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 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17) 이인환 지비라이트 회장

2023. 9. 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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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비추는 1등 기술

1997년 이인환 회장이 창업한 지바라이트는 재귀반사필름 분야에서 세계 1등 기업이다.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제치고 최강자 자리에 오른 데는 남다른 비전과 기업문화가 숨어 있다.

이인환 지비라이트 회장이 자사의 재귀반사필름이 적용된 신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화이트톤이 인상적인 널따란 사무 공간, 벽을 가득 채운 대형 미술작품들, 제품 포트폴리오를 전시한 세련된 진열대까지. 웬만한 인테리어 회사와 견줘도 손색없을 풍경이 틀에 박힌 제조기업의 이미지를 단박에 깨뜨린다. 제조 현장인 공장도 마찬가지다. 널찍한 공간에서 대형 기계설비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먼지나 쓰레기, 부산물 한 톨 찾기가 어렵다. 재귀반사필름 글로벌 1등 기업인 지비라이트의 첫인상이다.

사옥과 공장이 자리한 부지 한편에는 아름답게 조성한 휴식 공간(정원)이, 옆으로는 직원들이 이용하는 풋살장까지 갖춰져 있다. 여느 제조업체와는 확연히 다른 회사 분위기가 지비라이트만의 경쟁력과 독특한 기업문화를 넌지시 일러주는 듯하다.

재귀반사필름은 빛을 받아 이를 그대로 광원에 돌려주는 소재로 만든 필름을 말한다. 신발과 의류, 작업복이나 자전거, 교통표지판 등 안전이 필요한 생활 현장 곳곳에 사용된다. 미국의 3M이 장악했던 재귀반사필름 시장은 현재 지비라이트가 글로벌 1등으로 꼽힌다. 오랜 업력과 기술개발로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기업에 직접 제품을 납품 중이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글로벌 최고 기술력의 현장을 찾았다. 1997년 창업 이래 기술개발과 조직문화 혁신에 힘써온 이인환 회장을 만나 노하우를 경청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다. 전공을 살려 창업에 나섰나.

전혀 아니다. 80학번인데 졸업 후 상당 기간 직장인으로 일했다. 첫 직장은 제약사 영업직이었다. 대학 내내 공학계산기만 두드리다 전혀 다른 일을 경험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대기업 들어간 친구들보다 월급을 3배 이상 받을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그런데 “2년 이상 여기 있으면 평생 이 일만 하게 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계속 귀에 울렸다. 정확히 1년 6개월 하고 그만뒀다. 이후 전공을 살려 플랜트 관련 기업에서 일했다. 도와달라는 지인 부탁에 같이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마산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 기업이었는데, 첫 3년만 돕고 나오려 했다가 7년을 같이 일했다. 지비라이트를 창업한 건 이후 1997년 들어서다.

월급 많이 받는 좋은 직장에 안주하기 쉬운데, 창업을 결심한 배경이 있나.

원래 모험을 즐기는 편이다. 직장 생활도 제각각 다른 업종이었다. 막연히 돈을 좇았다면 아마도 마지막 직장에 머물렀을 거다. 스무 살 무렵, 책에서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도산 선생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았다. 플랜트 회사에 다닐 때 너무나 열악한 근무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 내 나름의 좋은 기업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도산의 가르침을 계기로 꾸게 됐다. 창업 후 지금까지도 큰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직원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그걸 세상에서 검증받고 싶었다.

기업이라면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기업은 좀비와 같다. 사라지는 게 낫다. 수익을 못 내면 첫째, 직원 복지가 어렵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직원들 삶이 피폐해지기 쉽다. 수익이 없어 세금을 못 내니 사회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어떻게든 이익을 실현해서 복지와 세금으로 선순환하게 해야 한다. 다만 편법 쓰지 말고 정당하게 벌자는 말이다.

저 역시 선보공업이라는 전통 제조업에서 일하다가, 벤처투자업계로 와 화려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보니 눈이 부시더라. 그런데 대부분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투자)받는 거에만 관심 있었다. 그 둘은 천지차이다. 기업이 ‘돈을 이만큼 벌었다’고 자랑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이 받았나’만 내세운다. 결국 모두 빚인데 말이다. 요즘 스타트업, 벤처들이 정말 큰 시련을 겪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승계를 앞둔 자식들에게도, 또 직원들에게도 “돈은 좋지만 그걸 좇지는 말라”고 항상 말한다. 사업이 아닌 돈만 좇으면 첫째, 사람 자체가 굉장히 비굴해진다. 어디 가서 내 생각을 내놓기도 어렵다. 하지만 돈을 싹 지우면 당당해진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회사고 일이면 돈을 떠나서 해라. 실패해도 본전이니 남는 장사 아닌가” 말한다. 실제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손해도 아니다. 운이 좋아 어느 정도 이뤘다면 남보다 억수로 큰돈은 못 벌어도 밥은 먹고 살지 않나. 함께 먹고살면 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일이 아니라 돈을 좇는 경우가 많다. 일, 즉 가치를 좇아야 한다.

창업한 1997년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 아닌가.

왜 아니겠나. 창업하자마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1년 정도 창업에 힘썼는데 3개월 만에 한계가 오더라. 다행히도 직장 생활 하면서 금융 쪽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잘 맺은 덕분에 대출 회수를 늦춰주는 등 도움을 받았다. “고맙다,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다”라고 약속했다. 창업 이후 지비라이트 신용등급은 20년째 더블에이(AA)다.

재귀반사필름이라는 품목은 어떻게 찾게 됐나.

최영찬 대표에게 재귀반사필름의 원리와 적용을 설명하는 이인환 회장.

창업 초기에는 자본금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섰던 거다.(웃음) 처음에 “이러이러한 아이템이 있다”고 제의한 분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인지, 또 사업의 명분이 있는지’를 따졌다. 사실 처음에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고사했다. 그런데 재귀반사필름이라는 게 안전과 직결된 품목 아닌가. 요즘 말로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사업화를 결심했다. 당시 국내에도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몇몇 있었지만 모두 영세한 규모에 낙후된 기술뿐이었다. 직장 생활 하면서 운 좋게 좋은 해외 거래처를 만나 경영의 기본을 배웠다. 오디오 전문 일본 회사가 있었는데 대략 우리보다 10년을 앞서가더라. 이때 ‘아, 10년은 앞서야겠다’며 무릎을 쳤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고민하다 보니 경기 흐름이 보였다. 몇몇 유럽 회사에선 경영 투명성과 기업윤리 등을 배웠다. 쉽진 않겠지만 재귀반사필름이라는 아이템을 고급 기술로 끌어올려 10년을 앞서가야겠다고 맘먹었다.

당시 미국 3M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다행히 부산에 신발 제조기업이 좀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글로벌 최대 메이커인 나이키를 공략하려 노력했다. 초기엔 거래 업체도 나이키가 유일했다. 1등이 선택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3M이라는 세계적 회사가 재귀반사필름 시장을 무주공산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나이키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었다. 그전에는 을 같은 갑 아니었겠나. 우리 제품의 품질이 3M에 비해 밀리지 않고 가격도 좋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개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당시는 재귀반사와 3M이 거의 동음이의어였다. 우리도 제품 하나 개발하면 사파이어니 피닉스니 하며 브랜딩에 엄청 공을 들였다. 글로벌 1등에 올라선 후에야 지비라이트로 통일했다. 초기 개발 과정에선 불량률이 높았다. 재귀반사필름은 일종의 거울로 이해하면 쉽다. 중간 공정 중에는 불량을 발견할 수 없고, 완제품이 나와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표면에 65㎛의 구슬을 도포하는 초정밀 공정인데, 어차피 기술도 없이 원리만 가지고 맨땅에 헤딩한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불량이 정전기인데, 지금은 공정에서 다 잡아낸다. 직원들이 당시 제품을 버리자고 했지만, 일종의 전리품이니 그냥 두자고 했다.

3M을 넘어선 결정적 계기가 궁금하다.

재귀반사필름은 크게 수성과 유성 기반으로 나뉜다. 수성은 말 그대로 물이고, 유성은 솔벤트가 주재료다. 솔벤트는 우레탄을 액상으로 녹이는 소재인데, 최종 소비자에게는 전혀 위해가 없다. 제품화 후 한 달만 지나면 휘발돼서 남지 않는다. 하지만 제조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에게는 좋지 않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쓰는 세척용제가 해로운 것과 비슷하다. 결국 직원 보호를 위해 수성 기반 필름 제작에 나섰다. 과거에도 염소를 응용한 기술개발에 50억원을 투자했다가 역시 공정상 위해 위험성 때문에 포기한 적이 있다. 악덕 기업주, 욕먹는 CEO가 되고 싶지 않아 개발에 힘썼다. 우리 직원들을 위해 개발한 수성 기반 필름 덕에 결국엔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독점 납품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3M을 이겼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이 생각하지 않은 방식을 고집했을 뿐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도 지비라이트의 경쟁력이다.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한가.

다품종 소량생산은 토요타의 성공 근간이다. 우리는 부득이하게 제조 공간(스페이스) 문제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을 도입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신발산업과 딱 맞아떨어져 도움을 받았다. 개별 제품과 모델별로 라인이 가동되니, 우리는 불과 1m짜리 오더도 받아낸다. 그런 곳이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다. 대규모 생산에 익숙한 기업이 1m마다 생산라인을 멈추기란 절대 쉽지 않다. 경쟁사는 상상도 못 하는 걸 우리는 20년 동안 해왔다. 그러면서 로스를 줄이는 노하우도 생겼다. 실제로 기술은 경쟁사나 우리나 대동소이하다. 이를 어떻게 생산 현장에서 구현해내느냐, 즉 생산기술의 혁신이 실제 현장에선 훨씬 중요하다.

지비라이트만의 기업문화도 부산 지역에선 유명하다.

요즘 큰 고민이 노동을 바라보는 의식과 관점이다. 노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자기 일을 하면서 행복해야 하는 게 첫째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해봤지만 일은 재미없다는 게 기본 전제다. 먹고살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사실이다. 나와 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다. 그러니 여기에 무얼 더 제공해 행복을 찾게 할 것인지가 CEO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사실 난 샐러리맨 시절에도 너무 즐거웠다. 이유를 찾아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이더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남보다 노력하게 되고 안 되면 싸우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산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일하는 거다. 직원들에게도 “재미없으면 그만둬라, 네 인생이다. 나는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러 현실적 고민 끝에 나온 게 인사와 조직의 혁신이다.

구체적인 혁신 과정과 내용이 궁금하다.

2년여에 걸쳐 인사 조직을 바꿨다. 연공서열을 바탕으로 한 과거 조직을 완전히 없앴다. 요즘 중소·중견기업의 일자리 미스매칭 얘기가 많다. 저마다 희망을 품고 입사한 직원들도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혀 그만두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 잘하는 직원들일수록 쉽게 그만두더라. 큰 고민이었다. 튀는 후배를 용납하지 못하는 문화, 연공서열 때문에 진급이 어려운 구조로는 가망이 없다고 봤다. 말년 조장은 일 안 해도 월급 많이 받고, 주니어는 죽어라 일하다 보니 불만만 쌓이지 않나. 예전에는 전혀 없던 인턴제도부터 도입했다. 최소 3~6개월을 일한 후엔 ‘멤버’가 된다. 일을 배우는 단계다. 자기 고유의 업무를 맡게 되면 ‘매니저’로 오른다. 그다음이 ‘디렉터’다. 멤버-매니저-디렉터 체계로 단순화한 것이다. 회사에선 궁극적으로 레벨 5 이상의 매니저를 키우는 게 목적이다. 이 레벨은 스스로 사업을 기안해 시행하는 수준으로, 디렉터가 돼 독립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티오(Table of Organization) 때문에 월급이 오르지 않는 구조를 아예 없앴다. 인사 평가도 매달 실시하고, 본인에게 피드백을 준다. 자기 성과를 자기가 알아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연말성과급과 다음 해 연봉이 결정된다. 스텝바이스텝과 파격이 다 가능하다. 예전에는 대졸 사원이 임원 달기까지 17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9년 만에도 가능해졌다.

조직 구성은 어떻게 바뀌었나.

부서별 팀제를 ‘세일(sale)’ 단위로 개편했다. 단위를 소분화한 것이다. 유통구조도 혁신했다. 단순 OEM이 아니라, 나이키면 나이키, 아디다스면 아디다스와 직접 거래한다. 중간 단계를 없애 이익을 극대화한 전략이다. 조직도 이에 맞춰 세일 단위로 바꿨다. 더 파이팅 넘치고 자기 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히 뛴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다. 지금 그런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수도권 ICT 기업이나 스타트업에는 이런 예가 많다. 하지만 수십 년 업력을 가진 전통 제조기업으로선 엄청난 결단이며, 지방 제조업 전반에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많은 제조기업이 인재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모두 서울로 간다고 막연한 원망뿐이다. 회장님처럼 명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방법을 찾아가는 회사를 보기 어렵다.

환경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부산에도 작은 영세 제조사가 많다. 직원들 차 댈 자리도 회사에 없다. 그런 공간 있으면 제조시설을 늘린다. 다 환경이 열악해서 그렇다. 하청, 하청의 맨 마지막이니 여유가 없다. 일례로 우리 구내식당이 인기다. 한 끼 단가가 1만6000원이니 꽤 높은 편이다.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가장 눈에 띄게 할 수 있는 ‘투자’다.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2세 기업가들에게도 “기계 투자만 늘리지 말고 사람에게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노동을, 사람을 보는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직원이 자기 삶을 노동에 녹여내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가 다시 한번 점프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해외 생산시설 확대가 아닌, 부산 중심의 투자와 생산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도 베트남에 생산공장이 있다. 한때 본사 이전 계획까지 세웠다가, 2020년 부산 강서구 범방동에 3만3000㎡(1만 평) 규모의 부지를 확보해 신축했다. 원가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청년들의 경쟁력이 회사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내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직원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고선 ‘그래, 한국에서 끝장을 보자’고 생각했다. 인도네시아 진출도 계획 중인데, 국내에선 R&D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과거 부산은 신발산업의 메카였지만 지금은 힘을 잃었다. 다른 제조업종도 마찬가지다. 2세가 물려받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니 결국 사모펀드 같은 데 팔리면서 경쟁력도 잃는다.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계속 일어난다. 일하는 직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투자 같은 공격적 경영은 언감생심이다. 악순환이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 직원들에게 “너희가 국가대표다. 우리 앞뒤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곤 한다. 다시 부산으로, 한국으로 시선을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만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좇아야 한다.

지난 20년간 재귀반사필름 하나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향후 사업다각화 계획이 궁금하다.

수성 기반 제품화에 성공한 것처럼 친환경 기반 R&D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이 커피로도 유명한데, 최근 커피 부산물을 재활용한 재귀반사필름 개발에 성공했다. 얼마 전엔 호주의 기능성 스포츠의류 브랜드인 ‘2XU’와 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다.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제품들이다. 한국 판매를 우리가 맡되, 지비라이트의 필름을 쓰는 윈윈 구조다. 원천 브랜드의 사업구조와 관점을 학습해보는 계기도 될 듯하다.

앞서 기업승계 어려움을 말씀했는데, 지비라이트는 어떤가.

사실 내년 연말에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려 한다. 현재 근무 중인 두 아들이 공동대표를 맡을 예정이다. 역량이 부족하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지만, 다행히 깜냥이 되는 듯싶다. 사람은 모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초이스(choice)와 챌린지(challenge) 앞에 놓인다고 생각한다. 물러나는 것도 도전이다. 다른 모습으로 잘 사는 삶을 주변에 보여주고 싶다. 회사 경영도 완전히 손을 놓으려 한다. 개인 사무실도 해운대에 따로 마련해두었다. 내 나이대에 비해 진보적이라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점점 버겁다. 예전에는 5년 정도 계획을 보고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3년이 어렵고 후엔 1년도 어렵더라. 조직의 역동성과 미래 비전은 이제 젊은 친구들이 끌고 가야 한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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