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독일 전자제품 전시회 IFA를 보고 실망한 이유

백강녕 2023. 9. 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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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업체 절반 이상이 중국
K팝·제조·마이스산업 강국인
한국 대표할 전시회 만들어야

세상에서 임대료가 제일 비싼 전시공간은 어디일까. 소비자가전박람회(CES)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다. 출품업체 관계자들은 "3.3㎡(1평)를 빌려 꾸미고 상품을 진열하는 비용이 1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CES는 매년 1월 첫주 4일간 열린다. 월세로 치면 평당 7500만원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참가업체 중 가장 넓은 3368㎡(약 1019평) 전시관을 만들었다.

공간이 다가 아니다. 수백명 직원이 짐을 싸들고 라스베이거스로 갔다. 행사기간 라스베이거스 물가는 살인적이다. 비수기 수십달러에 잡을 수도 있는 호텔 가격이 수백달러로 치솟는다. 식당 메뉴판 위 숫자도 변한다. 올해 행사 기간 한식당 파무침 가격이 2만원이라는 뉴스도 봤다. 비행기 삯, 숙박료, 식대만 수십억원이다. 삼성은 해마다 CES 준비에 수백억원을 쓰는 셈이다.

그래도 올해 3200개가 넘는 기업들이 CES에 참석했다. 참여한 한국 기업 숫자는 550여개. 사상 최대다. 미국 다음으로 많다. 한국 기업들이 쓴 돈이 수천억원이다. 쓸데없이 낭비를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왜 돈을 쓸까.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이 믿음을 낳았다. 세상을 바꾼 제품들이 과거 CES 행사장에서 세상과 처음으로 만났다. 예를 들어 1970년 필립스가 VCR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CD(1991년), DVD(1996년), HDTV(1998년)도 CES를 거쳤다. 행사가 열리면 올해는 뭐가 나올까 궁금해 행사장을 찾고 뉴스를 본다. CES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시기다. CES는 1월초에 열린다. 작년 개발한 제품을 새해 벽두에 세상에 선보인다. 고객 반응을 보고 올해 경영, 내년 신제품 개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지리적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환락과 도박, 유흥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공식 업무차 방문할 기회다. 가서 일만 하다 오더라도 라스베이거스로 가고 싶다고 한다. 올해 행사 참가자가 10만명이 넘고 전시공간은 축구장 26개 크기(18만6000㎡)였다.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실과 10만명이 들어갈 전시 공간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CES를 찾는 사람들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 사실 올해 CES는 흥행에 실패했다. 코로나가 미국을 덮치기 전인 2020년 1월보다 참여업체가 30%나 줄었다. 미·중 경제 갈등 때문이다. 화웨이, 샤오미, 하이얼 같은 중국업체가 사라졌다. 내년 행사장에서도 중국 기업 부스를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1월 그 소식을 듣고 살짝 설렜다. 혹시 이 기회에 한국에서 열리는 대형 전자박람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전자제품 전시회 IFA 행사를 보고 조금 실망했다. 전체 참여업체 2097개 가운데 중국업체가 1296개였다. 개최국인 독일(228개)이나 한국(165개)을 압도했다. 아예 중국 현지 행사 수준이다. 중국 업체들이 미국 대신 독일로 몰려갔다.

우리도 대형 국제 박람회를 열 잠재력이 있다. 우선 한국은 BTS, 블랙핑크 보유국이다. CES와 IFA 행사장에 깔린 TV 등 디스플레이 점유율이 가장 높은 콘텐츠는 K팝이다. K팝이 전자제품 전시회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0년 CES 행사장에 한국, 일본, 중국 TV제조업체들이 출품한 TV 화면에선 소녀시대가 ‘소원을 말해봐’라며 관람객들을 불러모았다. 요즘 행사장에 깔린 디스플레이에서 K팝 스타 콘텐츠를 빼면 볼 게 없다. 또 한국은 제조강국이다. 550여개 업체가 전자제품을 전시하기 위해 미국까지 간다.

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 Travel),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 등을 모아 마이스(MICE) 산업이라고 한다. 정부가 사활을 걸고 유치하려는 엑스포도 마이스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은 2030년 글로벌 마이스 시장 규모를 1조5623억달러(약 2070조원)로 봤다. 한국은 이미 마이스에 강한 나라 중 하나다. 국제컨벤션협회(ICCA) 통계 기준 서울의 2021년 국제회의 유치 순위는 15위다. 문제는 한국을 대표할 대형 정기 행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제2의 CES를 만든다면 대기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업적이다. 엑스포 유치도 좋다. 다음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형 박람회 창립을 고민해야 한다.

백강녕 산업IT부장 young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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