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